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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망과 구매자 없이 RE100 산단? 전남 해상풍력 성공의 조건

권효재
권효재
- 8분 걸림 -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과 ‘RE100 산업단지’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을 유치해, 지역 안에서 전기의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자는 구상이다.

남거나 부족한 전기는 새롭게 구축되는 전력망을 통해 서로 주고받는 구조다. 방향은 옳다. 특히 전력 자급률이 매우 높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 허가가 난 전남의 경우 더욱 유효한 전략이다.

하지만 멋진 개념과 아이디어만으로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경제성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채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수요 없는 공급, 전남의 딜레마

차세대 전력망의 핵심은 ‘지산지소’, 즉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다. 수도권은 전기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변했고, 지방은 남는 전기를 보내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것이 차세대 전력망의 취지다.

전남은 이미 전기가 남아돌고 있다. 여기에 신안 해상에 해상풍력 발전이 대규모로 허가되면서, 생산량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문제는 이 엄청난 전기를 누가 소비하느냐는 점이다. 지금도 남는 전기가 많은데, 해상풍력까지 본격 가동되면 전기는 말 그대로 넘쳐나게 된다. 해법은 분명하다.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RE100 산업단지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들을 전남으로 끌어들이자는 구상이다. 정부는 파격적인 전기료 할인과 규제 프리존이라는 인센티브도 내세웠다.

하지만 기업의 논리는 냉정하다. RE100 라벨을 붙이기 위해, 전기료가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조 원을 들여 공장을 이전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

RE100 산업단지가 경제성을 가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전체 제조 원가에서 전기료 비중이 높아야 하고, RE100 달성이 이익률과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쳐야 한다. 초기 투자비도 감당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업종은 일부 데이터센터, 반도체 후공정 등 소수에 불과하다. 정부가 기대한 ‘앵커 기업’들이 이 좁은 조건을 만족하고 실제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비싼 ‘녹색 전기’, 누가 값을 치를 것인가

전남 서부권 해상풍력 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여수·광양 산단에 공급하겠다는 그림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 커다란 장벽이 존재한다. 바로 가격과 지불 능력이다.

먼저 해상풍력 전기는 비싸다. 국내 해상풍력의 균등화발전원가는 태양광이나 원자력보다 훨씬 높다. 기술이 발전하면 원가는 내려가겠지만, 단기간에 기존 수준으로 낮아지긴 어렵다. 기업들이 기존보다 비싼 전기를 자발적으로 구매할 이유가 없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른 것만으로도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상풍력 전기를 감당할 여력은 더 부족하다.


또 하나의 장벽은 대규모 전력 소비 업종의 지불 능력이다. 철강, 석유화학 같은 업종은 글로벌 원가 경쟁이 극심한 산업이다. 전기료 상승은 제품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된다.

물론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같은 규제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기업이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RE100을 앞당기긴 어렵다.

정부가 내세운 ‘파격적인 전기료 할인’도 결국 재원이 필요하다. 이 부담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질지에 대한 설계가 없다면 RE100 산업단지는 실체 없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경제성’과 ‘물리적 망’ 없이는 사상누각

조 단위가 투입되는 해상풍력 사업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경제성 확보와 물리적 망 구축이다.

경제성은 결국 누가, 얼마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기를 사줄 것인가의 문제다. 발전사업자는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판매할 수 있는 구매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매자가 불명확하고, 전력 가격도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민간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기 어렵다. 정부가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제도, 예컨대 FIT, FIP, 장기 고정가격 계약 등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사업은 첫 삽도 뜨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리적 송전망 구축도 시급하다. 전남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거나 지역 내에서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대규모 송전 인프라가 필수다. 정부는 한전의 선제 투자로 문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수십 조 원이 드는 투자비와 주민 수용성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다.

진짜 성공 조건

차세대 전력망과 RE100 산업단지는 분명히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해상풍력 개발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결단과 집약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기발한 개념과 시범사업, 기술개발에만 의지해서는 한계가 따른다. 실무 현장에서는 실행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해상풍력의 보급 확대, 발전원가 절감, 제도 개선, 민간 투자 유인이라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차세대 전력망이나 RE100 산단이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해상풍력의 높은 원가,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비용 한계, 투자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설계 등 근본적인 경제성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허가 절차는 일원화하고, 대규모 송전망 또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설치를 현실화하며, 해상풍력 설치선 확보와 공급망·운영정비(O&M)의 일정 수준 국산화도 이뤄야 한다.

문제를 알고 있고, 해법도 제시돼 있지만, 실행이 어렵다는 점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차세대 전력망 개발', 'RE100 산단'은 자칫 부족한 자원을 분산시키고 동력을 오히려 약화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결국 진짜 성패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 특히 기업과 투자자의 경제 논리를 설계 안에 얼마나 정교하게 녹여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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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재

권효재는 COR Energy Insight 대표입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한화오션과 미국계 에너지기업을 거쳐 재생에너지 개발사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공부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등을 통해 관련 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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