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亞 상업용 부동산⑪ R의 10개 도시 여정 마무리와 시장의 기록

늦은 밤, 한강변. 도시의 불빛이 강물 위를 조용히 흔든다. R은 낡은 갈색 가죽 메모장을 천천히 펼쳤다. 페이지 구석마다 눌러 쓴 문장들, 그리고 낙서처럼 남겨진 작은 표식들. 지난 넉 달 동안 싱가포르에서 서울까지, 열 개 도시의 풍경과 표정, 시장의 온도와 사람들의 눈빛이 그 안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이 여정은 분석이었을까, 해석이었을까. RA 시스템과 함께 시작된 여행은 처음에는 냉정한 시장 분석의 연장이었다. 각 도시의 CBD 현황과 임대 수익률, 공실률 변화 추이를 수집하고 비교하는 업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각 도시에서 만난 전문가들과의 짧고도 깊은 교류는, 엑셀 시트나 지도 위에 찍히지 않는 층위를 선명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서울에서 다시 만난 서지윤과의 재회까지. APEX 시스템의 등장, 그리고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쟁의 지형. 모든 것이 이 메모장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1. 싱가포르: "계획은 정밀했지만, 숨결은 계산되지 않았어."
미셸 탄은 마리나 베이 샌즈 근처 호텔 라운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도시의 건물들은 30년 후를 계산해 설계돼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R은 그 너머에 감춰진 미묘한 떨림을 감지했다.
RA(부동산데이터 애널리스틱스)가 제공한 싱가포르 데이터는 완벽했다. CBD 지역 Grade A 오피스의 임대료 상승 전망, 정부의 토지 매각 정책에 따른 공급 물량 조절 효과,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로 인한 수익률 변화 예측까지. 숫자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미셸은 다른 말을 했다. "우리는 계획대로 살지만, 가끔은 그 계획에서 벗어나고 싶어져요. 그런 욕망까지는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도 계산하지 못하죠." 그녀가 손짓한 곳은 클라크 키의 오래된 쇼하우스들. RA는 그 지역을 '재개발 대상지'로 분류했지만, 미셸의 눈에는 '도시의 숨결'이 보였다.
30분의 휴식 시간, 미셸은 옅게 웃었다. 뜻밖에도 진짜 미셸을 잠시 보여준 순간이었다. R은 그 웃음이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문 인간적인 표정이라는 걸 느꼈다. 완벽하게 설계된 건물 벽에 누군가 남긴 낙서처럼, 예상치 못한 매력이었다.
R은 처음으로 RA 리포트의 빈 공간을 의식했다. 완벽한 계획 도시는 예측 가능한 만큼, 예외도 억눌러진다. 미셸의 조용한 배려 속에서 도시의 이면을 느낄 수 있었다. 데이터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해주지만, '누가 그것을 살아가는가'는 말해주지 않는다.
2. 도쿄: "정적 속 균열은 숫자가 닿지 못하는 진실이야."
오테마치의 한 카페에서 미나 사토는 30분 동안 음료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손끝만 컵 주위를 맴돌았다. R이 RA 데이터를 설명할 때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외국인들은 우리가 보수적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우리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죠."
RA는 도쿄의 오피스 공실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대료 상승 압력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미나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숫자 뒤에는 40년을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는 수익률보다 안정성이 더 중요하죠."
20년 전 교환학생 시절 만났던 미나는 여전히 녹차를 즐겼다. 완벽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아카사카의 오래된 와인바에서 그녀는 보르도를 선택했고, R은 샤블리를 골랐다. 둘 사이의 대조가 그날의 대화처럼 자연스러웠다.
"너의 시스템은 우리가 왜 기다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니?" 미나의 질문은 조용했지만 날카로웠다. R은 그날 밤, 처음으로 RA의 시계열 분석에 의문을 품었다. 시간의 밀도가 다른 사회에서, 같은 데이터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3. 호치민: "침묵은 데이터보다 많은 말을 품고 있었지."
