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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업계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

낭만디벨로퍼 김영철
낭만디벨로퍼 김영철
- 12분 걸림 -
게티이미지뱅크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68개어로 번역됐습니다. 이는 소수 언어가 아닌 어느 수준 이상의 사용자가 있는 거의 모든 현대어로 번역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데, 주로 나쁜 쪽 평이 많습니다. 일단 비평가들이 악평을 쏟아냈다는 것에서 이 책의 작품성과 내구성은 검증됐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평론가 또는 비평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해 "조야하고 야만적인 작품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라면 아무리 상스러운 사람들이라도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고 했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놓고는 "남자답지 못하고 구역질 나며 사악하고 진저리가 난다"고 평했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제 1권을 차지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감상적인 쓰레기"이며 "단 한 페이지라도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담고 있는 곳이 있다면 내게 보여주시라"는 호언장담을 받기도 했지요. 제가 사랑하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이 정도의 작품을 문학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까지 폄훼되었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문학일까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저는 연금술사가 세대와 세기를 넘어 후대에 오래도록 회자되고 읽힐 고전(classic)이라고 믿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올림픽 때마다 아테네 올림피아의 "성화"를 그 해 올림픽 개최지까지 꺼뜨리지 않고 "봉송"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오랜 선조들로부터 전승 받아 간직하고 있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어져 온 무언가를 어루만지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몇 가지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개념이 등장하는 데, 그 중 하나가 "초심자의 행운"입니다. 작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됩니다.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처음 창업을 하고 세상에 출사했을 때, 실로 가진 것은 몸뚱아리와 옷가지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사업이란 걸 하겠다고 나섰으니 "계획"이란 게 없지는 않았지만 - 차마 "전략"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부끄럽네요 -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계획대로 된 것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좌충우돌하고 넘어지면서, 좌고우면하고 우물쭈물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듯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새 시작은 언제나 설레지요. 때는 아직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춘삼월이었고, 저희는 젊었으며,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발끈을 고쳐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거울 앞에서서 자신을 향해 한 번 씨익 웃음 짓고, 행복하고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고는 했습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만난 몇 분들은 너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만남이 저의 초심자의 행운이었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한 대표님은, 본인에게 의뢰됐던 PM프로젝트를 저희가 맡아서 해 보면 어떻겠냐며 소개해줬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창업 이후 맡은 최초의 PM 프로젝트였습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이며, 최대 부동산 개발 온라인 커뮤니티인 개발사업동우회의 대표는 제게 게시판을 할애해 주며 글을 연재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해줬습니다. 직접 저에게 전화를 해 앞으로 기대하겠다며 격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명망 있는 분양대행사의 총괄 본부장 한 분은 우리가  좋은 프로젝트의 몇 개 층을 단독으로 분양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그 후에도 좋은 프로젝트의 기회를 배려해줬습니다.

​우리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이런 배려와 호의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염치가 없지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세상을 만만하게 볼 정도로 철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마음 속 깊이 감사했으며, 지금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배려가 이 삭막하고 외로운 업계에서 얼마나 이례적이고 특별한 것인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 현재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지금 저의 등짝은 만신창이입니다. 그것을 살짝이라도 들여다 본다면, 당장 옷을 내려 덮어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학문이 무엇일까요? 혹자는 부동산학을, 다른 사람은 건축학을 언급할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언급할 수도 있겠습니다. ​

모두 틀렸습니다. 학문으로만 한정짓자면, 우리 업계에서 일을 하는 데 가장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학문은 '정신분석학, 인류학, 심리학'입니다.

​인간의 건전한 욕구와 뒤틀린 욕망, 얼굴 표정 뒤에 스스로 감춘 동기와, 본인조차도 모르는 숨겨진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달성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업계입니다. 부와 명예에 대한 개인의 갈망이 형성된 배경에 대한 이해, 존경과 무시 사이를 오가며 받은 개인의 상처, 존중과 멸시 사이를 헤쳐나가며 형성된 허세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이 일을 해 나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일만큼 "사람이 하는 일", 아니 그것을 넘어 "사람만이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 일은 IT나 제조업과는 달리 기술 기반, 생산 기반의 경쟁 우위가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만이 경쟁 우위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좋은 파트너를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지점에 가서는 반드시 파트너를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 안전 장치를 두기 위해 계약이나 합의서로 보완해 보고자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 한계가 뚜렷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계약 따위로 묶어둘 수 없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실로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곳이 우리가 몸담은 업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이, 실력이 있는 사람인지, 인격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인지, 더 나아가 실체가 있는 사람인지를 끝없이 검증하려 합니다. 이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고 또 외롭게 하는 일은 아마 또 없을 것입니다.

​달리기가 취미인 제게 겨울은 나쁘지 않은 계절입니다.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서는 순간에는 에일 듯한 바람에 움찔 합니다만, 달리기 시작하면 금세 몸에 열이 순환하면서 추위는 저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땀은 몸을 탈출하자마자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차갑고 새로운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쉬며 쾌적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무심하게 다리를 앞으로 옮기며 달리다보면 호흡에도 안정이 찾아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제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채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좋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백지에 먹물이 한 방울 튀면 우리는 그 먹물만을 바라보고는 합니다. 어떤 흠집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도 그럴 만합니다. 하지만 먹물 외에 그 드넓은 새하얀 공간, 그 어떤 것도 채워넣을 수 있는 순백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는 힘듭니다.

​지난 몇 년간, 앞선 세 분을 제외하고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쌓여갈수록 좋은 분들은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한 향을 풍기고는 합니다. 이 분들은 과시하지 않으며, 드러내지 않으며, 제가 힘들 때면 먼저 그 것을 알아차리고 안부를 묻고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기꺼이 되돌아와,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함께 걸어줍니다.

​제가 주목하고 감사해야 할 분들은 아마도 이 분들일 것입니다.

​이 분들의 존재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나서 이 분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세상이 인연이라 부르는 어떤 힘이 작용해서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좋은 분과 특별한 교분을 맺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 지점에 미치면 제 마음 속에서 비늘이 한 꺼풀 벗겨지고, 겸허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제가 누군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독한 오만이라는 생각이 또한 듭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저에게 손 내밀어 주시는 감사한 분들의 호의를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이상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평론가들과 제가 다를 바가 무에 있을까요.

​사람에게 우정이라는 기이하고 특별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일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로도, 진화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과 관계는, 세상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동력이 되어주고는 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있음에도 저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 당신을 제가 감히 친구라고 불러도 될까요.

​『연금술사』의 주인공 이름이 산티아고라는 것은 다분히 중의적입니다. 세계에는 산티아고가 몇 곳 존재하지만,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도, 혼자서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입니다. 멀리 가려면 좋은 친구와 함께 걸어야만 합니다. 앞으로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초심자의 행운이 되어준 세 분, 이 글을 빌어 새삼스러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신의를 지키겠습니다. 곧 또 좋은 자리를 만들어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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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디벨로퍼 김영철

포어모스트자산운용 대표이사. 낭만 디벨로퍼이자 다정한 금융가, 명랑한 스타트업 경영자로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블로그 게시 내용 중 부동산 개발 관련 글을 모아 딜북뉴스 독자분들과 공유합니다. 메신저 서비스인 슬랙(Slack)을 기반으로 부동산 커뮤니티 '레인(Rei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eric.youngcheol.kim@gmail.com 커뮤니타: https://join.slack.com/t/reinetwork-hq/shared_invite/zt-285z4g8px-ks6NYuyycyAN14ySN3m0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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