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亞 상업용 부동산⑦그림자 아래의 고도,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개발과 보존, 자본과 신념 사이에서 느린 충돌을 겪고 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분석가 R은 이슬람 금융과 ESG 기준이라는 두 겹의 규칙 아래 움직이는 도시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적 속에서도 확고한 시선을 가진 현지 여성 실무자 '샤히라'가 서 있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입국장을 빠져나온 R은 무의식적으로 안내 팻말이나 명함을 든 손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도시가 다른 방식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샤히라는 공항의 작은 기도실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손에 쥔 작은 다이어리를 덮고, 그를 향해 천천히 일어났다. 히잡은 베이지색 실크로 단정히 감겨 있었고, 진회색 셔츠 소매에서 손목시계가 미세하게 빛났다.
"우리, 구면이죠?" 샤히라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R은 주춤했다. 익숙한 그녀의 모습이지만, 오래전 기억 속의 말 없는 관찰자가 아니라, 무게 있는 발언자가 되어 있었다.
2023년 싱가포르의 ESG 콘퍼런스에서, 미셸이 열정적으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던 중 조용히 손을 든 여성이 있었다.
"지속가능성이란, 수치를 채우는 게 아니라 기준을 지키는 거예요."
싱가포르를 대표하던 미셸과 자신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녀. 말수는 적었지만, 그 한마디가 회의실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지금 눈앞에 선 샤히라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제가 안내할 차례네요. 말레이시아만의 속도로 걸어보시죠."
R은 자연스레 뒤를 따르며 미소를 머금었다. 단지 반가움이 아니라, 어느 도시와도 같지 않은 시작을 직감한 사람의 것에 가까웠다.
R과 샤히라를 태운 차량은 도심으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다닥다닥 붙은 저층 상가들이 지나는가 싶더니, 곧 고층 복합타워가 지평선을 뚫고 솟아올랐다.
"지금 가는 곳은 '메르데카 복합타워' 예정지입니다." 샤히라가 말했다. "2040 재개발 계획 구역에 포함됐고, 도시재개발법 개정 이후 첫 시범 사업이에요."
"URA법이요? 100% 소유자 동의 없이도 철거 가능한..." R의 말에 그녀는 끄덕였다. "말레이시아에선 오랫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도시도 조금씩 말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우리의 말은 조용하지만, 바뀌면 오래 갑니다."
R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말 없는 표정이 그의 시선에 스치고 지나갔다. 직감했다. 이번 일정은 단순한 타워 개발 회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둘은 예상보다 일찍 목적지에 닿았다. '메르데카 복합타워' 예정지 앞, 철제 가림막 너머로 흙먼지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쪽에선 기존 건물 철거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 관리자와 간단히 인사 나눈 샤히라는 R을 데리고 가림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황토빛 먼지 냄새, 간헐적인 기계음, 녹슨 철제의 진동. R은 도시의 해체라는 풍경에서 묘한 긴장을 느꼈다.
"오늘 오전에만 해도 철거 계획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부 승인만으로 일정이 앞당겨졌다는 건, 투자 압박이 꽤 있다는 뜻이죠." 샤히라가 설명했다.
R은 방수천 위에 펼쳐진 설계 모형 위로 눈이 갔다. 하늘로 곧게 뻗은 글라스 타워 아래, 작게 칠해진 초록 공간 하나. "이 구역은 뭐죠?"
"기도실이에요. 이슬람 투자 쪽에선 필수 조건이죠.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계약의 핵심입니다."

그녀는 붉은 선으로 표기된 테넌트 규정표를 짚었다. "돼지고기 식당, 주류 판매점, 카지노, 유흥업소는 입점 불가. 해당 조건을 위반하면, 자금 철회까지 이어질 수도 있어요."
R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표정이 살짝 굳어졌고, 이마의 근육이 미세하게 당겨졌다. 화면에는 스퀘어의 상업용 부동산 분석 플랫폼 'RA'가 떠 있었다.
"이 지역의 테넌트 평균 수익률은 11.8%입니다." R이 말했다. "하지만 이 조건들을 반영하면, 8.2%까지 떨어져요. 수치상으로 투자 매력이 사라집니다."
샤히라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Mr. R. 우린 수익률보다, 잃지 않아야 할 기준을 먼저 봐요. 이 도시에서 숫자는 감정을 설득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가리는 베일이거든요. 그러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굵은 충격음이 울렸다. 가림막 바깥에서 철거 장비 하나가 벽면을 건드린 듯 했다. 이내 가림막의 한쪽이 와르르, 모래와 함께 무너져내렸다.
"괜찮으세요?" 샤히라는 R의 팔을 잡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두 사람은 무너진 가림막 너머로 드러난 현실을 바라보았다. 작업자들이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 기계가 멈추는 소음. 한숨을 내쉰 R은 셔츠의 먼지를 털어냈다. 샤히라도 히잡을 정리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본은 언제나 빠르게 움직이고, 도시는 그 속도를 감당하느라 부서지죠." 샤히라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속도 대신 기도를 택해요. 그게 이 도시가 살아남아온 방식이니까요."
야경 아래 미나렛 골목.
그날 저녁, 샤히라와 R은 KL 시청 근처의 오래된 미나렛 골목을 걷고 있었다. 현대식 고층빌딩과 곁에 선 전통 이슬람 사원이 묘한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그 틈에는 소박한 재래시장과 조용한 로컬 카페가 깃들어 있었다.