린 웬은 말보다 손짓으로 설명했다. 비엔하인 지구의 새로운 오피스 단지를 가리키며, 그녀는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가 세 개만 남겼다. "5년 계획이었어요. 3년 만에 80% 완공." 그리고 주먹을 쥐었다. "나머지는 승인 대기 중이죠."
오토바이를 타고 호치민의 새벽을 누비며, 린은 R을 다양한 현장으로 안내했다. 7군과 2군 사이의 '불꽃 프로젝트', 9군의 물류센터, 그리고 비공식 모니터링 센터까지. 각 장소에서 그녀는 조용한 침묵으로 많은 것을 전했다.
"베트남에서는 '승인'이 곧 '시간'이에요. '시간'이 곧 '기회'고요." 린이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당신의 데이터는 승인 대기 시간을 계산할 수 있나요?"
해외 자본 유입이 급증했지만, 그 뒤엔 복잡한 행정절차와 비공식적 규범이 숨어 있었다. 토지 사용권 취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 간의 정책 차이, 그리고 '관계'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RA의 분석은 그 규칙을 가늠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사이공 강변에서 R은 깨달았다. 데이터는 '변화의 속도'를 측정하지만, '변화의 저항'은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그 저항이야말로 시장의 진짜 모습이었다.
4. 홍콩: "투명성은 그냥 명확함이 아니라, 믿음의 기술이야."
리안 첸은 RA 리포트를 한 페이지씩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데이터들, 모두 맞아요. 센트럴 지구 Grade A 오피스 임대료, 투자 수익률, 공실률 변화 추이. 완벽해요." 그러곤 리포트를 덮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홍콩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어요."
IFC 타워에서 빅토리아 하버를 바라보며, 리안은 설명했다. "홍콩 사람들은 투명성을 믿어요. 하지만 그 투명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죠."
RA가 제공한 홍콩의 데이터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풍부했다. 하지만 리안은 다른 층위의 복잡성을 제시했다. "2019년 이후, 숫자는 같지만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같은 건물과 임대료지만, 결정 내리는 방식이 바뀌었죠."
완차이 인근 빌딩 옥상에서, 리안은 홍콩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줬다. "진짜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남아야, 이 도시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손목에서 흔들리는 바랜 금빛 체인처럼, 이 도시는 낡았지만 여전히 단단한 매력을 품고 있다.
5.방콕: "기다림 끝에 남은 건, 데이터가 아닌 표정이야."
현지 물류업체 대표의 딸이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라타나는 재고표를 들고 창고 사이를 누비며 무전기로 무언가를 연신 지시하고 있었다. 혼돈 속에서 춤을 추는 사람처럼.
각진 이마와 매끈한 광대뼈, 짙은 단발머리. 정장이었지만 실크 블라우스 소매엔 박스 테이프 자국과 먼지가 묻어 있었다. R은 그런 디테일에 약했다. 누군가가 계획보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땅은 있고, 길은 없어요. 무슨 의미인지 알죠? 그래서 시도를 해봐야죠." 라타나의 세 문장에는 복잡한 도시의 본질이 담겨 있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접근성이 없다. 어려움은 있지만, 포기는 없다. 방콕이라는 도시의 DNA를 압축한 듯했다.
시암 근처 로컬 마켓의 작은 펍에서, 라타나는 말했다. "방콕은 계획보다 포기하지 않음에 대한 도시"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맥주 잔에 맺힌 물방울처럼 느슨했다.
그날 밤 R은 처음으로 '인내'라는 전략을 이해했다. RA는 시장 속도를 측정하지만,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라타나의 표정에서 읽힌 여유로움은, 어떤 데이터로도 수치화할 수 없는 지혜였다.

6.타이베이: "규칙은 있었지만, 윤리는 선택이었어."
린 야팅은 RA 리포트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 수치, 정확해요. 하지만 우리가 정말 이 수치를 추구해야 할까요?" 그녀가 지적한 것은 신이구 지역의 예상 수익률이었다. 15% 상승이 예측되는 지역이었지만,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는 곳이기도 했다.
