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펀드 운용사, '보험사 자금' 없는 생존법 모색
인프라펀드를 굴리는 자산운용사들이 보험사를 탈피한 새로운 생존법을 찾고 있다. 그간 펀드 주요 투자자 역할을 했던 보험사들의 자금 집행이 뚝 끊기자 투자자를 다변화하고, 펀드 구조도 바꾸는 등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국제회계기준(IFRS) 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동시 시행 여파에 보험사들은 인프라펀드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통펀드 구조 없애고 직접 대출을 늘려
31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간 인프라 투자 대세인 통펀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개의 펀드로 선순위 대출과 후순위 대출, 에쿼티(자본금) 투자를 함께하는 일명 통펀드방식이 그간 민자사업과 에너지개발 사업에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새 회계정책에 따라 보험자산과 보험부채가 모두 시가평가로 바뀌었다. 같은 대출이라도 직접 대출이 아닌 대출형펀드에 투자하면 시가평가를 해야한다.
이로 인해 매분기 손익 변경으로 보험사의 재무제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자 보험사들이 인프라펀드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특히 선순위 대출을 펀드에서 분리해 직접 대출을 선호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고육지책으로 영구폐쇄평 (만기없는) 펀드를 도입해 대출형펀드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영구폐쇄형 펀드 도입이 쉽지않다.
운용사들은 이런 흐름을 고려해 통펀드 모집 방식을 벗어나 직접대출과 펀드를 분리하고 있다. 현재 리파이낸싱(자금재조달)을 진행중인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는 이번 기회에 통펀드에서 대출분을 떼어내 직접대출분으로 바꾸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앞서 이달 초 파이낸싱을 끝낸 SK멀티유틸리티 역시 보험사를 위해 17년 만기의 고정금리 직접 대출을 별도로 모집했다.
다만 에쿼티와 후순위만 모집해 인프라펀드를 설정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인프라에 투자하는 금융사들이 이른바 재무투자자(FI)로 불리는 에쿼티·후순위 투자를 선호하지 않고 있어서다. 선순위 대출에 비해 FI투자는 리스크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앞으로 자금을 모집할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사업과 GTX C노선 역시 FI모집이 자금 조달의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에 건설업계는 최근 민자사업의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줄여달라고 기획재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최소 자기자본 비율을 건설기간은 15%에서 10%로, 운영기간은 10%에서 5%로 각각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펀드 투자자, 은행과 SI 등으로 다변화
자산운용업계는 또한 보험사 자금을 대신할 연기금이나 은행, 전략적 투자자(SI) 등의 '자금 모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은행들은 금융자문과 주선 역할을 위해 일정 여유자금을 인프라펀드에 담고 있다. 이에 운용사들은 은행 자금을 모아 펀드를 설정하고 있다.
KDB인프라자산운용은 조만간 3000억원의 RE100기업 대출형 블라인드펀드(위탁운용펀드)를 설정한다. 기업은행과 농협은행의 자금을 각각 2000억원, 1000억원 유치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는 자발적 글로벌 캠페인이다. RE100 대출형 펀드는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RE100 기업이 구매할 때 대출해주는 펀드다.
다만 펀드 투자는 은행들의 주력 사업 분야가 아니어서 자금확보에 한계가 따르는 만큼 다른 투자자를 더 많이 발굴하려 애쓰고 있다. 인프라·에너지사업에 사업주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기업, 즉 SI의 자금을 유치하는데 눈돌리고 있다.
운용사들은 6월 중 새로 열리는 수소발전 입찰시장에 참여하려는 기업을 모아 연료전지 발전사업 관련 펀드 설정에 힘쓰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발전사업의 주요 SI로는 두산퓨어셀 두산에너빌리티 SK그룹 계열사 등이 꼽힌다.
한 자산운용사 인프라펀드팀장은 "그간 인프라펀드와 보험사는 투자자산의 장기적 운용이라는 성격이 맞아 오랬동안 호흡을 맞췄다"면서 "그러나 회계제도 변경 탓에 이제는 보험사 의존도를 줄이는 게 펀드업계의 주요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