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자금 고비 넘긴 부동산PF시장, 이젠 `시공사 찾기' 허덕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A시행사는 요즘 시공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시공능력 150~200위권이면서 신용등급 A급을 찾고 있으나 여기에 해당되는 건설사들이 현장 공사상의 어려움을 표하며 도급 계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A시행사는 시공사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며 본PF 클로징(약정)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급격한 단기자금시장 경색을 넘긴 부동산PF업계가 이제는 건설사를 찾지 못하는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미분양이 늘고 공사비가 불어나자 공사 수주를 꺼리는 건설사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올 들어 대형 건설사들은 신규 사업수주 볼륨을 최소화하되, 이미 수주한 사업의 원가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불어닥친 레고랜드발 충격을 딛고 단기금융시장은 유동성 위기를 한고비 넘겼다. 최근 우량 회사채(AA- 3년)와 우량 기업어음(CP, A1급 3개월물)은 4%대 금리로 떨어졌다. 이 보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A2급 CP는 9%대 금리를 주긴 해도 차환 발행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총 40조원의 시장안정프로그램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에 새로운 금융지원 대책 발표 보다는는 중소 증권사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기존 PF ABCP 매입 프로그램의 운영 기간 연장과 매입금리 조정 방안이 검토하는 정도에서 기존 대책 보완에 나서고 있다.
한 부동산금융 관계자는 "작년 말 자금연장이 안돼 큰 위기를 겪던 건설·증권사들이 금리 안정세에 힘입어 고비를 넘겼다"면서 "금융당국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금융사도 이제는 거의 없어 정부도 단기금융시장에 대해 다소 여유를 갖고 바라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의 관심은 `자금 조달' 이슈에서 `시공사 확보' 이슈로 넘어갔다. 전주를 구해도 시공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본PF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처할 수 있어서다. 높은 금리와 공사비, 업황 악화 등으로 미분양이 늘자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시공을 포기하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최근 대우건설은 울산 동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개발사업의 후순위 대출 보증(브릿지론)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고 시공권을 포기했다. 대우건설 측은 본PF 대주 모집이 안돼 브릿지론 보증을 상환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속내로는 공사비 증가와 미분양 우려에 손절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성백조주택은 지난해 말 서울 송파 가로주택정비사업의 190억원 브릿지론 보증을 대위 변제하고 이 사업에서 발을 뺐다. 금성백조 역시 침체된 주택청약시장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성백조 관계자는 "부동산시장이 언제 회복될지 불확실하다"면서 "금융비용을 포함해 브릿지론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 불안이 안정화될까지 수주 볼륨을 대체적으로 줄이자는 게 최근 건설사들의 공통된 컨센서스다. 현대건설은 민간수주를 지양하되 이미 수주한 프로젝트의 에스켈레이션(ESC, 물가변동 사항) 파악과 이에 따른 수주변동계약(CO)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현장 주관으로 도급 협상을 진행하고 계약서에 반영되지 못한 물가상승분에 대해 일부 법정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GS건설도 민간 수주 볼륨을 줄이고 서울지역 재개발·재건축에 한해 참여할 계획이다.
대형 건설사들의 몸사리기가 확산되면서 부동산PF시장에서 시공사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책임준공 확약을 해줄 시공사가 없으면 당연히 자금조달도 불가능하다. 시행사 관계자는 "적정 분양가에 맞춰 시공을 해줄 건설사를 찾는 게 요즘 `하늘의 별따기'"라면서 "지금은 전주를 찾는 것보다 시공사 찾는 게 우선순위가 됐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