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떠나는데 서울 도심(CBD)서 메가급 오피스 개발 릴레이
최근 서울 도심권(CBD)에서 대규모 오피스개발사업들이 앞다퉈 본PF 전환과 공사 착공에 들어가고 있다. 반면 비싼 임대료에 치인 DL이앤씨, SK에코플랜트 등 도심 임차 기업들이 저렴한 곳을 찾아 이동하고 있어 도심 내 오피스 공급과잉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9일 오피스업계에 따르면 4분기 들어 CBD 내 수만평 규모 메가급 오피스개발사업이 속속 자금을 모집하고 공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연면적 5만1000평의 프라임 오피스 개발사업인 세운 3-2,3구역이 지난 24일 1조7500억원의 본PF조달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시행사인 디블록그룹과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는 을지로3가 143-4일원에 지하9층, 지상 36층 2개동 오피스 개발 착공을 본격화한다.
지난 14일에는 연면적 4만1000평규모의 서소문동 58-9 일대 11·12지구개발사업이 1조6150억원의 PF대출 조달을 마무리했다. 시빅센터PFV와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는 내년 3월 착공해 2030년 전후로 지하 8층, 지상 36층 1개동 오피스를 준공할 계획이다.
한화그룹이 시행하는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도 지난 12일 첫 삽을 떴다. 한화는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번지 일원(2만 9000여 ㎡)에 지하 6층 ~ 지상 38층 5개동 규모의 오피스, 오피스텔, 호텔, 판매시설 및 컨벤션이 어우러진 복합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오는 2029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지난 10월 말에는 캡스톤자산운용이 서울 을지로 옛 유안타증권빌딩 관련 5900억원 본PF를 조달해 오피스 재개발 닻을 올렸다.
10월 초에는 한화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서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6-3-3구역 오피스(업무시설) 개발사업 관련 7600억원의 PF자금 모집을 완료했다. 디블록그룹이 시행하고 대우건설이 시공하는 연면적 2만6000평 규모의 프라임급 오피스개발 프로젝트다.
랜스퍼트AMC가 시행하는 서울 종로 공평 15·16지구 업무시설 개발사업은 지난 8월 말 PF금액을 7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증액하고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87번지외 일원에 업무시설 및 판매시설을 조성하는 공평 15, 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도시정비형 재개발)이다.
연면적 11만6020㎡(4만3000평)로, 4개 층의 지하 주차장과 지하2층~지상3층 판매시설, 지상13층과 지상17층 규모의 업무시설 두 개 동이 들어선다. 사업은 지난 2022년 11월 착공했으며, 2026년 4월 준공이 목표다.
내년에도 메가 오피스 개발 딜이 줄줄이 이어진다.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 오피스 개발사업(약 10만5900㎡)은 물론 와이디427PFV가 진행하는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4-2·7지구(서울역 힐튼호텔 재개발사업) 등의 본PF조달과 착공을 앞두고 있다.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4-2·7지구는 최근 사업시행 인가를 완료해 내년 1분기 관리처분계획 인가와 상반기 착공을 예상하고 있다. 와이디427PFV는 이지스자산운용, 현대건설, 신한금융그룹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개발 대상은 힐튼 부지로 연면적 33만8982.69㎡ 규모에 달한다. 다른 개발 축인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8-1·6지구 재개발사업’(메트로, 서울로타워 재개발)을 합한 두지역 개발이 2030년경 마무리되면, 연면적 약 46만㎡에 달하는 업무공간이 서울역 앞에 들어선다.
높은 원가에 임대료 부담 커져
그간의 낮은 공실률과 안정적인 임대료 상승세에 힘입어 서울 도심 오피스 개발사업에는 투자자금이 몰리고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이에 메가급 오피스 개발사업이 성사되고 있지만 급등한 토지 및 공사비와 금리 상승으로 인해 원가 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사업성 확보를 위해 준공 이후 시장 내 최고가 수준의 임대료 책정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서울 을지로 유안타증권빌딩 재개발 사례에서는 59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으나, 자금 조달 과정에서 높은 원가부담으로 인해 임대료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컸다. 높은 토지 원가에다 공사비를 더하면 준공 후 연면적 기준 평당 약 5000만원이 개발원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은 사업성 확보를 위해 임대료를 올려도 기존 임차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 사무실 임차 유지를 택했다. 사무실 이전 비용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현 위치를 유지하는 게 더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오피스업계 관계자는 "이전 인테리어 비용 증가에다 지금은 공실률이 낮아 기업들이 이전할 대안 공간을 잘 찾지 못해 임대료 상승을 어쩔수 없이 수용했다"면서 "이는 오피스시장 안정성에 기여했지만 사무실 수요 증가 기반의 자연스러운 임대료 상승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 도심 엑시트 조짐
최근에는 높은 임대료 인상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심 4대문을 등지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외곽 지역의 저렴한 임대료와 넉넉한 공간 활용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전 선택을 하고 있다.
DL이앤씨는 현재 본사로 사용 중인 디타워 돈의문의 내년 말 임대차 만기를 앞두고 내년 하반기께 마곡 '원그로브'로 이전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의 수익이 많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도심 내 건물들이 임대료를 많이 올려 달라고 하니 저렴한 곳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SK에코플랜트도 LB자산운용이 시행하는 서울 영등포 양평동 오피스개발사업의 시공을 맡으면서 오는 2027년 준공 이후 이 곳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영등포 양평동4가 소재 오피스개발 사업주인 LB운용과 책임준공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는 최근 선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27~2028년 중 오피스가 준공되면 SK에코플랜트는 사옥을 이 곳으로 이전하게 된다. 최소 임차 기간은 5년이다. SK에코플랜트가 현 사옥으로 쓰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소재 수송사옥은 오는 2027년 임대차 기간이 만료돼 이전에 큰 무리가 없다.
SK에코플랜트가 건물 준공 뒤 사옥을 이전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도심(CBD) 임대료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기준으로 도심의 평당 월 실질 임대료(NOC)는 35만~40만원인데 비해 여의도권(YBD) 주변(서브)인 양평동은 20만원대 초반"이라며 "임대료 절감 차원에서 사옥 이전하는 것을 건물 착공 시기에 미리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도심 내에서 신축에 들어가는 오피스의 평당 평균 사업비 원가가 4000만원 내외인 데 비해 LB운용의 영등포 개발사업 원가는 평당 3100만원대여서 도심에 비해 임대료를 낮출 수 있다.
외국계 투자사도 오피스 매각
글로벌 투자자들의 매도 움직임도 심상찮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은 가격 눈높이가 맞지 않아 매각을 잠시 중단했지만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SFC)'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SFC는 광화문역에 인접한 지하 8층~지상 30층 연면적 11만 9646㎡ 규모 오피스 빌딩이다.
외국계 투자자의 도심 오피스 매각 사례가 늘고 있는 반면 추가 투자에는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도심보다는 외곽의 저평가된 오피스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계 투자사 하인즈는 그래비티자산운용과 손잡고 지난 10월 한샘 상암동 본사 사옥을 3200억원에 인수했다. 한샘 상암 사옥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1623에 소재한다.
이처럼 서울 CBD 오피스 시장이 안정적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어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꼼꼼히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잘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기업의 이전이 도심 내 대규모 공급 확대와 맞물리면서 시장 안정성을 위협하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도심 내 대규모 오피스개발 사업 증가는 기존 시장 균형을 흔들고 임대료 하락과 자산 가치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