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론 구조조정론에 중·후순위 투자자 불안감 고조
장기 침체에 시달리는 부동산PF업계가 현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토지브릿지론 구조조정'에서 찾고 있다. 고금리와 공사비 증가세 지속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사업성 확보를 위해 토지비용을 낮출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토지브릿지론의 절반 가량을 손실 감액해야 한다는 신용평가사의 전망이 나오고 있어 중,후순위에 투자한 2금융권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브릿지론 구조조정이 연말 부동산 개발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구조조정론에 불을 당긴 것은 나이스신용평가다. 이혁준 나이스신평 금융평가본부장(상무)은 지난 6일 열린 '나이스·S&P공동 세미나'에서 "토지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사업성 확보가 불가능하다"면서 "만기연장을 이어가는 브릿지론 중 30~50%의 손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브릿지론 만기 연장은 기준금리 조기 인하와 부동산 시장 회복을 전제로 한 거였는데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런 기대가 무산됐다"면서 "브릿지론 관련 토지의 경공매 확대로 방향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금융권 PF 대출잔액은 약 130조원이며, 이 중 브릿지론은 30조원으로 추정된다. 나이스신평 주장대로라면 브릿지론 30조원 중 최대 15조원을 손실 처리해야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9월 말 자산관리공사(캠코)의 PF정상화 사업장 제한경쟁입찰 결과와도 맥을 같이 하다. 캠코와 PF펀드 위탁운용사 5곳은 금융사로부터 접수받은 부실우려 PF사업장을 대상으로 제한 경쟁 입찰을 벌인 결과 담보인정가(LTV) 대비 50% 내외에서 운용사의 매입 입찰가가 제시됐다.
이 경우 중, 후순위 대주단은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는 탓에 이들의 반발로 낙찰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PF정상화펀드 위탁운용사 관계자는 "사업장의 매도자, 특히 중,후순위 입장에서 손실을 봐가벼 팔기를 싫어한다"면서 "아직 매수자와 매도자간 가격 눈높이가 맞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시장의 거시적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캠코펀드는 일부 우량 사업장만 제한적으로 투자할 전망이어서 시장 개선세를 이끌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PF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 등으로 '시간 벌기'를 해왔지만 내년 초부터는 시장 자율의 브릿지론 정리와 옥석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단순 만기 연장이 아닌 디폴트(기한이익 상실) 처리 후 부실(경공매) 정리 또는 재구조화 작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동안 만기연장을 지속하면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해 브릿지론 규모가 줄지 않은데다 운영자금이 바닥나 이자를 내지 못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종환 한국기업평가 사업가치평가본부 부동산실장은 "원가는 오르고 수요는 침체돼 수도권과 일부 지방 사업장 중 시세대비 저렴한 분양가를 낼 수 있는 곳만 개발이 가능하다"면서 "브릿지 사업장의 옥석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 실장은 이어 "공급과잉인 물류센터시장 브릿지론의 경우 공장 부지 혹은 다른 용도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부실 처리도 뒤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이스신평에 따르면 9월말 기준 부동산PF(브릿지론+부동산PF+채무보증) 중 금융사의 중후순위 투자 채권 비중을 보면 증권사가 44%로 가장 많다. 캐피탈사 30%, 저축은행 12%다.
이들 2금융권 중 계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금융사는 부동산PF부실 현실화시 주인이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 때 처럼 자금력이 풍부한 은행금융그룹으로의 인수 시나리오도 점쳐지고 있다.
금융사 손실 처리 과정에서 건설사들의 동반 구조조정 확대도 우려된다. 일감 확보를 위해 브릿지론 후순위를 보증한 시공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 탓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5대 금융지주와 산업은행 등의 PF업무를 총괄하는 부사장들을 불러 금융시장 현황을 논의하고 건설사 자금 동향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건설사들의 PF유동화증권 롤오버(만기 차환)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