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넘기고 하반기 보자" 대형 브릿지론사업장 만기연장 행렬
서울 용산 유엔사부지를 비롯해 대형 브릿지론 사업장의 만기 연장이 이어지고 있다. 금리 불확실성이 크고, 투자심리가 가라앉은 상반기를 넘긴 뒤 경제가 안정화 기미를 보일 하반기에 사업 승부를 걸겠다는 분위기다.
21일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유엔사부지 복합개발사업의 시행사인 일레븐건설과 금융주간사인 메리츠증권은 이달 20일 만기인 브릿지론을 오는 6월20일까지 3개월 연장했다. 대신 기존에 비해 1000억원 증액한 총 1조1000억원의 브릿지론을 조달하는 대출 및 사업약정을 대주단과 체결했다. 대주단에는 메리츠금융그룹이 참여했다. 메리츠증권의 사모사채 매입 의무 조건으로 3개월물 3000억원의 전자단기사채 발행분이 포함됐다. 이 사업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지난달 초 착공에 들어갔다.
브릿지론을 연장한 데 대해 금융주선기관 관계자는 " 선분양 예정인 오피스텔의 분양일정과 분양가를 확정하지 못했다"면서 "분양가 등의 사업계획을 정하고 초기 사업비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브릿지론을 연장했다"고 말했다.
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를 현재 건축중이어서 브릿지론 연장 기간을 3개월 정도로 잡은 것이다. 시행사 측은 6월 말 브릿지론 만기 때 본PF로 전환하고 오피스텔 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서울 강남 청담동 주상복합 개발사업인 `루시아청담 514 더 테라스'도 지난 10일 2차 공매에 들어간 것과 별개로 브릿지론의 6개월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 시행사인 루시아홀딩스는 대주단을 상대로 152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 6개월 연장 동의를 받고 있으며 이달 말 연장 협의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주단 대부분이 연장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사별 심의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장 과정에서 700억원 선순위 플레이어인 메리츠화재가 엑시트하고 그 자리를 하나F&I가 대신한다. 또 다른 200억원 선순위인 BNK캐피탈은 그대로 참여한다. 브릿지론 연장 건이 타결될 경우 진행중인 공매는 최소된다. 루시아홀딩스 관계자는 "하반기에 금융시장이 안정된 뒤 분양하면 사업성은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노들역 푸르지오 공도주택개발사업도 이날 브릿지론을 1250억원에서 2430억원으로 증액해 3개월 연장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의 채무인수 의무 조건으로 2430억원의 PF유동화증권을 발행한 것이다. 이 금액으로 기존 1250억원의 유동화 대출을 상환했다. 다만 이 사업은 오는 2025년 10월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브릿지론 연장을 통해 상반기를 넘기자는 게 건설업계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최근 미국 SVB의 파산 여파로 금융시장이 불안한데다 고금리, 경기 침체 등이 겹치면서 투자심리의 관망 분위기가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주택시장이 가격 하락과 미분양 물량 증가로 경착륙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해외 은행의 뱅크런과 금리 위험 관리 실패 등으로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가 현실화하면 국내 주택시장 경기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올 상반기가 고비의 정점이라고 보고 소나기를 피하자는 식으로 만기를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달 대주단 협의회가 가동되면 채권행사 유예, 만기연장, 대출조건 변동 등의 대주단 결정이 더욱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브리지론만 연장하는 시행사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경기 침체가 예상에 비해 장기화할 경우 건설사 PF우발채무가 위험수위에 도달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나신평은 부동산 업황 침체가 장기화하면 미분양 위험지역 확대 등의 영향으로 위험성 우발채무 규모가 확대될 우려가 있고, 자금조달 상황이 악화할 경우 건설사의 현금 유동성이 빠르게 소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세진 나신평 수석연구원은 "재무 부담을 악화시킬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이 상존하는 현 상황에서는 현금 유동성 및 재무 여력 확보 수준이 건설사 대응력의 핵심 요소"라며 "현금 유동성 등이 충분하지 못한 건설사는 업황 침체 장기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고, 이는 신용도 저하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