"이 골목은 리노베이션에서 제외됐어요." 샤히라가 설명했다. "불편하죠. 하지만 이곳엔 설계되지 않은 삶이 있어요."
그녀는 벤치에 앉아 목덜미의 먼지와 땀을 닦았다. "오늘 같은 날엔 도시가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죠."
R은 그녀 옆에 앉았다. "쿠알라룸푸르는 말보다 균형을 오래 기억하네요."
샤히라는 끄덕였다. "기도처럼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지켜보고 있는 감정이 있죠."
다음 날 아침, 샤히라는 R을 대학 캠퍼스 인근의 공유 오피스 단지로 안내했다. 새벽의 비가 그친 뒤 남은 공기가 묘하게 신선했다.
"이곳은 제가 일주일에 두 번씩 멘토링하는 곳이에요." 샤히라가 말했다.
유리문을 열자 안쪽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창업가들이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아랍어와 영어, 말레이어가 섞인 스타트업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이 공간의 60%는 프리랜서, 창업가, 긱 워커들이 차지하고 있어요."
그녀는 창가 쪽 테이블로 R을 안내했다. 홀로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던 히잡 쓴 여학생이 샤히라를 보고 기쁜 듯 일어났다.
"이쪽은 노라에요. 이슬람 핀테크 앱을 개발 중이죠." 샤히라가 소개했다.
R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핀테크라면... 샤리아 금융과 연결되나요?"
노라는 부끄러운 듯 웃었지만, 눈빛은 당당했다. "네. 종교적 가치와 현대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찾고 있어요."
"샤리아는 이슬람의 율법을 의미해요." 샤히라가 부연 설명했다. "이자나 투기 거래를 금지하는 윤리적 금융 시스템이죠. 노라의 앱은 그런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편의성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 흐름을 샤리아 금융과 어떻게 연결하세요?" R이 물었다.
"시간이 걸리죠." 샤히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윤리와 수익, 두 언어를 동시에 씁니다."
잠시 후, 그들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새로운 고층 건물 공사장이 보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그 안에서 오래된 가치를 재해석하는 사람들.
공항으로 가는 길, 샤히라는 손글씨로 적은 작은 메모를 R에게 건넸다. 기도문처럼 보였지만, 실은 오래된 말레이의 시였다.
"이 도시가 말이 없을 땐,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R은 메모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샤히라의 얼굴에 머물렀고, 그녀도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기억하겠습니다." R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샤히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작가의 말: 쿠알라룸푸르는 이슬람 율법, 다인종 도시, 글로벌 자본이라는 세 가지 코드가 얽힌 도시입니다. R은 수치가 아닌 기준으로 작동하는 도시와 마주했습니다. 샤히라는 그 기준을 '속도의 미덕이 아닌, 오래 가는 신념'으로 설명합니다.
이 편은 단순히 종교와 개발 사이의 갈등을 그린 것이 아니라, 도시의 성장이 반드시 효율이라는 언어로만 서술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샤히라의 말처럼, 어떤 도시는 기도처럼 조용히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런 도시를 이해하는 법은, 마음으로 듣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025년 쿠알라룸푸르 상업용 부동산시장 주요 이슈
1. 도시 재개발 및 노후 건물 리뉴얼 '쿠알라룸푸르 인프라 계획 2040'에 따라 100여곳의 재개발이 추진되며, 도시재개발법(URA) 제정으로 동의율 없이도 철거가 가능해졌습니다.
2. 복합 용도 개발(Mixed-use Development) 확대 주거, 상업, 오락 공간이 결합된 프로젝트가 증가하며, 도심 재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3. 사무실 및 소매 공간 공실률 증가 팬데믹 이후 유휴 공간이 늘어나며, 전통적 오피스 및 리테일 수요가 구조적으로 감소 중입니다.
4. 친환경 및 지속가능 개발 트렌드 강화 에너지 절약, 물 절감, 탄소 배출 감축 등 ESG 기준의 적용이 투자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5. 유연한 업무 공간 및 공유 오피스 수요 증가 하이브리드 근무 확산으로 유연한 공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또 공유 오피스 모델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했습니다. 긱 이코노미(비정형 소득자) 대상의 금융지원 정책으로 상업용 부동산 진입장벽이 완화되었습니다.
인물 소개:
📌R :스퀘어의 전략 총괄이사. RA 데이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아시아 전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고, 각 도시의 미세한 균열 속 기회를 찾아내는 인물입니다. 숫자 너머에 있는 사람과 도시의 감정에 예민한 편이며, 감정과 판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타입. 각 도시에서 만나는 파트너들과의 대화를 통해, 도시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해 나가고 있습니다.
📌샤히라: 말레이계 무슬림으로, 쿠알라룸푸르 도심 개발 프로젝트의 실무를 총괄하는 도시계획 전문 관료입니다. 히잡을 쓴 단정한 외형과는 달리, 복합적인 사고와 명료한 언어를 구사하는 실력자입니다. 2년여만에 R과 조우했으며, 숫자보다 기준을 중시하는 성향입니다. 샤리아 기반의 금융 모델과 ESG 수익성 모델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며, 도시가 '오래 지속될 언어'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