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자산운용사 부사장이 강남역 스타트업 대표에 도전한 까닭
금리 상승에 따른 부동산PF 및 금융시장 위축으로 여의도 금융투자업계, 특히 부동산금융 시장은 한파를 겪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위기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약 30년간 국내 및 해외 부동산 투자업에 몸담고 금융사에서 일했던 C-레벨(Level)급 고위 임원이 금융권이 아닌 강남의 부동산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해 그 배경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의 풍부한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동종 금융계로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온실을 뛰쳐나와 매섭고 추운 허허벌판에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한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이학구 아이엠박스 전략부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경험은 결코 늙지 않아요). 몇년 전 아주 재미있게 봤던 영화 '인턴' 중 제가 기억하는 명대사입니다."
이 대표는 이렇게 인터뷰 말문을 열었다. "대학 졸업후 지난 30년간 대기업인 한화 호텔&리조트, 삼성생명, 외국 회사인 도이치뱅크 AMC(현 DWS 자산운용)와 싱가포르투자청(GIC), 국내 금융그룹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과 다올자산운용(옛 ktb자산운용)에서 다양한 국내외 부동산 투자. 금융 업무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공적인 딜 클로징과 매각이라는 행복한 순간도 있었고, 딜 클로징 실패와 투자 손실이라는 뼈아픈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간의 직장생활에서 겪었을 희로애락을 느끼게 된다.
이 대표가 부동산 투자, 금융 업무를 시작한 2001년은 리츠법 (부동산투자회사법)이 시행돼 명실상부한 한국 부동산 간접투자시대가 열린 해다. 이후 부동산펀드법(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통과되면서 한국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본격적인 부동산 간접투자 부흥기를 맞는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기관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 이후 이 대표는 일년의 반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낼 정도로 다양한 해외투자를 경험했다. 그런 그가 프롭테크(부동산 스타트업) 회사로 간 것이 선뜻 와닿지 않아 배경을 물었다.
"작년 6월 글로벌 부동산서비스회사인 존스랑라살(JLL)은 국내 셀프스토리지 지점 수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약 1.5배 성장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즉, 국내 셀프스토리지 지점은 2023년 5월 기준 약 300여개로, 1년전인 2022년 동월 대비 56.4% 증가했습니다. 주거 비용의 상승 및 주거 공간의 축소가 셀프스토리지 성장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존스랑라살의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셀프 스토리지 회사로 이직한 속내를 꺼냈다.
"한국 상업용 부동산 섹터중 이렇게 급성장하는 분야는 드물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본격적으로 셀프스토리지 시장이 한국에 도입된지 몇 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앞으로의 성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그가 합류한 아이엠박스는 2023년 1월 약 10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1년후인 올해 1월 현재 약 40개의 지점을 운영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인턴의 명대사처럼 기존 창업자와 젊은 직원들의 패기와 열정에 저의 경험이 잘 융합한다면 회사와 구성원들이 잘 성장하겠다는 확신을 갖고 주저하지 않고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1998~2000년 미국 대학원 유학시절 한 학기동안 한국에 돌아올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기숙사에 갖고 있던 개인 짐을 미국 셀프스토리지에 약 4개월간 보관한 경험이 있는 이 분야의 '얼리 어답터'인 셈이다.
"당시만해도 개인 짐을 단기간 보관한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때 경험이 제가 아이엠박스에 합류하는데 일조를 했네요."
해외 부동산 전문가답게 그는 미국 셀프스토리지 시장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을 리츠로 금융상품화한 역사가 오래됐고,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부동산 리츠가 상장되어 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1월부터 최근까지 통계를 살펴보며 코로나 시대의 수혜주라 할 수 있는 셀프 스토리지, 데이터 센터, 물류 센터에 투자한 리츠의 주가가 급상승했습니다. 반면에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오피스와 백화점에 투자한 리츠 주가는 대폭 하락했죠. 지금은 코로나 엔데믹 시대지만, 이런 흐름은 쉽게 변하지 않고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대표의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 정도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그가 아이엠박스에서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일까.
"아이엠박스는 비영리회사나 봉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매출과 당기순이익 등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수익의 원천이 공간을 소유했지만 장기 공실로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또한 1,2인 가구의 좁은 거주 면적으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을 저비용으로 줄여준다면 나름대로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여타 여의도 금융인들과 비교해 파격적인 선택을 한 이 대표와 그가 소속된 아이엠박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