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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행업계에 족적 남긴 고 거평그룹 나승렬 회장 스토리

원정호기자
- 12분 걸림 -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한국의 인수합병(M&A)역사와 부동산 디벨로퍼 산업에 족적을 남겼다.

필자는 지난 2020년 나 회장을 여러차례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주했다.   인터뷰는 생전에 자신의 일생과 공과를  정리하고 싶다는 나 회장과 가족의 제안에 따라 이뤄졌다.

인터뷰를 통해 본 나 회장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가문과 학벌을 중시하는 서울, 그것도 차별이 심한 기업 전쟁터에서 고지를 점령한 경영 전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평생 열심히 달려간 종착지는 낭떠러지였던 비운의 전사다.

지난 1945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7살인 1950년 6·25 전쟁 통에 부친을 잃었다. 이어 유년시절 이발소 심부름을 지낸 가난뱅이 소년이었지만 30대 재벌을 일군 회장으로 통한다.  

깡촌 시골의 국민학교 졸업장을 가진 그에게 공인회계사라는 꿈이 있었고 이는  분명 과분한 것이었다. 더욱이 국내를 대표하는 30대 그룹 재벌 오너의 꿈 역시 일개 아이스크림 회사인 상감기업 경리부장이 갖기엔 무모한 욕심이었다.

그는 흙수저였지만 본인의 손으로 30대 재계 오너로 올라서는 꿈을 이뤄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금수저 외에 제대로 된 창업 신화가 없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더욱 그의 존재감을  빛나게 한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입학을 포기한 나 회장은 무임승차로 서울에 상경, 고달픈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막일에 야채행상, 도둑질 빼놓고는 다했다는 이 시기의 나 회장은 그 와중에도 배움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경리학원에 다녔다.

그는 주산, 부기, 회계에 빼어난 두각을 나타내 한국전자라는 회사에 입사하고, 뒤이어 삼강기업에 과장으로 스카웃하는 등 오랜 고생끝에 기반을 잡게 된다. 돈이 도는 곳의 맥을 잘 짚었고 그 길목에는 그가 있었다.  셈이 빠른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돈이 모이는 곳을 제대로 짚어나갔다.

그의 인생에서 성공 비결은 부지런함과 신중함, 과감한 배짱으로 요약된다. 나 회장의 학벌은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게다가 잘 생기지 못한 인물의 소유자다. 학연과 연줄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 풍토에서 학벌 없고 인물 없고 돈 없는 그가 서울에서 성공을 일궈낸 이유는 3가지로 요약된다.  사물과 환경을 보고 분석하는 능력,  재무분석능력과 회계지식, 마지막으로 현장에 가서 보기 위해 발로 뛰는 열정적 노력이었다.

그는 상경한 뒤 전문적 회계지식을 쌓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공부했다.

이렇게 해서 재무 분야에 정통한 덕분에 나중에 기업을 인수시 계획을 갖고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또한 부의 축적과 부동산 신화를 일궈내기 위해 삼각자와 주판을 들고 현장을 항상 가서 보고 확인하고 분석했다.

1988년 부동산 붐을 타고 기획한  서울 서초동 센츄리 오피스텔 개발사업의 등의 연이은 히트로  훗날 거평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한다.  모두 말리던  동대문 거평프레야 사업도 그의 계획대로 성공을 거뒀다.  

나회장이 거평마트를 방문한 모습

94년 대한중석을 인수했던 일은 재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킨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의 이러한 고도의 인수합병 전략은 서울대에서 M&A 사례 강연이 될 정도였다.  거평그룹은 1997년 전성기 때 2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28위의 기업이 됐다. 그의 인간적 매력은 뭘까. 우선 시골촌놈에서 느끼는 소탈함과 검소함이 꼽힌다.

벌고 안 쓰면 돈을 번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백화점에서도 물건 값을 깎고 뒷축이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닐 정도로 검소했다.

회사에서도 짜장면을 시켜먹는 소탈한 인물이다.  98년 1월 말 MBC 성공시대에 출연한 그는 회장 집무실 탁상에 신문지를 깔고 짜장면을 시켜먹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의 호평을 샀다.   짜장에 돼지고기 많이 넣어서 보내달라는 회장님의 전화 주문은 회장이 아닌 서민 그 자체였다.

배달 음식이 도착하자 나무 젓가락을 쪼개 면발을 입에 맛있게 넣는 원조 먹방(먹는 방송) 장면을 보여줬다.  당시 이 친근한 이미지로 상당한 방송 효과 누렸다.

