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권(CBD) 오피스빌딩 대규모 공급과 시장 영향

CBD에서 자산이 매물로 나올 때마다 항상 따라붙는 이슈는 도심권역의 향후 오피스 공급입니다. 서울의 3대 업무 권역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재개발이나 재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6월 기준으로 CBD 내 약 30개에 가까운 오피스 재건축 및 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오피스 빌딩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SK, DL 등 대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다른 권역으로 이전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대형 자산이 준공되더라도 앵커 테넌트 역할을 할 기업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산을 매입하려는 투자자의 입장
CBD 권역 내에서 추진 중인 개발 프로젝트 대부분은 2026년부터 2030년 사이에 공급이 예정돼 있습니다.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기관들은 주로 펀드나 리츠 형태로 자산을 매입하며, 일반적으로 투자 기간은 약 5년입니다.
따라서 매입 후 일정 기간 운영을 거쳐 매각해야 하는 시점에 인근에 경쟁 자산이 대거 공급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향후 수년간의 공급 추이에 매우 민감한 상황입니다.
최근 자산관리회사나 부동산 자문기관들이 예측한 CBD 내 공급 예정 물량은 약 400만 제곱미터, 평수로 환산하면 약 121만 평에 달합니다. 여의도 IFC 오피스 빌딩 3개 동이 총 약 10만 평, 파크원 타워 1이 약 5만 평, 타워 2가 약 2만 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21만 평이라는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IFC도 공급 초기에는 여의도 권역 내 공실 우려가 상당했고, 임대가 완료되어 안정화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사례를 참고할 때, 투자자들은 대형 프로젝트의 공급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매물로 나오는 CBD 자산 중에는 투자 만기 도래로 인해 매각이 추진되는 곳도 있지만, 향후 과공급 국면에서 자산 매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매각을 마무리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일부 존재합니다.
개발하고 있는 디벨로퍼의 입장
시행사나 디벨로퍼 입장에서는 현재 시장에서 논의되는 과공급이 어디까지나 '예상치'일 뿐, 실제로 공급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건축비 상승, 인허가 지연, 사업성 부족 등의 요인으로 인해 실질적인 공급량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또한, 현재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 중인 일부 프로젝트는 외부 임차인을 대상으로 한 임대용 자산이 아니라, 자체 사옥 용도로 개발되고 있어 실질적인 임대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JB금융그룹이 추진 중인 서소문구역 제10지구, 삼성생명이 개발 중인 서울역서대문 1·2구역 제1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등이 있습니다.
결국 공급 물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단기간 내에 완료될 프로젝트는 대부분 수요가 확정된 사옥이며, 나머지 공급도 시장 상황이나 인허가 여건에 따라 지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정된 공급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장에 나오는 자산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개발 일정 지연은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임대 경쟁력 측면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가 절감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CBD 권역에서 가장 빠르게 공급이 예정된 공평 15·16지구는 향후 도심 오피스 시장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G1 Seoul’이라는 이름으로 선매각과 임대 마케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의 성과에 따라 이후 자산에 대한 시장 기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공급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
최근 신규 오피스 공급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플라이트 투 퀄리티(Flight to Quality)’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국내 산업 전반이 침체돼 있고, 대형 면적을 사용하는 대기업들조차 비용 절감을 위해 저렴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Flight to Quality를 강조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개발되는 프로젝트들은 복합개발 형태가 많고, 공급 면적도 큰 편이어서 한 번에 시장에 출회될 경우 그 여파가 상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규 자산이 임대 안정화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규모 공급이 단기간에 이뤄질 경우, 디벨로퍼나 시행사는 초기 투자 제안 시 제시했던 임대율이나 기준 임대료를 방어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게 됩니다. 예컨대, 임차인을 유치하기 위해 공사비 일부를 지원하거나 무상 임대 기간을 늘려 수익성보다는 임대율 확보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신규 수요 창출보다는 기존 권역에서 임차인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 경우 임차인은 성장보다는 비용 절감을 위한 이전이 목적이므로 낮은 임대료를 요구하거나 신용도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존 오피스 빌딩에 대형 공실이 발생하고, 이는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대규모 공급이 이뤄졌던 마곡지구 사례를 통해 CBD의 미래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마곡은 비슷한 시기에 여러 대형 자산이 동시에 공급되면서 시장이 임차인 우위로 바뀌었고, 공급자들은 제한된 수요자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조건을 제시하게 됐습니다.
다만, 마곡에 입주한 기업들은 이를 통해 비용 절감과 쾌적한 근무환경 조성이라는 효과를 누렸으며, 조직 통합이나 구조조정 수단으로도 활용됐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낮은 임대 기준가에도 불구하고 공실 해소 속도가 빨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도심권역 과공급을 어떻게 볼 것인가
CBD 오피스 시장의 과공급 문제는 어디까지나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공급 시점에 시장 상황이 개선되어 예상보다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고, 과공급 우려를 상쇄할 수 있는 새로운 수요자가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CBD는 다른 업무 권역보다 건물 노후도가 높아, 도심 재생이나 환경 개선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균형을 찾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의 과공급 논란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자산의 등장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거래 가능한 자산의 수를 늘려 시장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