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업계와 리츠 선진화 이슈에 대한 단상
요즘 부동산 개발업계 관련 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대부분 국내 시행사들이 영세해 선진국 개발사업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극히 낮다는 점을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대응 방안으로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 상향 조정을 고민하자는 담론으로 이어진다.
정말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 점이 문제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최소 자기자본 비율을 20%까지 확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저축은행의 PF 연체율과 여전사의 PF연체율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010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에쿼티(자기자본) 비율 20%를 요구하는 저축은행과 그렇지 않은 여전사의 연체율이 비슷한 건 왜일까? 심지어 1분기 기준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8%대지만, 상위 20개의 저축은행 연체율은 11%가 넘는다.
선진국 시행사들이 에쿼티 20%를 투자하는지도 의문이다. 연구기관들은 선진국의 개발금융 구조를 언급하며 선진국은 에쿼티 비중이 20~30% 수준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싶어 사례들을 찾아 봤다. 미국, 호주, 유럽 등의 개발사업 에쿼티 비중이 얼마나 될까를 말이다. 미국 어느 사업장에 에쿼티가 30% 깔린 캐피탈 스택(capital stack)이 있다고 치자. 이 후순위 30%를 시행사가 단독으로 출자할까? 아니다. 오히려 이 에쿼티마저 조달 할 수 있는 시장이 발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P2P부터 에쿼티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부띠끄까지 말이다.
또한 선진국 조차 모든 프로젝트가 20~30%의 에쿼티가 깔리는 건 아니다. 당연히 국내처럼 에쿼티 5% 짜리 사업도 있고, 10%짜리 사업도 있다.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선분양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분양 하는 선진국들은 레버리지를 안일으킨다는 걸까? 컨스트럭션 론(Construction Loan)이라고 해서 일반 시중은행도 공사비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추후 모기지대출로 전환하는 플랜이다.
본질만 놓고 보자면 우리와 뭐가 크게 다를까? 금융이란게 뭔가? 다들 있어 보이게 파이낸스(finance) 또는 레버리지란 워딩을 사용하지만 그냥 속시원하게 얘기하자. 남의 돈 빌리는 기술이 금융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 금융, 밖에 있으면 유사수신일 뿐이다.
다들 국내 시행사가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게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국내의 미성숙한 금융시장 환경을 지적하는 논조는 찾기 힘들다. 미국같은 선진국은 자기자본을 두껍게 깔고 시행하는데, 우리나라 시행사들은 왜 안그러냐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자. 미국같은 선진국은 에쿼티 조달시장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는데 국내는 개발업의 자본조달 활성화를 위해 한 게 있는가라고.
지난 6월 정부가 리츠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리츠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새로울 건 없지만, 내용 자체에 뭔가 다급함이 묻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 멀리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다. 당장 싱가포르, 일본 리츠 시장만 봐 보자. 혹시 알고 계시는가? 한국, 일본 ,싱가포르 3개국에서 "리츠"라는 상품 도입 시기는 사실 비슷하다. 일본 2000년, 한국 2001년, 싱가포르는 2002년에 각각 태동했다. 같은 시기에 리츠가 생겨났음에도 한국 리츠시장은 여전히 시장 규모가 작다.
리츠의 역할은 공급자 입장에서 보유자산의 유동화를, 수요자 입장에서는 간접투자를 통한 안정적 수익의 획득 창구일 게다. 국내처럼 사모 리츠 중심으로 발달한 나라에서는 인지하기 힘들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리츠의 강력한 장점은 상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왜 수많은 기업들이 수십만의 시어머니가(개인투자자) 생길 걸 알면서도 상장하려고 하는가? 유상증자든, CB든, BW든 상대적으로 계속 자금 조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리츠라는 비히클이 부동산펀드(REF)든, PFV든 다른 비히클과 경쟁하지 않고 본연의 비교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장을 통한 저변확대가 이뤄져야 하는게 먼저다.
국내 상장리츠의 현실을 더 살펴보자
6월 17일 종가 기준 상장 리츠 총 23개, 시가총액 합산 약 7.9조원이다. 7.9조원의 시가총액 합산액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오는가? 참고로 얘기하면 대한항공 한 종목의 시가총액이 대략 8조원이다. 23개 국내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인 상장리츠를 다 합쳐도 결국 대한항공 한 종목의 시가총액 사이즈란 얘기다. 싱가포르 리츠 시가총액 93조원, 일본 152조원, 미국이 1600조원이다.
