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배우는 우리의 시니어하우징 방향성
'1000만 노인의 한국과 3600만 노인의 일본은 무엇이 다를까?'
올해 한국은 시니어 인구 1000만명을 돌파하며 시니어 산업의 중요한 분기점을 맞았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 는 말을 숱하게 들어봤지만, 이제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대비가 아닌 이미 벌어진 현실에 대한 대응책을 위해 두 팔을 걷어올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유래없는 노인증가 속도를 경험하다 보니 우리 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은 나라를 벤치마킹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3600만명의 노인이 있는 일본이다.
우리의 시니어주거 현주소
일본 시장을 살피에 앞서, 우리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시니어 주거 시설의 경우, 양로원과 장기요양시설, 요양병원과 극소수의 시니어타운으로 구분된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약 87.3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시니어 인구수 1000만명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대부분 양로원, 장기요양시설, 요양병원 등 장기요양 급여를 통한 주거 보조금을 지원 받아 입소하는 경우이며 자기부담형(실버타운) 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노인은 그 중에서도 단 8000명뿐이다.
자기부담형 시설이 꼭 필요할까?
혹자는 국내에 이미 요양병원이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한국이 OECD국가 중 노인 인구 대비 요양병원이 8~9배 비율로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요양병원이 앞서 언급한 시설 입소 가능 인원 87.3만명 중 무려 50만명을 감당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가속화되는 노인 인구의 증가 속도에 맞춰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를 계속해서 늘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약 1582개에 달하던 요양병원은 3년만에 1431개로 크게 줄었으며 앞으로도 그 규모는 유지되거나 점차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니어 주거 시설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케어 서비스가 필요할 때의 수급 방법으로 ‘케어가 있는 시설에 입소’를 선택한 비율이 30%로 집계됐다. 2023년 노인 인구 기준 950만명의 30%로 단순 계산만 해도 약 258만명이 입소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인 고령화 가구가 계속 늘고 있다는 사회 현상도 고려해야 한다. 2020년 기준 1인 노인 가구는 약 161만 가구 수준이지만 2045년에는 약 400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0년 대비 2045년 1인 고령화 가구수가 약 2.3배 이상 증가하며, 노인 3명 중 1명은 상시 보호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이 거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고령인구 중 자녀와 동거를 희망하는 인구 비율은 지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2020년 기준 전체 고령화 가구 대비 약 12.5%만이 자녀와 동거를 희망하며 독립 가구를 희망하는 고령인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시니어 주거시설
일본의 시니어 하우징시장은 규모나 성숙도 측면에서 한국보다 선진국에 속한다. 전체 인구는 한국에 비해 약 2.5배 정도 많지만 노인은 4배 정도 더 많기 때문에 고령화로 생기는 문제들을 한국보다 8~9년 앞서 겪은 나라다. 시니어 주거 시설 또한 다양한 유형과 형태로 발전해왔다. 주택형과 복지형, 주택과 복지가 결합된 복합형, 그리고 요양형과 병원형으로 나뉘며 형태 또한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부터 유료 노인홈, 경비 노인주택, 생활지원하우스, 양호노인주택 등 다양하다.
특히 연간 약 132만명의 노인이 자기부담을 통해 시니어 주거 시설에 거주 중이란 사실에 주목할 만 하다.
한국과 일본의 시니어하우징 차이 배경은?
한국과 일본의 시니어 하우징시장 양태가 이토록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주거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언젠가는 계속 오르는 ‘부동산 불패’ 관점에서 주택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반면, 일본은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는 자산으로서 감가상각이 있는 ‘소비재’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직접 소유할 이유가 없고 매매에 대한 선호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일본의 시니어 하우징 산업이 더욱 빠르게 발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월세는 이미 내고 있으니 ‘더’ 좋은 시설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보장제도 운영 방식의 차이다.
한일 양국은 모두 시니어 케어 문제를 국가적 단위의 문제로 바라보며 일본은 ‘개호보험’, 한국은 ‘장기요양보험’이라는 이름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두 제도 모두, 집에서 지내며 서비스를 받는 ‘재가급여’와 장기간의 시설 입소를 전제로 한 ‘시설급여’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설급여는 장기요양기관, 즉 요양원에서만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일본은 유료노인홈,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등 보다 다양한 시설에서 급여가 적용돼 소비자 부담은 덜면서 운영자의 수익적 측면이 보다 유리해지는 차이가 있다.
이에 지난 2000년 개호보험 도입과 함께 건설사, 부동산 개발사 등 다양한 기업들이 노인주택사업에 참여했고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시니어하우징의 방향은?
앞선 비교를 통해 우리 시니어 하우징 산업의 몇 가지 방향성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국내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라는 거다. 일본의 고령화가 ‘단카이세대’ 500만 명에 의해 시작됐다면 우리는 베이비부머 1,2차 세대인 1000만명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더 빠르고, 더 큰 시니어 하우징 수요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더 다양한 시설과 업태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다. 국내는 여전히 아파트, 요양원, 요양병원 등 몇 가지 선택지 밖에 없지만 더 많은 수요에 따라 다양한 시니어 하우징상품이 출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니어 주거 사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육성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시니어타운에 요양 비용을 적용할 수 있는데 한국은 시니어타운을 집 혹은 준주택의 관점으로 보기에 케어와 별개의 시설로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케어 서비스가 결합된 형태를 원하고 이에 따라 운영 주체들도 케어를 점점 더 강조하고 있다.
다만 보조금 대상과 금액을 확대해 지급했던 일본은 ‘재정적자’ 이슈로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보조금 시설의 신규 인허가가 줄고 보조금을 적게 쓰거나 없는 업태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이 빠르게 증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재정적자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일본보다 조금 더 빨리 ‘민간화’, ‘기업화’를 통해 자기부담형 시설(시니어 하우징) 위주의 개발 및 지원 시설을 도모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경기도 화성동탄2 택지개발사업지구 의료복지시설 용지 내 '헬스케어 리츠' 사업에 참여할 민간사업자 공모에 나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1000만과 3600만이라는 노인 인구의 차이 만큼 주거 시장의 차이도 매우 크다. 필자가 운영중인 시니어 토탈플랫폼 케어닥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노인 인구 2.5배 격차를 보정할 경우 최소 8800개의 시니어타운 시설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거 문화와 인구 고령화의 속도, 요양시설 기피 성향 등을 고려하면 일본보다 더 많은 시니어타운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지난해 급여와 비급여 모두를 아우르는 시니어 주거 시설 ‘케어닥 케어홈’ 배곧 신도시점과 송추 포레스트점을 잇따라 런칭했고 올해 연말까지 지점 개수를 3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내년 오픈을 목표로 롯데호텔 등 대기업들과 함께 시니어타운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시니어 주거 공백을 채우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