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착공사업 정상화와 시나리오 플래닝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마주하면서 제가 몸담았던 건설사도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골치 아픈 미착공 사업지가 두자릿수였습니다. 도급으로 수주했지만 시행사에 대한 여러 보증 탓에 PF채무를 인수한 사업장, 대주단을 설득해 리파이낸싱한 사업장, 토지를 인수해 자체 개발사업으로 전환한 사업장 등등.
다양한 사업장이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업지를 미착공 사업장(미착 시업장)으로 구분했습니다. 사내 사업지원실이 이들 사업장에 대해 정기적으로 리스크관리(RM) 활동을 했습니다.
리스크 관리는 두가지 초점에 맞춰집니다. 미착공 사업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한 것과 사업을 정상적으로 끌고 가는데 드는 캐시 플로우(현금 흐름) 점검입니다.
미착공 사업에 대한 활성화 시나리오는 다시 3가지로 나눠집니다. 이들 미착공 사업은 모두 주거 프로젝트여서 첫번째 시나리오는 분양 가능한 수준으로 사업 규모를 쪼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지요. 다만 단계적으로 사업지를 분양하려면 기계전기실이 독립적으로 있어야 하며 준공이 달라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대한 고려를 미리 체크해야 합니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사업 구도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종 상향을 포함해 용적률 상향을 통한 사업성 개선이 가능한지 등을 검토합니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매각 등을 통한 엑시트 시나리오입니다.
부동산 개발시장에 불황이 닥치면 시행사와 시공사는 서로 손해를 줄이려고 제로 썸(ZERO SUM) 게임에 들어갑니다. 소송전이 일어나고, 소송은 지루한 장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돈 뿐 아니라 회사의 법적 책임도 걸려 있으므로 일정 부분 소송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임직원은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지요.
물론 개발사업장을 살리기 위해 포지티브 썸(Positive Sum) 게임으로 가면 좋지요. 서로 일정 부분 양보하고 사업을 성공하는 쪽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필립 코틀러가 '마켓 3.0'에서 얘기했듯이 사업 협력은 매우 중요한 성공 요소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디벨로퍼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했는데 어려운 시기에 지휘자처럼 잘 조율해 사업을 살리려면 많은 역량과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특히 자본력이 없는 시행사가 장기적으로 사업을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미착공 사업이 성공한 사례는 대부분 장기전을 각오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짜 시뮬레이션한 뒤 분양시장과 핏(Fit)을 맞춘 경우입니다. 이 때 마케팅 전문가의 역량이 중요함을 체득했습니다. 개발사업을 오랜 기간 경험한 임직원의 지식과 노하우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페이지 분량으로 사업을 살리기 위한 컨셉트를 작성해 가져온 걸 보면 담당 직원의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플랜을 짜는 사람도 더러는 있으니까요.
과거에 결정했던 사업성을 정답이라고 여기지 마시고 그 정답을 계속 시장에 맞게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없는 3가지가 있지요. 공짜, 비밀, 정답입니다.
개발사업의 고난기 때는 PMF(Product Maket Fit), 즉 부동산 개발상품과 시장이 궁합이 맞도록 계속 수정해 나가는 시나리오 플랜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건설사가 보유한 좀비 사업장이 늘어날수록 결국에는 큰 비용으로 이를 메워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사회적 비용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