1989년부터 나승렬의 성공열차에 동승한 조카 나선주는 나회장을 한마디로 업무에 관한 한 무섭도록 치밀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한없이 천진난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회장실 소파 옆 탁자 위에 놓인 손때묻은 주판을 나회장이 잡았다 하면 그날 결재는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조금이라도 계산에 착오가 있으면 당장 불호령을 내리고  좋은 기획과 빈틈없는 기안이면 기분좋게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실무를 중시하고 큰 흐름에는 고집이 센 편이지만 말단직원이라도 합리적으로 설득하면 즉시 자기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나회장의 성격이다.

나 회장 자신은 뒤끝이 없는 편이지만 성격이 급하고 괴팍하다고 말한다. 어떨 때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육두문자를 날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의 성격을 받아주고 느긋한 성격의 인물을 참모로 기용했다.

3년 전 인터뷰시 그의 말투는 전라도 사투리에 거칠기도 했고  화가 나면 주변 사람이나 기자를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밝히기 꺼릴 만한 개인사적 부분도 아낌없이 밖으로 드러냈다.

“솔직한 사람이 바보 취급받은 세상이라  과거에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 몇 번 후회되기도 했다.”   인터뷰 중 나 회장이 몇 번 되뇌인 말이다.  그의 진솔한 성격 탓에 때로는 큰 화를 입기도  했던 것이다 .

나 회장은  한국의 M&A역사와 디벨로퍼 산업에 족적을 남겼다.

그는 사업을 확장하고 싶으나 신규 사업을 시작할 자신이 없어 M&A에 나섰다고 설명한다.  회생 잠재력이 충분한 부실기업이 나타나고 수중에 가용 자본이 확보될 때 기업 인수를 벌였다.

"신규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업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나는 새 사업을 벌일 자신이 없어 어려운 상태에 놓인 기존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그의 사업 스타일은 곧잘 솔개에 비유되곤 했다. 하늘 높이 맴돌다가 먹이가 허점을 보일 때 날렵하게 낚아채는 솔개의 사냥 전략을 닮았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이 80년대에 돈 벌 수 있는 게 부동산 개발과 인수합병 말고 뭐가 있느냐"고 나승렬은 반문한다.

그는 디벨로퍼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만든 건설기획업이 디벨로퍼 원조다.  상권으로 좋은 지역, 주거에 알맞는 터를 찾아내 그 성격에 맞게 개발계획을 짜내 사업승인을 받은 뒤 때론 매각하기도 하고 때론 시행을 했다,
이는 고도의 창의력과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 천부적 비즈니스감각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 값이 올라갈 만한 땅을 사두고 값이 오르면 팔아치우는 투기꾼들과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서울 논현동 거평타운빌딩 터도 개발 전에는  이 지역이 절개지였고 단차와 경사가 워낙 심해 개발가치가 없다고 부동산업자들이 가치를 낮게 평했던 땅이다.  그러나 그는 역발상으로 땅을 평평히 메워 거평본사 빌딩으로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다.  한때 재계를 풍미했지만  노년에는 남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도, 밥을 먹기도 힘든 장애인의 삶을 살았다.

나 회장에게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실패한 기업인, 사람들에 피해를 입힌 무리한 탐욕주의자로 대변된다.  부도난 기업인이라기 보다는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언론에 평가되기도 한다.

지금의 잣대로 그것도 결과 중시적인 냉혹한 잣대로 그의 삶과 비즈니스를 평가 절하한 때문이다.
나 회장이 어떻게 살았는지 왜 당시 그 생각을 했는지는 철저히 무시된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작정하고 자신의 일기를  정리하고자 기자에게 인터뷰를 제안한 동기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는 한없이 괴롭히는 성격이 있다. 특히 언론이 그렇다. 실패한 경영자는 과거의 부정적 행위를 들춰내며 한없이 매도한다.

망하면 못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질 살고 있다. 뭔가 비리가 많고 부정 축재를 한 기업인이 아니냐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본다.

나 회장은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파고를 만나 당시 경영인으로 정상화 위해 불가피한 노력을 강행했다. 그런데 이게 무위로 그쳤고  응당의 책임을 졌다.  1998년 거평그룹이 해체됐고 나회장은 공금 횡령, 배임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돼 수감됐고, 이후 건강상 문제로 형 집행정지를 받았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나 회장은 노년에  뇌졸중과 위암 후유증으로  누군가에 의존해 먹고 생활하는 장애 노인에 불과했다.  최근 몇년간은 기억력도 점점 희미해지면서 가까이 있던 일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

한 야망 많은  시골의 국졸 출신의 경영인의 성공과 실패담은 지금의 직장인과 기업인에게  메시지를 선사한다.

전남 나주의 아주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기나긴 여정이었다.   나 회장을 포함해 그 누구도 부동산 개발과 인수합병(M&A), 그리고 재계 역사에서  나회장이 한 획을 그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 회장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인간관계, 비즈니스, 그리고 목표를 갖고 뛰어가는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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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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