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배상으로 바뀌는 책준확약, 대주단은 수용 난색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상품(책준확약)이 준공 지연에 따른 대출원리금 전액 배상에서 실제 손해(실손)만을 배상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배상 범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대주단은 새로운 책준확약을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12일 신탁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하반기 중 책준확약 관련 모범규준(업무처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다. 모범규준이 수립되면 신탁사는 이에 맞춰 시행사 등과 책준신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현 책준확약과 관련해 신탁사의 책임 범위와 실제 부담하는 위험이 불명확해 신탁사의 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계약사항 전반을 들여다보고 손질하고 있다.
당국이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모범규준안(초안)에 따르면 책준확약상품의 손해배상 범위가 건축물 준공 지연에 따른 대주의 실제 손해로 바뀔 전망이다. 대출원리금 전액 상환이나 대주의 기회비용 보상 등에 대한 책준 약정은 금지된다.
신탁 정산(관련 법적 판결 또는 합의 포함)이 끝난 뒤 배상액 등이 확정된다는 점도 모범규준에 담긴다. 사고 사업장의 배상 처리를 놓고 신탁사와 대주단의 주장이 곳곳에서 엇갈리자 배상액 확정시점을 명확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 책준기한이 연장될 경우 신탁사 책준 기한도 동시 연장되며 대출금융기관은 대체 시공사 선정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될 전망이다.
책준확약이란 시공사가 기한 내 건물을 다 짓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탁사가 준공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이다. 대주단 채무를 대신 이행하거나, 다른 시공사로 교체해 공사를 이어가게 된다. 시공사 교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최근에는 신탁사들이 신속한 교체를 위해 대체 시공사 풀(POOL)을 구성하고 있다.
신탁사들은 자금경색이나 운용자금 부족을 겪는 건설사 리스트를 공유하는 등 부실시공사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신탁사가 공유하는 부실 우려 중소 시공사는 전국에서 10여개에 이른다. 그런데도 공사 중단이나 지연된 사고 사업장이 눈에 띄게 늘면서 신탁사들의 책임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모범규준이 초안대로 확정돼 시행되면 신탁사의 부담이 줄어드는 반면 대주단이 책준 리스크를 더 지게 된다. 예를 들어 A신탁사가 책준확약한 경기 소재 생활형숙박시설 사업과 관련, 지난해 시공사의 준공 차질로 책준 기한을 넘기자 A신탁사는 대주단이 지급한 대출원리금 전액을 상환해줬다. 그런데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A신탁사는 대출원금을 제외하고 대주가 실제 손해를 입은, 즉 미수령 이자와 연체 이자만을 돌려줄 가능성이 높다. 대출금은 대체 시공사를 통한 준공이나 사업장 공매 등을 거쳐 회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책준신탁 계약서상 불명확한 부분이 적지 않아 신탁사가 배상하는 손해액이 대출금 전액이냐, 실제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냐를 놓고 다툴 여지가 있다"면서 "모범규준은 손해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범규준이 제정되면 책준확약시장이 쪼그라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출금융기관이 새 책준확약을 수용하고 돈을 빌려주기 쉽지 않아서다. 지금도 신탁사들의 내부 수주심사 강화로 책준확약시장이 얼어붙었는데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더더욱 시장이 냉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신탁사의 책임이 줄어든 만큼 대주단이 리스크를 지는 구조"라며 "책준확약을 믿고 중소 건설사의 PF사업에 대출 참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책준확약시장이 축소되고 신탁 사가 시행을 직접 대행하는 차입형이나 혼합형 토지신탁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쟁점 사항과 대출금융기관의 수용성 마련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뒤 실효성을 확보해 모범규준을 제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