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산유동화의 흐름과 전망

자산유동화는 은행이나 기업이 보유한 자산(대출, 부동산, 미래 수익 등)을 특수목적법인(SPV)에 양도하고, 이를 기반으로 증권(ABS)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은행의 대출 여력을 키우고, 기업은 자본을 확보하며,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강화와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발행 규모는 위축됐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규제와 시장 활성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자본시장연구원의 ‘유럽 자산유동화 시장 현황 및 제도 개혁 추진’ 보고서를 중심으로 관련 흐름을 살펴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자산유동화 시장은 지역별로 상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시장 규모가 크고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 중이다. 자산유동화 발행 규모는 2008년 약 1,462조원에서 2021년 약 5,883조원으로 확대됐다가, 지난해에는 약 2,341조원으로 줄었다(AFME 기준).
주택저당증권(MBS)과 소비자 대출 기반 증권화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자산을 활용한 유동화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높은 실사 비용과 복잡한 규제는 여전히 중소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유럽은 위기 이후 침체가 지속되었다. 자산유동화 발행 규모는 2008년 약 1,237조원에서 2021년 352조원, 2024년 약 370조원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이는 엄격한 규제와 행정 부담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단순·투명·표준화(STS) 기준으로 투명성은 개선됐지만, 복잡한 공시와 인증 절차는 발행자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예컨대, 발전소 자산은 효율성 차이 때문에 STS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비STS로 분류되는 사례가 많다. 보험사의 투자에도 제약이 따른다. Solvency II 규정은 자산유동화에 대한 보험사의 투자 참여를 가로막고 있고, 합성 리스크 이전 방식은 자산의 소유권 이전 없이 위험만 이전되기 때문에 투자자 신뢰도가 낮다.
글로벌 자산유동화 시장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자산 선정과 공시 요건을 간소화해 중소기업의 시장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관련 자산유동화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다.
유럽 역시 자본시장연합(CMU) 전략 아래 제도 개혁에 나서고 있다. 보험사의 투자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 중소 발행자의 부담 경감, 자산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하는 '트루 세일(True Sale)' 방식 확대 등이 그 핵심이다. 또한 국가별 법률 차이를 줄이기 위해 세법과 회계기준 정비도 진행되고 있으며, 행정 절차 간소화를 통해 실사 비용과 중복 보고 의무도 완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흐름은 중소기업과 전략 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은행이 대출 자산을 증권화하면 자본 여력이 확대돼 추가 대출 여지도 생긴다.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처럼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산업도 자산유동화를 통해 자금을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투자자 기반 확대와 유동성 증가는 시장 내 가격 형성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한국의 자산유동화 시장도 성장과 도전을 함께 겪고 있다. 2023년 발행 규모는 66조 원으로 증가했지만, 지난해에는 51.7조 원으로 줄었다. 특히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이 48.8% 감소했는데, 주택시장 침체와 특례보금자리론 종료가 주요 원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분야에서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2023년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소·풍력 발전소 자산을 증권화해 3,200억 원을 조달한 사례나, 지난해 안산 데이터센터의 단기사채(ABSTB) 발행은 시장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024년 자산유동화법 개정은 국내 시장 확대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자산보유자 요건이 완화되면서 유동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 수가 기존 3,000개에서 1만1,00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유동화 대상 자산도 채권, 재산권, 미래 수익 등으로 확대되었다. 다만, 공시 강화와 리스크 보유 의무는 발행자 입장에선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안정적 시장 운영, 유럽의 제도 개혁은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규제 간소화다. 유럽의 STS 기준 완화와 행정 절차 축소는 발행자 부담을 줄이는 좋은 선례다. 한국도 공시 요건과 리스크 보유 규제를 유연하게 운영한다면 중소기업의 참여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둘째, 트루 세일(True Sale) 방식 확대다. 자산 소유권을 이전하는 이 방식은 투자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국내 시장에서도 유동성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자산군 활용이다. 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같은 실물 자산의 유동화는 한국 자산유동화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기회다.
자산유동화는 단순한 금융 기법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자금 순환을 이끄는 엔진이다. 미국의 안정성, 유럽의 개혁, 한국의 잠재력이 조화를 이루면 글로벌 자산유동화 시장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것이다. 한국은 규제와 혁신의 균형을 통해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