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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산업과 인플레이션의 역설

김갑진
- 8분 걸림 -
게티이미지뱅크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이 시기 원가, 임금, 이윤 등 제반 생산요소에 대한 대가가 불안해져 생산 활동이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매출과 이익, 나아가 실질임금의 유지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어디서 연유됐든 원가 인상은 판매가격 인상을 불러오게 됩니다. 나 아닌 다른 원인으로 올라버린 원가를 나 혼자 감당할 이유는 없습니다. 경제 활동이 나홀로 사는 무인도에서 벌어지지 않는 한 내게 드리워진 충격은 생산~소비 활동 과정에 ‘전가’됩니다.

생산요소에 대한 가격 전가는 생산활동의 목적이자 성과인 소비를 통해 확대됩니다. 인플레이션(인플레)이 완연해지면 어느 순간 화폐 환상의 심리도 깨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모든 가격이 딱 돈의 양만큼 비례해 오르는 인플레라면 당대를 살면서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인플레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기만 한 일은 우리 경제사에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일정 기간 관찰대상으로 경제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생활, 생존으로서 경제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가 언젠가 진정되더라도 그 언젠가 이전인 현재는 십중팔구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인플레가 어디에서 오는지 -경기호황에 따른 유효수요의 과잉때문이든, 공급구조상 충격에 따른 비용의 상승 때문이든, 대외의존도가 높아 수입물가의 상승때문이든-, 인플레는 돈(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밀어올리고) 그것은 시간에 비례한 불안으로 경제 전반을 엄습합니다.

건설산업과 인플레이션

미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재를 생산하는 건설산업 활동은 대개 투자지출입니다. 그런데 이 건설 자본재를 만드는 건설생산은 인플레에 취약한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두 가지 특성은 건설생산단계에서 확인됩니다.

건설 자본재 생산은 장시간의 생산기간을 필요로 합니다. 또 건설생산 활동 수행과정은 다양한 생산 참여자가 관여하는 네트워크 산업입니다.  

건설생산 과정의 이 두가지 특성과 인플레를 결합해 볼까요. 생산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점은 인플레 시기 오늘의 가격으로 내일을 예단할 수 없다는 '가격 불안'을 불러옵니다.

네트워크 산업인 건설산업은 나의 부담을 너에게 전가하기 쉬운 구조를 노출합니다. 건설생산은 ‘장기간의 가격불안’, ‘그 불안의 전가’라는 양상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물가인상에 따른 가격조정’은 실무 적용상 다양한 이유에서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준비된 예산을 초과하는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이며, 수주자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원가 상승으로 공사를 할수록 손해 보는 장사가 되기 십상입니다. 건설 생태계(네트워크) 구조에서 '을'로 평가되는 하도급업체들은 이제 더는 약해지기를 거부합니다. 전가되는 압력에 버티기보다는 일을 접고 다른 일을 찾는 선택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역설

건설산업 활동에서 인플레가 만드는 세 번째 특성은 구축된 자본재(자산)의 가격이 인플레에 비례해 오르지 않는 이른바 ‘인플레이션의 역설(마크파버가 '내일의 금맥'에서 인플레 시기 자산가격의 저평가를 지칭하며 쓴 용어)’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신규 구축비용과 대체비용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그 불일치 탓에 투자수요, 자본재 소비수요가 급감합니다.

인플레의 역설은 일반적인 재화가 인플레 시기에 화폐가치 하락에 반비례해 오르는 것과 달리 투자자산 가격이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플레시기에 물가상승을 잡기(catch up) 위한 금리인상이 따라오기 때문이며 금리에 의해 미래수익을 산정하는 자산의 가치가 일반적 소비재만큼 가격상승을 시현하기 어렵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최근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위축되는 현상은 인플레의 역설을  보여주는 일부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건설생산 중인 재화는 아직 자본재로서 미래가치를 담보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생산과정 중에 있는 일반재화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생산과정 중의 재화는 인플레이션기에 그 원가상승 영향에 그대로 노출되며 앞서 살핀대로, 특히 건설산업의 장기성·네트워크성은 원가상승 영향에 더욱 민감한 특성을 띱니다.

결과적으로 인플레에 비례해 자본재 구축에 소요되는 비용은 상승하는데 반해 이미 구축된 자본재의 가격은 금리 인상으로 떨어지는 부조화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이는 힘들게 지어봐야 팔리지 않거나, 원가 이하로 떨어질 자산 가격을 예상해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킵니다.

지난해 착공 면적이 최근 14년 중 최저를 기록한 점이나, 최근 주택 인허가 물량의 급감은 인플레 시기 건설자본재(자산)가 갖는 역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축비용의 증가 등 재화로서의 원가상승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가격조정 방안으로 건설도급계약을 약정하되, 기간 간 공정계약을 세부적으로 체결하는 방식 등 건설생산에 인플레를 조화시킬 묘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주택의 경우 신축주택과  구축주택 간 가격 차별화가 커지고 있으나 이것의 지속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모두에게 열린 재건축 붐’이 오히려 신축의 희소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나 모두에게 열렸기에 그 누구도 하기 힘든 것이 되어 신축의 희소성을 장기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기에 건설업계를 바라보는 불안은 신용등급 조정이나 자금조달 경색 등으로 이미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험난한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건설업계가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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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동산인플레이션건설산업

김갑진

보증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경제의 어제와 오늘(우리가 사는 집과 도시)' 저자입니다. 아주대 겸임 교수를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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