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민자사업 초기 자금조달 `블라인드펀드' 급부상 ...건설·금융사 니즈 충족
민간투자방식의 인프라사업을 발굴해 최초 제안할 때 블라인드펀드를 활용하는 방식이 급부상하고 있다. 건설사는 초기 비용부담을 덜면서 사업권을 쥘 수 있고, 펀드에 자금을 댄 금융사는 주간사 권한 및 금융 참여권을 미리 확보할 수 있어서다.
다만 민자사업 특성상 전문기관의 민자적격성을 통과해야 하고, 이어 제3자 제안을 통한 경쟁 절차도 밟아야 해 사업권 획득에 실패하는데 따른 리스크도 지어야 한다. 민자사업 최초 제안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블라인드펀드 활용 방식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봤다.
민자 최초 제안시장서 펀드 활용방식 왜 나왔나
2010년대 이후 민자사업 경험이 축적되면서 국내 은행 사이에 초기 개발단계부터 금융주간권·금융참여권을 따내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사업 초기가 아닌 건설사컨소시엄이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된 뒤에 입찰을 거쳐 주간권을 확보하려면 금융사간 경쟁이 치열한데다, 금융주선 수수료도 박해진다.
이에 지난 2018년에는 은행이 아예 민자사업의 초기 주체로 나선 재무투자자(FI)주도의 민자 방식이 나왔다. 그해 신한은행컨소시엄은 실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사업권을 FI주도 방식으로 따냈다.
그런데 많게는 수백억원 가까이 선(先)투입된 설계용역비 등 초기사업비의 처리 문제가 불거졌다. 시공사 주도 민자사업에서는 시공사가 이 비용을 충당했다. 하지만 매몰비용이 될 수 있는 초기사업비를 은행들이 직접 부담하고 회계처리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GTX A 사업에도 건축, 기계, 신호, 통신 등의 설계 관련 중소 엔지니어링사들이 설계에 참여했지만 비용을 제때 받지 못해 진통을 겪었다. 이에 은행이 펀드에 자금을 간접 투자하고 펀드가 민자사업 초기 비용을 대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에도 많이 쓰이는 개발형 블라인드펀드는 비용 처리에 제약이 덜하기 때문이다.
초기 사업비에는 설계용역비가 대부분이지만 각종 외주를 받는 교통수요 예측, 회계 및 재무모델 분석비 등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철도 제안사업의 경우 사업비 5000억원당 30억원 정도가 초기사업비로 쓰인다고 민자업계는 설명한다.
어떤 펀드가 초기 제안시장에서 활동하나
신한은행 기업은행 하나은행 등이 블라인드펀드를 활용해 사업 초기에 참여하는 시장을 열었거나 펀드 활용에 적극적이다.
사업성이 양호한 민자사업을 초기부터 관여하면 금융주간권 및 금융참여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A은행 관계자는 "초기부터 사업을 진행하면 치열한 금융주선기관 입찰 경쟁 없이 금융주간권을 확보할 수 있고 적정 수수료 마진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평택~봉담 민자고속도로(서평택 분기점부터 봉담송산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마도JCT까지 기존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마도JCT부터 시화JCT까지 왕복 6차로에서 8차로로 확장)가 국토교통부에 최초 제안됐는데 DL이앤씨, 대한(설계업체), 기업은행이 제안자 컨소시엄을 형성했다. 기업은행은 키움자산운용의 블라인드펀드를 활용해 이 사업에 투자한다.
신한은행은 칸서스자산운용 등과 손잡고 민자 인프라 개발용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며 각종 도로 철도 등의 최초 제안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주자이지만 민자 인프라사업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하나은행도 민자 개발 전용 블라인드펀드 조성에 뛰어들었다. 하나은행은 하나금융지주 계열사와 함께 7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내부 심의중에 있다. 이달 중 심의를 마치는대로 다음달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을 통해 펀드를 설정할 예정이다. 펀드 설정 이후 랜드마크급 도로나 철도사업의 초기부터 참여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은행들의 움직임에 대해 민자 건설사들의 호불호는 엇갈린다. DL이앤씨 현대로템 현대엔지니어링 등은 이런 초기 금융수반형 민자 모델을 받아들이고 있다. 펀드 자금을 이용해 초기 개발 비용 부담을 덜면서 금융권 시각에서 사업 리스크 요소를 꼼꼼히 살필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본다. 반면 최초제안 초기부터 금융권의 사업 간섭을 꺼리는 건설사들도 적지 않다. 이들 건설사는 기존 방식대로 독립적으로 최초 제안하는 것을 선호한다.
민자개발 전용 펀드의 리스크 관리 방안은?
워낙 초기단계에 참여하는 펀드라 손실 위험이 따른다. 민자적격성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통과해도 제3자 제안을 통해 다른 업체에 사업권을 빼앗길 수 있는 리스크다. 이 경우 각 사업에 투입된 초기 비용을 매몰(전액 손실) 처리해야 한다.
때문에 민자 인프라 개발 블라인드펀드이지만 손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설정 전략을 취한다. 민자사업 확보에 실패하는 것에 대비해 여러 다양한 초기 민자사업을 담는 방안이 있다. 10개 사업 중 1~2개 손실을 보더라도 다른 성공 사업으로 수익률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펀드 설정액의 30% 정도만 최초 제안사업에 투입하고 나머지 70%는 현금흐름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신재생 에너지사업을 담는 전략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태양광과 같은 캐시카우가 확보된 기초 자산을 어느정도 확보해놓고 민자 최초제안사업 투자 비용에 대한 매몰 리스크를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펀드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민자사업권을 따내자 마자 그 시행법인에 일정 프리미엄을 얹어 투자지분을 양도하는 투자전략도 특징이다. 투자 수익 회수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민자사업이 준공된 뒤 회수히려면 장기간 소요되는 만큼 초기 개발에 투입된 블라인드펀드는 프리미엄을 받고 사업지분을 팔아 다른 초기 개발사업에 활용하거나 펀드 수익률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사진설명: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이 지난 6일 GTX-A 공사현장을 방문해 조기 개통에 만전을 당부하는 모습(사진: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