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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브로커인가(부제: 이상한 브로커 감별법)

낭만디벨로퍼 김영철
낭만디벨로퍼 김영철
- 14분 걸림 -
Pixabay로부터 입수된 Gerd Altmann님의 이미지 입니다.

1995년 <환상의 빛>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골든오셀라 촬영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고레에다 히르카즈 감독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데뷔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 온 감독은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런 그가 지난해 한국의 보석같은 배우들과 함께 <브로커>를 내놓았을 때, 한껏 기대가 되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브로커>의 소재는 아이를 입양시킨 대가로 수수료를 취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생물학적 가족이 아닌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서로의 약함과 결함들을 연대와 지지를 통해 보완해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간 인물임을 감안할 때, 이 작품 또한 아이의 엄마, 아이, 유아 브로커들 모두가 결국은 "가족"이 되는 쉬운 결말로 도망치지는 않을까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감상한 후, 섣부르게 거장을 판단했던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결말은 제가 예측했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마침내 가족이 됩니다. 그렇지만 결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진짜 입양 브로커였습니다. 선한 사람이었던 두 사람이 어쩌다가 입양 브로커가 되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 돈을 목적으로 버려진 아동들을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브로커가 상현과 동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브로커들을 뒤쫒는 두 형사(배두나, 이주영)가 등장합니다. 두 형사는 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두 사람을 쫓습니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아이의 엄마인 소영(이지은)과 아기 우성을 대하면서, 그리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점차 바뀌어 갑니다. 우성을 잘 길러줄 수 있는 토양을 가진, 애정과 경제적 안정성을 동시에 지닌 부모를 찾아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아이와 부모를 연결한다, 라는 행위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대하는 브로커들의 태도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로 다가왔던 것은 상현과 동수의 뒤를 쫓는 형사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분명 처음에는 그간 입양 브로커로 범죄를 저질러 왔고 지금도 범죄를 행하려고 강하게 추정되는 인물들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이 변화하면서, 그리고 형사들 또한 그 상황의 변화를 눈과 머리로 쫓으면서 이들의 정의와 신념은 미묘하게 뒤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상현과 동수의 입장과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결국 아이를 입양 희망자에게 넘겨준다면 그 자체로 범죄가 성립하게 된다는 것 또한 명확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범죄 행위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행범으로 범죄자를 잡을 수 없습니다. 어느새 범죄가 일어나야만 하는 듯한 관점으로 옮아가게 되고, 더 나아가 범죄를 간절히 기다리는 입장이 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때 후배 형사(이주영)는 선배(배두나)에게 묻습니다.

"브로커는 우리가 아닐까요?"  

​이상하리만큼 한국에서 특히 왜곡된 상으로 형상화된 두 직업이 브로커와 로비스트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일상에서 직업이 브로커가 아닐 뿐, 브로커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만납니다. 브로커리지의 본질은 중개와 주선입니다. 즉 재화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수요)과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공급)을 연결하는 것이 브로커리지이고, 이것을 하는 사람이나 회사가 브로커입니다. 좋은 브로커들은 뼈와 뼈를 잇는 관절처럼 각종 산업에서 거래와 비즈니스가 일어나는데 촉매 역할을 합니다.

​중고물품의 중개는 당근마켓이 브로커의 역할을 하고,  컨텐츠 제공자와 시청자를 연결하는 시장에서는 유튜브가 중개자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 현물을 구매하거나 대여할 때 공인중개사를 통하는데, 이 또한 브로커리지에 다름 아닙니다. 사실 고상한 듯 보이는 금융주관이나 주선 또한  전통적인 의미에서 브로커리지입니다.

중개하거나 주선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금전적 가치가 좋고 건전한 중개와 그렇지 않은 주선을 판가름하는 잣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제가 생각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1) 단순한 소개 외에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하느냐와 (2) 그 가치에 상응하는 합당한 수준의 수수료를 원하느냐가 바로 그것입니다.

​공인중개수수료 0.9% 안에는 많은 전문성이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인된 중개사이면서 특정 지역에서 오래 자리잡고 활동하는 중개사 분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다양한 양질의 매물들에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분들이 자산 보유자를 실제로 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개인이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비싼 고관여 상품인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소유권이 안전하게 이양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프로세스를 유려하게 처리하고 이를 보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들에게 기꺼이 0.9%를 지불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단순 소개를 넘어서는 부가적인 가치이며, 그에 상응하는 수수료의 의미입니다.

