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커브' 마주한 한국 전력시장에서 묘책 찾기
11월이지만 지난 3일 일요일은 하루 종일 늦가을 답지 않게 화창한 봄날 같았습니다. 공장과 사무실은 잠시 일손을 멈췄고 날은 춥지 않아 난방도 필요 없는 포근한 하루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태양광 발전소에선 그 어느때보다 화창한 날을 연료삼아 발전의 최적 조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그날의 우리 전력수요와 공급을 시간대별로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X축은 하루 시간대별 표시이고 Y축은 시간대별의 전력수요와 공급량을 MW단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층층이 색이 다른 표현은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시간대별로 전력을 공급해 주는 연료원별 발전량을 보여줍니다. 맨 밑에서부터 원자력, 유연탄, 신재생, 태양광(빨간색), 천연가스 등의 전력 공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자료는 전력거래소 홈페이지에서 누구든 손쉽게 확인 가능합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우리도 이젠 간절기(봄, 가을) 주말 화창한 날이면 '덕 커브' 현상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덕 커브(Duck Curve)’는 일사량이 좋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태양광 발전 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한낮에는 화석연료 발전량을 그만큼 줄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곡선이 점점 오목해집니다. 반면 저녁에는 석탄발전, 가스발전량이 다시 늘어나 그래프가 볼록해집니다. 태양광발전이 늘어날수록 그래프는 오리 모양이 된다고 해 덕 커브라고 합니다.
그래프를 보면 9시에서 16시 사이 오목하게 들어간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오목해지는 현상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수요가 줄어서가 아닙니다. (i) 집이나 공장에 설치된 태양광의 자가소비량과 (ii) 전력거래소에서 거래하지 않고 한전에 직접 매전하는 태양광의 발전량이 전체 수요를 줄여(정확하게 말하면 순수요) 오목해 진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빨간 부분, 즉 전력거래소에 거래하는 태양광 발전량까지 그래프에서 빼면 해당 시간대의 그래프는 더욱 오목해 질것입니다. 더욱 '덕스러운 커브'가 되겠죠.
자 이렇게 오목하게 됐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날 13시에 도매전력가격인 SMP(System marginal price)가 “0”을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1년 SMP 도입이후 지난 2월 설날과 같이 극단적으로 수요가 없는 이벤트 기간을 제외하고 처음 0을 찍었습니다. 그 전주도 그 다음주 일요일에도 다행히(?) “0”은 없었습니다. 독자분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각각 일자의 그래프를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kpx.or.kr/powerSource.es?mid=a10606030000&device=chart
여기서 우리는 해당시간대의 Y축 전력 수요를 볼 수 있습니다. 대략 42.6GW의 전력수요에서 태양광의 공급량이 5.6GW입니다. 즉 전체 전력수요의 10% 넘게 태양광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력수요가 40GW 초반대 이하가 될수록, 태양광 공급량이 5.6GW를 넘어갈수록 우리는 이러한 제로(0) 수치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서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전주나 다음주 일요일에는 전력수요가 살짝 높았고, 또 태양광 발전량이 낮아 “0”을 피해갈 수 있었던 거죠. 태양광 설비가 계속 증가하게 된다면 간절기 주말에 화창한 날에는 덕커브의 깊이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덕 커브 양쪽에서의 그래프 기울기가 가팔라질 것입니다.
이는 SMP 하락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팔라진다는 것은 그 짧은 시간 내(오후 해가지는 16~18시)에 더 많은 발전기의 투입과 정지를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전력 계통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또 다른 현안 중 하나인 출력제한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까지 심화될 것입니다.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비중앙 유연성제도'라는 경부하기(최저전력수요 시기)에 발생하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에 대한 부담을 모든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균등하게 나누자는 신박한 제안을 했습니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출력제어 운영을 위해 출력제어 시행시 전체 사업자가 균등하게 손실분을 분담해 소수의 특정 발전소가 안정적 계통운영을 위해 희생하는 상황을 피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경직성, 간헐성, 변동성, 무관성 확대에 따른 재생에너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ESS(밧데리 에너지저장 시스템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동기조상기, 양수발전, +DR, Fast DR, 섹터커플링 등의 최적 조합을 준비해야 합니다.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에 따라 2038년까지 필요한 장주기 BESS 필요량은 21.5GW로 도출됩니다. 이에 신규 양수발전기 진입가능 시점(2036년) 이전까지 필요량은 BESS 등의 저장장치로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제주 장주기 BESS 중앙입찰시장'을 통해 국내 BESS 시장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내륙 특히 태양광 발전용량이 높은 전라지역의 중앙입찰시장 준비가 뜨겁습니다. 오는 2026년부터 매년 0.5GW씩 단·장주기 ESS를 통합해 확보하겠다고 합니다.
온난화로 전력수요와 태양광발전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덕 커브를 깊게 만들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계통관리 변전소 지정 등으로 손쉽게 공급을 막는 방법으로는 그 흐름을 늦출 수 없어 보입니다. 잘못은 태양광이 한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며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고 BESS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