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어 증권사도 부동산PF 돈줄 막히나...금융당국, 기업금융 물꼬 전환 시동

금융위원회가 9일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하면서, 부동산개발 시장의 자금 공급이 은행에 이어 증권사까지 위축될 전망이다. 증권사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향 아래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개발사업 자금 조달창구가 좁아지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들이 부동산PF 대출을 급격히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사마저 보수적으로 돌아설 경우 PF 자금시장 경색은 물론, 주택공급 절벽 우려까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위는 이날 “증권업이 기업금융 중심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을 공식화했다. 그 일환으로 오는 6월 중 증권사의 부동산 건전성·유동성 관리 방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를 중심으로 부동산 채무보증과 대출에 대한 NCR(영업용순자본비율) 리스크값을 세분화하고, 총 부동산 익스포저 한도를 신설하는 것이다.

현재는 투자 형태에 따라 위험값이 일괄 적용된다. 채무보증은 18%, 펀드는 60%, 대출은 100% 수준이며, 국내 주거용 외 대출은 60%로 간주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업 진행 단계, 분양 여부, 보증 유무, LTV 등 실질적 리스크 요소를 기준으로 리스크값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증권사가 LTV 60% 이상인 브릿지론을 100억 원 대출할 경우, 기존에는 2.6% 수준의 위험값이 적용됐지만, 향후에는 최대 13%까지 부과될 수 있어 수익성에 타격이 예상된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부동산 채무보증 외에도 대출과 펀드 투자를 포함한 ‘부동산 총 익스포저’에 대해 자기자본 100% 한도 규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업계는 이 제도의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예측하고, 내부 기준 정비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정책은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불거졌던 자본시장 리스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당시 PF-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며 일부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이후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NCR 및 유동성 규제 강화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증권사 발행어음 조달액 대비 기업 모험자본(VC, 메자닌 등) 공급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2025년 10% → 2027년 20% → 2028년 25%)할 계획이다. 반면, 발행어음 운용자산 내 부동산 관련 자산은 현재 30%에서 2025년 15%, 2027년 10%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정부의 고강도 증권사 부동산금융 규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미 은행들도 PF 자금공급에서 한발 물러선 상황이어서 시장 내 주요 PF 플레이어는 더욱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은 올해 들어 RWA(위험가중자산) 한도 관리 차원에서 PF대출에서 재건축조합 사업비 대출이나 실물 담보대출로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이 올 초 검사 결과를 통해 은행권 브릿지론 약 9300억 원을 부동산담보대출로 편법 취급한 사실을 적발, 관련 리스크에 대한 엄정 제재 방침을 밝히면서 은행권 전반이 더욱 보수적인 PF 취급 기조로 바뀌고 있다.
한 부동산금융 관계자는 “은행이 빠진 자리를 증권사가 일정 부분 메워왔는데, 증권사까지 물러나면 개발사업 자금조달은 사실상 마비 수준”이라며 “브릿지론이나 본PF 중·후순위 딜을 소화하던 증권사들까지 리스크를 꺼리게 되면 개발사업 파이프라인 자체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부동산금융 축소 기조는 정부 내에서도 정책 엇박자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주택 인허가 감소에 대응해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인데, 금융당국은 부동산보다 기업금융 중심의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방향성이 엇갈리고 있다.
한 증권사 본부장은 “주택 인허가가 급감해 국토부는 공급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금융위는 부동산금융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리스크를 줄이되 공급은 유지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