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 공급과잉 겪는 국내 물류센터 인수하는 이유
외국계 자본이 갓 준공된 물류센터를 인수하거나 개발중인 물류센터를 선매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선매입이 불발돼 저렴하게 나온 매물 또는 우량 임차인을 확보하거나 좋은 위치의 랜드마크 물류센터를 사들이고 있다. 작년과 올해 물류센터가 공급 과잉을 겪으면서 개발PF시장도 냉각된 만큼 3,4년 뒤에는 우량 물건을 중심으로 물류센터 시장 상황이 급개선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모양새다.
6일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준공된 인천 남청라물류센터가 지난달 '디디아이 남청라로지스틱스리츠'에 매각 종결됐다. 디앤디인베스트먼트가 설정한 리츠인데 리츠 주요 투자자로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벤탈그린오크'가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모회사가 글로벌 보험사인 벤탈그린오크는 SK디앤디와 서울 오피스인 삼일빌딩에 공동 투자했고 주로 물류센터에 투자해왔다.
남청라 물류센터는 국내 한 기업이 선매입 계약했다가 준공시 매입 이행할 예정이었으나 잔금을 납부하지 못해 계약 해지된 물건이다. 이후 가격 조정을 겪은 뒤 '디디아이 남청라로지스틱스리츠'가 비교적 저렴한 1050억원에 인수했다. 풀필먼트물류기업인 파스토가 10년 책임 임대차한 물건이다.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싱가포르 최대 부동산그룹인 캐피탈랜드는 합작 투자해 경남 양산시IC 에서 5분 거리(1.4km)에 위치한 북정동 237 번지 일원에 상저온 복합물류센터를 개발하고 있다. 두 싱가포르 투자사는 자본금 1060억원을 투자했으며. 지난 3월 2590억원의 PF대출약정을 체결했다. 오는 2025년 완공시 연 면적 5만평에 이르는 경남권역 초대형 거점 물류센터를 확보하게 된다.
GIC와 한 영국계 펀드는 오는 10월 준공을 앞둔 남양주 별내원(ONE)물류센터를 인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개발 시행사 '옳은생각'은 공개 매각을 통해 별내원 물류센터의 인수의향서를 받고 있다. 이달 중 공개 입찰을 마감하고 다음달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총 4곳이 인수의향서를 냈는데 두 외국계 자본이 적극적이어서 외국계의 인수 성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잠재 투자자들의 인수 가격은 1250억~1350억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대형 음료기업인 C사가 상온 1,2층을 장기 임차하기로 하는 등 대부분의 공간에 화주들의 임대차 계약이 맺어지면서 잠재 인수자가 모여들었다.
이밖에 영국계 펀드가 음성의 대단위 물류센터 개발PF건에 대해 선매입 인수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브룩필드자산운용이 5670억원 리파이낸싱(준공 후 담보대출)을 받아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를 인수했다. 이 물류센터는 국내 최대 규모인 13만평(연 면적 기준)에 이른다.
공급 과잉을 겪는 국내 물류센터시장에 이처럼 외국계 자본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장의 안 좋은 상황보다는 2~3년 뒤 시장 개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내 물류센터 신규 개발PF 건은 손꼽을 정도로 뚝 끊겼다. 화주들은 준공된 물류창고가 남아도는 상황에서 개발 딜에 대해 선임차 계약을 꺼리고 있어서다. 금융사 관계자는 " 완공된 창고들 가운데 골라서 들어갈 수 있는데 구태여 최고경영자의 의결까지 받아가며 개발단계 딜에 선임차계약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게 화주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선매입이나 선임차계약이 어렵자 물류창고 개발사업의 PF금융조달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젠스타메이트에 따르면 물류센터 공급량은 2021년 113만평에서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9%늘어난 157만6000평이 공급됐다. 이어 올해에는 작년 대비 71% 급증한 268만9000평이 공급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물류센터 개발사업이 멈추면서 기존 공급된 물류창고 자산이 소진되는 3년 뒤에는 또 다시 공급절벽 사태가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시장 반전을 염두에 두고 외국계 자본의 저가 쇼핑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풍부한 자본력으로 차입 관련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고 에쿼티 비중을 높여 투자하고 있는 데, 이는 자금줄이 메마른 국내 자본에 비해 큰 경쟁력으로꼽힌다. 외국 자본의 지갑이 두꺼운 데는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효과도 작용하고 있다.
외국 자본은 실사를 통해 우량한 입지의 저가 물류센터라고 판단할 경우 공격적 매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 물류센터 관계자는 "사업성 저하와 PF중단 위기에 몰린 시행사들이 낮은 가격으로 시행권과 사업권을 넘기고 있다"면서 "더욱이 공급이 넘치는 상황에다 캡레이트(요구 수익률)마저 높아지자 외국계 자본의 매입가 하향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물류센터를 포함한 국내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쇼핑이 중국 투자가 쉽지 않은데서 오는 반사이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올 들어 지정학적 이슈로 중국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어렵자 아시아 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외국 운용사들이 그 대안으로 한국과 일본 부동산 투자를 더 많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