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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금융시장에서 ‘책임준공’의 진화

김갑진
- 13분 걸림 -

한국의 건설 생산에 PF(프로젝트 파이낸스) 방식의 개발금융이 도입된 것은 IMF 외환위기 이전이었습니다. 약 30년 정도의 개발 경험을 거치면서 우리는 다양한 건설 자본을 구축하기 위해 PF방식의 재원 마련 수단을 활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PF의 본질적 특성과는 다른 한국만의 독특한 관행을 만들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PF의 본질적 특성은 흔히 ‘자금조달 기준’과 ‘상환 미이행시 처리방식’을 두고 종전의 기업금융과는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업주(기업)와 독립된 프로젝트 자체의 미래 현금흐름을 자금조달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과 상환 불이행시에도 그 사업(담보)가치를 초과하는 부분에  소구하지 않는다(non-recourse)는 점이었습니다.

도입 이후 운영된 한국형 PF는 PF의 본질적 특성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자금조달의 의사결정에 사업성공 가능성 등 사업(프로젝트) 특성이 상당 부분 고려된다는 점에서 PF라 불릴 수도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대출 실행 이후 혹시나 생길 사고를 대하는 부분에서 한국은 전통적 기업금융과 PF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PF대출에 엮여있는 각종 신용보강 장치로 사업성을 넘어 사업주와 보증인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기 때문입니다.

PF금융 위험은 대출금이 온전히 상환돼야만 없어지므로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은 목적물의 완성과 나아가 의도한 대로 수익이 창출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PF 위험을 흔히 준공 위험, 시장위험 등으로 구분하지만 위험은 그 발현 원인, 통제 가능성, 해결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내생성과 외생성을 띠게 마련입니다.

인간에게, 제도에게 완전성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단과 제도의 장점을 살려 기존보다 도전의 기회를 늘릴 수 있는 것이라면 불완전함을 인식하면서도 도전했습니다.

한국형 PF의 불완전함은 PF 출발 당시, 아니 산업화 이후  ‘시공’ 중심의 국내 건설생산 문화로부터 이미 배태된 것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공과 시행’이 비대칭적으로 성장한 원인은 다양하게 진단 가능할 것이므로 여기서 굳이 그 연원을 추적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산업화 과정에서 건설자본의 수요는 공적, 집중적, 일시적이라는 특성을 띠는데 대개의 경우 그 생산재원은 국가 등 건설 생산자의 몫이었습니다. 건설회사(공급자)는 집중된 수요에 부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공이면 충분했습니다.

‘시행’은 뜻하지 않은 출현 경로를 밟습니다.  시공중심의 건설로 IMF 외환위기 직전 주요 건설사의 평균부채비율이 600%를 넘나들자 세상은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의심하게 됩니다.

대마가 혹시라도 죽으면 그 피해가 국민경제에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PF금융은 IMF 외환위기 후 시공과 시행이 분리돼야 하는 (또는 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의 건설 환경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자본력 측면에서 시공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행사에 자금을 공급하기에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열악한 자본력을 갖는 PF사업 주체에 아무래도 ‘위험 대응력’ 측면에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모를 뒤탈의 여지를 줄여야겠는데 역시 믿을 것은 시공사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시공사의 ‘책임준공’이었습니다.

1.책임준공이란 무엇인가?

일반인에게 책임준공의 의미를 묻는다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사전적 또는 상식적으로 이해한다면 ‘책임을 지고 준공하라’, ‘시공사의 책임 아래 준공을 완수하라‘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임준공이라니?’, 한국의 건설에서 그렇다면 시공사가 언제는 준공의 책임을 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건설공급자로서 건설사 대다수는 주어진 계약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 대가를 받아 사업을 영위해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건설사 시공 관련 불이행 위험을 담보하는 건설(이행) 보증이 이미 공제조합과 서울보증보험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책임준공의 진정한 의미는 위의 사전적 이해와는 다릅니다. 일반인이 이해하는 ‘책임준공’의 사전적 의미는 책임준공이 아닌 ‘책임시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실무계에서 활용되는 책임준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업약정서에 표현되는 책임준공의 의미는 <표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책임준공의 진정한 의미를 해석해보면 책임준공의무는 통상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 시행사의 의무 불이행, 시행사의 부도, 공사비 미지급, 인허가 미비, 하수급인 등 제3자의 의무불이행, 민원 등 어떠한 경우에도 일정 기간 내에 건축물을 준공하고 사용승인(준공검사)을 받을 의무”로 요약됩니다.

