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역의 눈으로 본 중도금 대출의 함정

이번 주제는 중도금 대출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맡았던 건이라 한동안 죽어 있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빠르게 감을 찾은 듯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도움을 주신 지역농협 팀장님과 시중은행 심사역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중도금 대출의 과거와 현재 트렌드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경험이 없는 분들은 시공사 연대보증이 중도금 대출에 필수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물론 2·3군 시공사들은 과거에도 연대보증을 제공하곤 했지만, 탑 시공사가 연대보증을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책임준공 역시 해주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기 전, 그리고 태영건설이 기업회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공사 연대보증과 책임준공이 사실상 필수 요건이 되었습니다.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문제는 시공사 연대보증이 붙어 있다 보니, 수분양자 연체 시 시행사의 대위변제도 당연시하며 분양률이나 계약률 같은 기본 정보조차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신용보강이 없는 사업장보다는 있는 사업장이 더 낫습니다.
다만 그 신용보강이 왜 붙어 있는지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분양률이 100%인 사업장에 연대보증이 붙는 경우가 많을까요? 사업성이 확실히 좋은 조합 사업이나 정비 사업에서 그런 신용보강이 붙을까요? 물론 요즘 혹한기 시장에서는 예외가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원리금 회수가 최종적으로 안 되겠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제 대답은 분명합니다. 원금 회수는 됩니다. 다만 문제는 시점입니다. 3개월이 걸릴지,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만약 그 연체 기간이 분기말이나 연말처럼 성과평가가 중요한 시점과 겹친다면, 연체 지표가 급등하면서 은행채·회사채·금융채 발행기관의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조달 금리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 “시행사와의 협약서에 최장 연체일이 2개월로 명시돼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되묻습니다. 당사자 합의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협약서의 유용성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 경험상 그 협약서는 종이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인수금융 심사에서도 타 금융사의 LOI보다 LOC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연대보증과 책임준공이 있음에도 중도금 사업장의 연체율은 왜 높아지는 걸까요? 교과서에 없는, 실제 현장에서 느낀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중도금 대출 6회차까지는 연체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무이자나 이자 후불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청약률이 높은 매력적인 사업장이어서 수분양자들이 성실히 납부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잔금 전환 시점입니다. 입주 지정기일을 주고 그 안에 잔금 대출로 중도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통 이런 상황은 1) 분양률이 낮은 지역, 2) 고분양가 논란이 있는 지역, 3) 세대수가 1000세대 미만인 지역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구체적으로는, 입주지원센터에 상주하는 일부 법률 전문가들이 입주자들을 현혹하기 시작합니다. “옆 사업장은 집단 항의로 분양가를 할인받았다더라” 같은 말로 불만을 키우고, “잔금 전환을 거부해도 채무불이행자가 되지 않는다, 금융기관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걸면 된다”는 식으로 유도합니다. 결국 금융기관은 상환 지연과 연체율 급등이라는 고통을 떠안게 됩니다. 승소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그 기간 동안 상환을 미룰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업무협약서에 시행사 대위변제가 명시돼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 다릅니다. 시행사와 시공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순간, 그 조항은 무력해집니다. 시공사는 대위변제 동의 조건으로 미지급 공사비 선지급을 요구하고, 수분양자들은 분양가 할인이나 옵션 제공을 요구합니다. 분양률이 높고 세대수가 많은 사업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받아주기도 하지만, 분양률이 낮거나 소규모 사업장은 대응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 시행사는 도장을 들고 잠적하거나, 시공사는 협의 자체를 거부합니다. 결국 금융회사가 최종 피해자가 됩니다. 연체 여신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죠.
1군 건설사 연대보증이 있는데도 왜 시중은행은 저조한 분양 사업장에 선뜻 대출을 해주지 않을까요? 결국 원금은 회수되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연체율 관리와 금융시장 파급효과 때문입니다. 지역농협이 중도금 대출 시 분양률과 준공 후 미분양 현황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메이저 금융기관이 특정 사업장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단순히 금리 경쟁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투자심사는 종합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담보가치, 사업성, 신용보강 각각만 따로 보고 성과가 난다면 굳이 ‘종합’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았을 겁니다. 각각을 살펴보고 가중치를 적용한 뒤 최종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투자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심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