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화국의 현실과 다음 리더의 과제

집값, 부채, 수도권 쏠림...회피할 수 없는 구조적 질문들
사람이 모여 사회와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루소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사회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와 국가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합니다. 그 중심에는 각 개인의 열망이 있습니다. 국가 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은 결국 구성원의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입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부동산(주택)’에 대한 논의가 유난히 힘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선거에서는 부동산 정책과 주택 가격이 정권 교체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이 중요한 주제를 회피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주는 정치적 부담입니다. 부동산은 국민 자산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집을 소유했느냐 여부에 따라 ‘가진 자 vs 못 가진 자’, ‘서울 vs 지방’, ‘강남 vs 비강남’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이미 부동산은 하나의 계급이 되었고, 정치세력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지지층이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결은 어렵고 입장을 밝히는 것조차 위험한 과제이기에 신중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이미 ‘부동산 공화국’이 된 현실에 대한 정치세력의 일종의 묵인입니다. 현실의 무게는 이성적 전망을 고립시키고, 미래에 대한 방향 설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누가 감히 ‘주택 가격 거품’, ‘부채 위험’, ‘왜곡된 자원배분’, ‘생산성 저하’ 문제를 정면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간 지지층 이탈이나 선거 패배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본질에 접근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 앞에서 결국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기본은 ‘인간의 욕망’과 ‘시장 현실’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인정하면 정치세력의 ‘수백만 호 공급’ 공약이 반복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품과 탐욕을 우려하는 이유
우선, 자산 가격 ‘거품’이란 무엇인지 정의해보아야 합니다. 여러 연구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욕망이 투사되어 가격이 급등하고, 그럼에도 비이성적 기대가 지속되는 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쉴러(Shiller)는 자산 가격이 근본 가치보다 높게 형성되고, 대중 심리가 그 상승을 계속 정당화하는 상태를 거품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킨들버거(Kindleberger)는 수요 급증으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르고, 결국 붕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품’이라 설명합니다.
거품은 경제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줍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 상승에도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고, 사람들은 미래 소득을 끌어와 자산을 매입합니다.

<그림1>을 보면, 약 1900조 원의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이 약 1100조 원입니다. 이는 가계가 미래 소득을 현재 부채로 끌어와 자산을 구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정책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공동체의 방향 설정이 적절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거품의 폐해는 ‘가격 상승 → 기대 상승 → 미래소득 사용 → 가계부채’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결국 가계 재무건전성에 타격을 줍니다. <그림2>는 부채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할 때의 위험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여줍니다. 첫째, 자산가격 하락 시 차주의 지분이 줄어 부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둘째, 부채 상환 부담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 소득 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한국은 11분기 연속 소비 감소를 기록하며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분형 모기지에 대한 유감
대선 이후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분형 모기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부가 실수요자의 부담을 줄이고자 주택 지분 일부를 보유하는 방식입니다. 반대 측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효과로 유동성이 늘어나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결국 이 논의의 핵심은 ‘욕망과 탐욕의 경계선에서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시장의 현실을 인정하되, 그 안에 거품이 있다면 제어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실수요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섭니다. 문제는 ‘선의’만으로 정책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선의가 거품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공동체 전체에 폐해를 줄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재원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정책보다, 실질적인 공공주택 공급을 통해 주거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요. 서울과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생애소득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을 맞추려는 노력이 과연 순진한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공화국을 선택할 것인가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는 수도권 중심의 도시화가 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주택은 거주의 수단을 넘어 투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젠 부동산이 계층을 나누고, 미래를 저당잡히며, 사회 자원의 흐름을 왜곡하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주거는 인간의 기본 조건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투기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공화국을 원합니까?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지, 개선할 수 있을지에 다음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만들어진 지금의 부동산 구조와 수도권 중심 지형을 바꿔야 합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구역 개편 같은 과감한 조치도 검토해야 할 때입니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