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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격의 선과 악

김갑진
- 8분 걸림 -
픽사베이

지난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시 지금으로선 다소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제적 평등정신이 강조됐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는 제헌헌법 제84조 경제목적 조항은 이를 잘 표현한다.

제헌헌법을 설계한 유진오 박사는 이 경제목적 조항에 대한 제안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정의의 실현과 또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 다시 말씀하면 경제상의 약자를 다만 도와줄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전체에 관해서 균형 있는 발전을 하는 것을 우리나라 경제의 기본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국가적 필요로 보아서 어떠한 부분의 산업을 진흥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또 국가적 필요로 보아서 어떤 부문의 산업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러한 때에는 국가권력으로써 이 모든 문제에 관해서 조정을 할 것입니다” 유진오, ‘대한민국헌법 제안이유 설명’, 헌법의 기초이론(1950), 125P

그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의 뜻에 대해 “우리의 경제는 무원칙, 무계획하게 방임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기초위에서 일정한 국가적 계획하에 설계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계획경제의 원칙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헌법제정의 정신」에서 설명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경험이 일천하고 일제로부터 남겨진 ‘적산(敵産)’외에 이렇다할 자본이나 기업을 갖추지 못한 데 비해 북한과의 이념대결 등 당시의 여건을 종합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도 시장경제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청사진으로서 ‘균등경제의 정신 아래 국가 통제적이고 국가 계획적인 경제질서의 도입’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75년을 지나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  그 75년 동안 우리가 겪어온 시련, 또 그것을 극복하고 이룩한 성장이 현재 진행형으로 작동하고 있다. 국민의 삶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 낸 동력은 단연 경제성장이다.  우리는 지난 75년간 최빈국에서 출발해 G9(주요 9개국)을 바라보는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 도전과 성취의 결과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를 꼽는다면 ’주택‘이 아닐까 한다. 주택은 75년간 꾸준히 진화했다. 때로는 살(living) 집이 없어서, 때로는 살(buying) 집이 없어서, 우리는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했으며, 다양한 주택금융과 세제, 공급, 수요 대책을 강구해왔다.

그 사이 도심 이면에 남루했던 판자촌은 신도시로 바뀌었고, 낙후 주거지는 재건축 또는 재개발됐다. 오랜 시간 시내를 지켜왔던 자리는 그 쇠락으로 인해 외곽으로 이전해 공동화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소멸은 더 이상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수도권의 주택 집중화 현상은 몇 번의 가격 급등락 과정을 만들었다. 이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주거용 재화인줄만 알았던 집이 투자, 투기의 자산일 수 있음을 경험했고, 이제 우리는 집을 바라볼 때 자산으로서 집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집값이 다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하락조짐이 만연하다. 매물이 쌓이고 거래가 줄었다. 오르기만을, 혹은 내리기만을 기대하는 극단적 대립은 주택의 사회성, 공공성을 둘러싼 하나의 이념대립과도 같다. ‘모든 이에게 안정적 주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철모르거나 경쟁에서 패배자 취급을 받는 듯하다.  ‘내 집의 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세제를 강화하거나 대출을 축소하는 수요억제책은 가격왜곡이자 사유재산권 침해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이 집을 두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적대적 인식을 갖게 된 것을 우리 선조들은 예상했을까?  우리 역사가 75년에만 머무를 리 없다. 우리의 자식은 물론 그 이후 세대들까지 누대에 걸쳐 존속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현세대의 책무인지 모른다. 소득과 자산의 괴리가 역대 최고조에 이른 현재를 물려준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느낌에 찜찜하다.

현재의 수도권 주택 가격의 상황은 모두 안다.  2014년 이후 급등을 거듭하던 수도권 집값이 2021년 3분기까지 평균적으로 2014년에 비해 약 2배 이상 올랐다. 이후 2022년 3분기까지 고점대비 약 30% 내외 하락하다 2023년 3분기까지 다시 15% 내외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부동산통계원 공동주택실거래 가격지수 참조)  

언론은 송도, 동탄, 잠실 등 지역별 아파트 가격의 급등락 양상을 자극적으로 중계하고, 유튜브에서 상승론자와 하락론자들의 주장과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장기적인 집 값 안정세를 바라는 일은 이처럼 어려운 일일까?  변동성이 큰 재화일수록 투기적 거래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집은 언제 어느 순간에 거래하느냐 따라 수억원의 손익변동을 보이고, 그에 따라 점점 사는 곳이 아니라 사고 파는 재화로 변했다.

최근 청년과 서민 등 약자의 수요를 뒷받침하는 주택금융과 세제 정책을 꺼낸 현 정부의 선의를 믿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거대한 시장의 추세 변화를 거스르는 선의는 앞으로의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그 약자들에게 힘겨운 상처로 돌변할 수도 있다. 금융당국의 회의 한 번으로 주택금융 이자를 1~2%씩 움직이는 문제는 은행의 독과점적 이익향유와는 별개로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는 가계부채 규모가 우리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기 안정성을 위해 단기 변동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이를 감내해야 한다. 부채라는 모래 위에 지은 성이 온전할 수 없고, 모르핀 주사로 연명하는 생명이 소생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제헌헌법이 구현하고자 했던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은  그동안 성장을 거듭한 우리 경제 상황을 더 이상 대변하지 못하는 ‘사문(死文)’이 아니다.   미래 세대의 번영을 위해 현실에서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유효한 가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 단단하고 안정적인 물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당대의 욕망과 탐욕을 제어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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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진

보증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경제의 어제와 오늘(우리가 사는 집과 도시)' 저자입니다. 아주대 겸임 교수를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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