문제는 이 책임준공의무 부담주체인 시공사가 스스로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아닌 - 인허가 미비, 시행사의 의무불이행(예 사용승인 미신청) 등의 사유로 준공을 못할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시공사는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로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책임준공의무의 불이행으로 시공사가 지는 책임은 준공불이행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당시 시점까지 대주단 원리금미상환 잔액의 인수(채무인수)입니다.  시공사는 심지어 자신의 귀책사유가 아닌 경우조차 자신의 공사대금 상실은 물론 시행사의 채무잔액을 책임지는 위험을 책임준공의무를 통해 부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책임준공’은 도대체 그 개념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서구 사례를 보면 프로젝트 금융 사업에서 사업주가 대주에 제공하는 완공보증(Completion Guarante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완공보증은 시공자의 시공 의무와는 독립적으로 프로젝트 진행 차질로부터 벌어질 대주의 손실위험을 프로젝트 사업주가 담보하는 일종의 ‘손해배상 담보계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주는 어떤 이유에서건 프로젝트를 통한 현금창출 조건에 장애가 생겨 자신의 채권 회수가 어려울 경우 차주에게 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유인을 갖게 되는데, 완공 보증은 이에 대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국내에서 활용되는 ‘책임준공’은 그 의무이행 조건이 시공상의 발주자 귀책사유와 무관하고, 의무위반에 따른 담보대상이 대주의 채권손실 상당액이라고 보면 그 의미는 서구의 이 '완공보증'과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부담주체가 프로젝트 사업주가 아니라 시공자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왜 시공자가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게 된 것인지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행사와 시공사의 자본력 차이 등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책임준공의 실질은? ‘하는 채무’ Vs ‘주는 채무’

책임준공 형평성에 대한 상식적인 문제 제기와 별개로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는 책임준공의 그 실체적 의미를 규정하는 판결을 내게 됩니다.  

대법원은 '책임준공은 비록 법적 형식이 ‘하는 채무’이지만, 대출채무에 대한 보증으로서의 기능이나 경제적 실질을 가진다'고 판시했습니다.(2014다 75349판결)

즉, ’책임준공의무를 위반할 경우 대주단이 책임준공의무 이행을 강제해 완성된 물적 담보로부터 대출원리금을 회수하기보다는 시공사로 하여금 책임준공의무 위반으로 금융기관(대주단)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그 한도 내에서 대출원리금 상당액을 직접 회수‘하므로 책임준공 의무의 경제적 실상을 보증과 같은 신용공여로 본 것입니다.

3. 시장의 진화

지난 2016년 부동산신탁사는 이른바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 토지신탁’ 상품을 출시해 시공사의 책임준공의무를 신용보강하는 주체로 나서게 됩니다.

주요내용은 시공사의 시공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시공기한에 일정기한(6개월)까지 신탁사가 시공사 교체 등을 통헤 책임준공을 완료하고 그 이후에도 준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출원리금에 상당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이 침체되고 PF사업 위험이 급증한 2022년 이후 책임준공 의무가 지켜지지 않은 사업에 대해 신탁사가 제대로 보증채무를 이행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건설공제조합이 책임준공보증 상품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신탁사에 이어 두 번째로 시공사의 책준의무를 분리 부담하는 주체로서 전업 보증기관인 건설공제조합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건설공제조합의 책임준공 보증은 보증기관이 ‘하는 채무’ 즉, 보증인인 조합이 주도하는 ‘역무이행’을 통해 먼저 보증채무를 이행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공사의 책임준공 의무 위반으로 보증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증인은 시공사를 대신해 제3의 보증이행업체를 통해 보증채무인 책준의무를 이행할 수 있고 이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출원리금 상당의 손해배상액을 보증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건설공제조합의 책임준공 보증은 책임준공 의무를 시공사의 불이행만으로 곧바로 확정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아가 신용공여적 성질에 이르기까지 본래적 외관에 따른 ‘하는채무’로서의 기회를 살린다는 점에서 PF시장의 진화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상품이 시장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사고나 문제가 발생해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계속 진화를 거듭해갈 것입니다.

건설공제조합 책임준공보증 구조(자료=건설공제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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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준공건설공제조합파이낸스

김갑진

보증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경제의 어제와 오늘(우리가 사는 집과 도시)' 저자입니다. 아주대 겸임 교수를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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