'한국형 부동산PF'와 '국제금융시장 PF' 차이 및 개선방안
우리 금융시장에서 "부동산 PF"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 상가 등 비생산 시설에 대한 금융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금융용어로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착공시점 이후 시공에 소요되는 자금을 "본 PF 자금"이라 부르지만, 토지 매입과 인허가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후자의 비용은 시행자의 출자금과 금융기관에서 차입으로 조달되는데 차입금은 본 PF 자금으로 상환하는 조건의 "브리지론(bridge loan, 가교금융)"입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스(PF: Project Finance)는 단순히 사업성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한 정의는 신설 프로젝트 회사에 제공한 대출금의 회수 재원이 대상사업 자체에서 얻는 수익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업 이해당사자(사업주(시행사), 시공사, 정부 등)에게 직접적인 대출금 지급보증이나 연대보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PF는 프로젝트 이해 당사자에게 "상환청구권이 없거나 제한되는 금융(non/limited recourse finance)"입니다. 프로젝트 위험을 어느 일방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역할과 능력 범위 내에서 서로 분담(sharing) 하는 구조가 PF 본질입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컫는 PF, 우리나라 부동산 PF 및 미국 부동산 개발금융을 비교하고, 국내 부동산 PF의 문제점 및 대응 방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금융(차입금)의 차주는 모두 신설기업인 SPV로 동일하나,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주(시행사)의 사업 수행 경험과 재무 능력뿐만 아니라 개발비용 조달 방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의 PF 거래에는 사업 경험이 풍부하고 재무능력이 뛰어난 전문 기업이 사업주(sponsor) 역할을 합니다.
사업주의 자기자본 비율은 산업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30~50% 수준입니다. EBL(에쿼티 브릿지론, equity bridge loan)로 자기자금을 대신할 경우 신용도가 높은 모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이 있는 기업금융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차입금은 비소구 또는 제한적 소구금융으로 프로젝트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레버리지도 낮지 않으므로 금융기관은 프로젝트 위험 분석과 위험 완화나 경감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실사(due diligence)를 해야 합니다.
미국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도 사업 경험이 많은 전문 기업이 유한책임회사(LLC)나 프로젝트금융 투자회사(PFV) 등을 설립하여 사업을 추진합니다. 투자 자금은 사모펀드, 개인투자조합, 연기금, 리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하며, 총 개발비용의 20~30% 정도를 자기자본으로 조달합니다. PF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LTV가 60%를 넘지 않고, 40% 이상을 투자 자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시행사나 사업 경험이 부족한 주택조합 등 소규모 기업으로 적은 자본금만 투자해 레버리지가 90%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파트 개발사업은 시행사가 개발비용의 5~10% 정도만 출자하고 나머지는 금융기관에서 차입합니다. 본PF 자금으로 상환되는 조건의 브리지론이며, 시공사가 지급보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금융기관 채권보전장치와 위험 분담
국제금융시장 PF 사업은 상당한 수준의 실사(due diligence)를 통해 이해당사자 사이에 위험을 분담(sharing) 하는 구조로 이뤄집니다. 사업주 등 어떤 이해당사자도 직접적인 지급보증을 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무에 대해 상당한 수준으로 사업 지원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위험 분담은 이해당사자의 역할(의무)과 능력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며, 이것이 금융기관(채권자)의 채권보전장치(security package)가 됩니다. 토지와 건물 등 프로젝트 회사의 자산은 법적 규제가 허용되는 범위내에서 대부분 담보로 제공됩니다.
미국 부동산 개발금융도 PF 방식으로 이뤄질 때는 사업성 확인을 위한 실사(due diligence)가 이뤄집니다. 기업금융으로 이뤄어지는 경우 모기업의 지급보증이나 모기업의 자산이 담보로 제공됩니다. 또는 모기업의 주거래은행이 지급을 보증하며, 보증회사(surety company)가 발행하는 건설에 대한 지급보증(payment bond)이나 이행보증(performance bond), 또는 채권보증회사(monoline)의 지급보증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금융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번 부동산 경기 하락과 건설업체 부실로 침체를 겪었습니다. 최근 신용보강 방식이 다양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시공사의 책임준공확약 및 조건부 채무인수 의무 등 시공사의 신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 PF나 미국 부동산 개발금융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 특유의 금융 방식입니다.
대출금 상환재원
국제 금융시장 PF는 장기간의 미래 사업 수익을 대출금 상환재원으로 합니다. PF 방식의 부동산 개발사업은 장기 임대수익이나 부동산 운용수익이 상환재원이 됩니다. 미국 주택사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장기 주택 담보대출인 모기지론(mortgage loan)이 활용됩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는 토지매입 자금으로 활용되는 브리지론은 본 PF 자금으로 상환되며, 본 PF 자금은 분양대금으로 상환됩니다. 토지매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본 PF 자금의 조달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선분양이 부진하게 되어 브리지론이나 본 PF 자금의 부실 위험이 커지게 됩니다.
미국에도 선분양 방식의 부동산 개발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분양자금을 사업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수분양자는 분양가격의 5~10% 수준의 계약금만 지불하며, 이 자금은 금융기관에 예치됩니다. 미국의 선분양은 사업비 확보 목적이 아니라 사업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우리 부동산 PF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우리 부동산 PF는 시공사 신용에 의존하는 기업금융 성격의 '한국형 부동산 금융'입니다. 사업구조나 위험분담 측면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비(또는 제한적) 소구 방식의 PF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시장에서는 '부동산 PF'가 활성화됐으나, 2009년 이후 부동산 경기 하락과 건설업체(시공사) 부실로 침체되었습니다.
이에 정치권 등 사회에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스(PF)' 금융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특히 수출입은행의 주요 업무인 해외 PF 지원 사업의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발생해 국회의원 등 여러 분야의 관련 인사에게 "국내 부동산 PF는 사업구조와 사업성 평가 측면에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컫는 PF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금융용어가 적절히 사용되지 못하여 오해를 일으킨 사례입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시장은 금융기관(채권자) 입장에서 시행사의 신용이 빈약하고, 선분양에 따른 수분양자와 이해관계 충돌로 토지와 건물에 대한 담보를 완벽하게 챙기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금융기관은 채권 확보를 위하여 시공사의 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공사가 시행사의 의무까지 떠맡는 결과로 위험분담이 불합리하게 이루어진 구조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① 시행사의 대형화 및 사업 경험과 재무 능력 및 조건 등 자격요건 강화, ②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방식의 다양화, ③ 이해당사자 간 합리적 위험 배분 등 금융구조 개선, ④ 보다 면밀한 사업성 평가 방법 강구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내 부동산 PF 시장이 주기적으로 불안에 빠지고 침체되는 데는 시행사의 신용이나 금융구조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PF는 '사업성'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이라는 단순한 인식과 부동산 개발 시장의 '사업성'이 좋다는 명분만으로 단기 '실적'과 '이익'을 좇을 뿐 시스템 관리와 사업위험 대응에 실패한 금융기관의 자세도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