국내는 비상장 사모 리츠까지 다 합쳐 100조원이 안된다. 물론 100조원이라는 규모는 리츠가 보유한 총자산이므로, 국내 리츠 전체 시장의 시가총액을 간단하게 추정해 보자. 언론에서 인용하는 자기자본비율 약 35% 수준을 감안해 우리나라 상장리츠 평균 P/NAV 배수를 곱해보자. 대략 35조~40조원 수준일 거다. 그 어떤 긍정적인 추정과 가정을 적용해도 주변 국가의 상장 리츠 시장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사모로 돈을 모으는데는 한계가 있다. 자본시장법상 사모로 자금 조달을 하려면 수익자 수에 제한을 받는다. 결국 사모로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단위당 투자금액이 큰 고객의 돈부터 먼저 받아 클로징을 시켜야 한다. 큰 돈을 쏠 수 있는 기관은 애초에 정해져 있고, 실제로 큰 돈을 운용하는 기관들이 무턱대고 큰 금액을 투자할 리 만무하다.
국토부가 발표한 리츠 활성화 대책의 맹점을 여기서 발견했다. 프로젝트 리츠(결국 사모리츠)를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꿔준다 치자. 어차피 모은 돈이고 리츠가 인가 받느라 시간을 다 잡아 먹는다면 결국 불편하지만 PFV를 설립해 개발사업을 진행하면 된다. 즉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사실상 신규 시장 파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대안은 아닌 거다. 원래 주로 플레이하던 분들의 업무 편의성이 제고 될 수는 있다.
국내 리츠 주류는 사모시장이고, 사모시장의 플레이어는 주로 기관들이다. 기관과 일반의 타깃 IRR은 다르다. 기관의 IRR이 현저히 낮을 가능성이 크다. 타깃 IRR이 더 낮다는 의미는 자기자본 비율을 더 높여도 된다는 의미다.
국토부가 발표한 자기자본비율을 감안해 프로젝트리츠 구조로 개발금융 구조를 고민한다는 얘기는 결국 사모 기관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누가 돈을 어떤 방식으로 더 넣을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원래 있던 시장 더 편하게 일하게 해준다고 리츠 시장이 커지지도 않을 뿐더러 전반적인 개발업계로의 낙수효과 같은걸 기대하기도 요원하다.
리츠의 본질을 되짚어 보자
리츠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부동산을 개발, 운영, 관리, 매각해 수익을 투자자에 환원하는 비히클이다. 자금 출처가 지금처럼 특정 소수에 집중되는 체질 자체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리츠는 그저 사모 시장에서 부동산펀드, PFV, SPC 등의 비히클 종류 중 하나로 경쟁해야 할 뿐이다.
결국 비상장 사모 시장의 활성화 보다 공모 상장 리츠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국토부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어서 상장리츠 활성화를 위해 1)리츠정보시스템을 개선하고, 2)투자 보고서 항목 내용도 보충하고, 3)월 배당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1)과 2)는 선진 리츠시장을 잘 보고 배우기를 바라면 되지만, 3)월 배당이 가능한 구조는 리츠법(부동산투자회사법)만 개정해서는 될 게 아니다.
리츠가 참 슬픈 운명인 게, 상법상 주식회사라 상법의 규제를, 부동산투자회사라 부동산투자회사법의 규제를 받고 상장을 하면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일단 월 배당이 가능한 구조가 되려면 상법에 근거해 매달 결산 작업을 하고 주총 결의를 해야 한다. 주총 업무 담당해 보신 분들은 알 거다. 1년에 한번 있는 주총 준비하려면 3월 한달 내내 정신이 없다. 월배당이 시행 되면 운용사 직원들은 365일 주총 업무만 하다 끝날 게 불보듯 뻔하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배당결의 절차를 간소화 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주총결의 사항이 아닌 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이는 상법 개정이 필요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리츠 활성화 대책 어디에서도 상법을 개정하겠다는 얘기는 찾을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리츠는 주식이지만 일반 주식과 밸류에이션 방식도 다르고,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장부를 보면 정보를 왜곡 해석할 여지가 생기는 투자상품이다. 따라서 공시든, IR자료든 리츠의 특수성을 살린 밸류에이션 방식(FFO, NAV 기준 등)을 일반인들이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수치를 공개해야 한다.
미국 리츠는 애초 공시에 숫자를 다 계산해 주기도 하고,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을 돕는 툴이 리츠에도 확대 적용돼 매우 편하다. 물론 이미 미국 리츠시장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는 위로만 수년째 하고 있는 상태다. 투자자들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국내 리츠 안사고 미국 리츠 사면 되니까. 왜 일반 국민들이 월배당의 대명사 리얼티인컴(ticker : O)은 다들 알아도 지난달 상장한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는 잘 모를까. 정보시스템을 개선하고, 보고서 항목을 보충한다고 얘기하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리츠가 한국에 도입된지 20년이 넘게 흘렀다. 리츠 활성화 논의 또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리츠 활성화 대책은 다시한번 필자의 희망을 꺾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금조달 시장의 풀(pool)을 넓혀 부동산산업 전반에 낙수효과를 만들어 줄 비히클인 리츠가 국내 시장에선 아직 기대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