사업 입지도 탁월하고 토지 가격도 합리적이건만 좀처럼 진행되지 못하는 개발 사업을 가끔 접하게 됩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십중팔구는 이상한 브로커 - 더 나아가 브로커"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아저씨"라는 업계의 속어를 혹시 아시는지요?

​주로 지주작업자인 이분들은 통상 최대 토지비의 3%까지 책정되는 지주작업비를 수취하는 분들입니다. 토지의 매도자와 매수자가 만나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이분들이 등장하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분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계약 당일 나타나는 이분들은 한 분일 수도 있고 세 분일 수도 있으며 다섯 분일 수도 있습니다.

​토지주와 관계를 직접 관계를 맺은 A는 B에게 토지를 소개했고, B는 C에게 토지를 소개했습니다. C는 다시 D에게, D는 E에게 해당 토지를 소개했고 마침내 E가 매수자를 만났습니다. 이분들이 계약 당일날 나타나는 이유는, 만약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아서 계약서에 본인의 날인이 빠지게 된다면 수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계약시 참석한 분들의 숫자는 3% 아저씨의 실제 숫자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하나 더 나누겠습니다. 어느 사업의 PM을 담당하던 친구의 지인이 술을 마시다가 친구에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 좋은 사업이 왜 진행이 안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듣다 못한 친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형 때문이잖아!"

​PM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지주작업자였던 친구의 지인은 시행이익의 절반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PM 수수료 5%, 금융주관수수료 7% 등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숫자들이 사업수지표에 기재되어 있는 경우를 가끔 접하실 것입니다. 이런 경우 다수의 브로커들이 시행 프로젝트 가치사슬의 전 영역에 걸쳐 겹겹이 분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이 브로커였던 사람은 아마도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멋진 브로커가 될거야!"라는 마음을 품고 자라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때로 우리는 본인이 브로커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브로커들을 만납니다.

​이분들도 처음에는 좋은 의도와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파트너들에게 설명할 때 약간의 양념을 치는 것일 뿐이라는 데서 일은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들은 금융회사 직원을 만나 본인을 시행 사업주라고 소개했을 것입니다. 아직 어떤 계약도 존재하지 않지만 지주작업이 "완료"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금융의향서(LOI)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다시 토지주를 만나서는 곧 금융회사가 LOI를 발급할 예정이므로 프로젝트는 순항할 것이라 설명했을 것입니다. 사업수지나 기타 전문 자료가 필요할 때면 다른 전문가를 찾아 PM이나 금융주관 역할을 줄테니 자료를 작성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브로커는 그렇게 탄생합니다.

​나는 브로커일 리가 없고, 내가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그림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사실 브로커는 우리가 아닌지 묻는 고레에다 감독의 질문은 그래서 더 통렬하게 다가옵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만, 그것도 본인이 설계한 구도대로 되어야만, 본인이 배제되지 않는 구조로 진행되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 때가 바로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브로커가 아닌지를 자문해야 할 때입니다.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으면 니가 그 호구다."

​<미스터 선샤인>의 대사입니다. 분명히 양질의 프로젝트인데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브로커로 보이는 사람도 딱히 없습니다. 그러면 그 판에서는 바로 내가 브로커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과도한, 무리한 욕심을 내기 때문에, 또는 내가 실력이 부족함에도 이 프로젝트에서 돈을 벌어야만 하기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를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내가 빠질 타이밍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단순하지만 참으로 어렵지요.

​사업 시행자나 토지주 입장에서 브로커를 판별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누구도 본인이 브로커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인지하고 있는 경우조차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만, 여전히 저 또한 가끔 깜빡 속습니다.

​제가 체득한 브로커 판별법을 한 가지만 공유합니다. 이것은 꽤나 확실한 방법입니다.

​본인이 이 생태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고(전지(全知); omniscient), 모든 것을 할 줄 안다(전능(全能); omnipotent)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접근한다면, 그분은 100% 브로커입니다. 그분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분은 거기 계실 분이 아니라 M 기업이나 S 기업의 회장님이 되셨겠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M, S의 회장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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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디벨로퍼 김영철

포어모스트자산운용 대표이사. 낭만 디벨로퍼이자 다정한 금융가, 명랑한 스타트업 경영자로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블로그 게시 내용 중 부동산 개발 관련 글을 모아 딜북뉴스 독자분들과 공유합니다. 메신저 서비스인 슬랙(Slack)을 기반으로 부동산 커뮤니티 '레인(Rei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eric.youngcheol.kim@gmail.com 커뮤니타: https://join.slack.com/t/reinetwork-hq/shared_invite/zt-285z4g8px-ks6NYuyycyAN14ySN3m0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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