Fubon A25 타워에서 열린 회의는 류즈위안이라는 예상치 못한 인물 변수로 인해 복잡해졌다. 부동산 사모펀드 'O캐피탈'의 대만 투자 책임자인 그는 단기 수익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투자자였다.
"당신 시스템에 윤리 지수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을까요?" 야팅의 질문은 R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제도의 문제보다, 사람 사이의 신뢰 문제였다. 기술이 인간의 가치 판단을 대신할 수 있을까.
중산공원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야팅은 말했다. "투명함을 택했어요. 외부 자본이든 내부 결정이든, 기준은 무너지면 안 돼요." 그녀의 휴대폰에 도착한 류즈위안의 메시지를 R은 보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서 모든 것을 읽었다. 타이베이는, 침묵으로 말하는 도시였다.
7.쿠알라룸푸르: "수익보다, 기준을 먼저 묻는 도시도 있어."
메르데카 복합타워 예정지에서 벌어진 철거 작업 중 가림막이 무너지는 사고. 그 순간 샤히라는 말했다. "자본은 언제나 빠르게 움직이고, 도시는 그 속도를 감당하느라 부서지죠. 그래서 우리는, 속도 대신 기도를 택해요."
이슬람 금융의 철학, 샤리아 원칙에 따른 투자 기준. 샤히라가 설명한 것은 단순한 수익률 계산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익률보다, 잃지 않아야 할 기준을 봐요. 이 도시에서 숫자는 감정을 설득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가리는 베일이거든요."
미나렛 골목을 걸으며, 샤히라는 손글씨로 적은 작은 메모를 R에게 건넸다. 말레이의 시였다. "이 도시가 말이 없을 땐,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그녀의 말처럼, 어떤 도시는 기도처럼 조용히 자신을 표현한다.
8.발리: "분석이 멈춘 자리에 감각이 시작되었다."
발리에서 RA는 처음으로 침묵했다. "Analysis unavailable for this location." 화면에 떠 있는 단 한 줄의 메시지가 전부였다. 번아웃으로 자카르타 대신 발리에 도착한 R에게, 이는 예상치 못한 경험이었다.
리조트 수영장에서 만난 아르디아. 검은색 비키니 위에 얇은 수건만 어깨에 걸친 채, 풀장 가장자리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녀는 이 리조트의 현장 실장이었지만, 무엇보다 몸짓과 감각으로 시장을 읽는 사람이었다.
라이스 테라스에서 호텔 건설 현장으로 변한 곳들, 해변가 상가 단지에서 안쪽으로 밀려난 현지인들, 에코 리조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외부 자본. 아르디아는 각 현장에서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말했다. "데이터로는 이런 감각을 잴 수 없죠?"
스콜이 시작되어 작은 잡화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순간. 좁은 공간에서의 긴장감, 젖은 셔츠가 몸에 달라붙은 아르디아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마지막 밤 풀장에서 손가락 끝이 스쳤던 순간.
R의 최종 리포트는 간단했다. "Data insufficient. But presence felt." 시스템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Report accepted." 발리는 정말로 분석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것들은 여전히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9.비엔티안: "기록되지 않은 균열이 진짜 위험이었어."
항공기 기체 점검으로 13시간 지연. 예상치 못한 경유지에서 까말라 위라세트와의 재회는 운명 같았다. 15년 전 한강대학교 어학당에서 만난 교환학생. 그녀가 건넨 일기장에는 서툰 한국어로 자신에 대한 고백이 빼곡했다.
공항 카페에서 프린터 앞 서류를 정리하던 까말라. 라오스 민관개발기구(MDI)의 메콩강 프로젝트 핵심 담당자가 된 그녀는 여전히 허술한 보안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Mekong Tracker' 악성코드에 감염된 노트북을 R이 복구해주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구도심의 30% 공실률, 사이세타 경제구역의 미완성된 인프라, 메콩강변 전통 식당 '반 나 퐁'에서의 대화. "우리 음식은 균형이 중요해요. 도시개발도 마찬가지예요. 비엔티안도 균형을 찾는 중이에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음모가 숨어 있었다. 류즈위안과 서지윤의 화상회의, 메콩강 프로젝트를 이용한 계획. 기록되지 않은 균열이 때로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10. 서울: "데이터의 오류는, 잊힌 감정의 반영이었어."
4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고향. 왕십리 메가트러스트의 스퀘어 본사에서 대표이사 M과의 재회. 190cm 큰 키의 그는 여전히 후드티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10년 전부터 함께 전국을 누비며 부동산 정보를 수집했던 동업자이자 친구.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울 국제 부동산 투자 포럼. 그곳에서 R은 가장 예상치 못한 재회를 했다. 서지윤. 10년 전 연인이었지만 차갑게 떠났던 그녀가 상하이 O캐피탈의 전략기획실장으로 나타났다.
1997년 IMF 당시 100억 원 부동산 사기 사건의 가해자 딸. 개명 전 이름은 서정윤. 그녀의 발표는 RA 시스템을 겨냥한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어." 그 말 뒤에는 깊은 상처가 숨어 있었다.
M의 발표 중 RA 시스템이 다운되었다. 류즈위안의 권한을 이용한 해킹이었다. 하지만 M은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았다.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포기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미셸의 정체가 드러났다. 처음부터 산업 스파이였으며, 서지윤과 함께 APEX 시스템을 개발한 인물이었다. 서지윤의 이메일: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이건 비즈니스야." 하지만 그 말 자체가 감정의 증거였다.

우리는 무엇을 남겼는가?
한강변에서 메모장을 덮은 R은 지난 10개 도시의 여정을 되짚는다. 기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도시 분석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는 '기억의 도시들'에 대한 기록이다.
R은 각 도시마다 자신과 닮은 인물을 만났다. 미셸의 완벽함 속에 숨겨진 온기, 미나의 침묵 속에 담긴 지혜, 린의 몸짓으로 전해진 신뢰, 리안의 투명함에 대한 복잡한 시선, 라타나의 여유로운 기다림, 야팅의 윤리적 고민, 샤히라의 기준에 대한 신념, 아르디아의 직관적 감각, 까말라의 숨겨진 위험에 대한 통찰, 그리고 서지윤의 상처 입은 기억.
그녀들은 그 도시의 언어이자, 시장의 표정이다. 각각의 만남에서 R은 데이터 너머의 세계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 세계가 결국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근원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경험은 달랐다. 서지윤과의 재회, APEX 시스템의 등장, 미셸의 배신. 이 모든 것들은 R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깊은 상처를 만들어낼 뿐일까.
각 편의 말미, R은 메모장에 한 문장을 남긴다. 그것은 결론이 아니라, '감각과 구조가 만나는 지점'을 조용히 지적하는 방식이었다. 이 메모들은 스퀘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데이터의 한계를 인정하되, 그 위에 더 넓은 통찰을 얹으려는 철학의 메타포다.
다음 이야기: 새로운 무대, 깊어지는 시선
딜북뉴스에서 만나는 시즌 2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아시아 10개 도시를 통해 '데이터의 외부'를 조망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으로 시선을 돌릴 때다.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진짜 이야기들이다. 강남의 오피스 빌딩부터 지방 도시의 작은 상가까지, 한국 상업용 부동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유효하다. 기술은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이 기술을 이해해야 하는가.
R은 마지막 메모장을 덮는다. 한강의 물결이 도시의 불빛을 흔들고 있다. 10개 도시에서 만난 10명의 여성이 남긴 질문들이, 이제는 하나의 큰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무엇을 계산하고 있나, 그리고 무엇을 계산하지 못하고 있는가?
서지윤의 이메일이 다시 떠올랐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이건 비즈니스야." 하지만 R은 알고 있다.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는 종종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1997년 아버지의 사기 사건으로 상처받은 열두 살 소녀가, 30년 후 전 세계 부동산 데이터 시장을 뒤흔드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처럼.
R은 새로운 노트를 꺼낸다. 다음 여정을 위한 페이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경쟁자들과 함께 써내려가야 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