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과 현실의 괴리...건설사 우발채무 숫자의 함정
얼마 전 지인이 기사 하나를 공유해줬다. 기사가 다룬 요점은 이랬다. 국내 부동산PF 규모 230조원 중 금융당국이 추산한 부실률 5~10%는 과소계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 PF익스포저 가운데 58% 수준이 부실위험이라고 지적하며, 당국이 위험에 대한 현실인식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PF위기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담긴 내용이었다.
이면 파악을 위한 일말의 노력
어떤 회사의 재무 숫자를 들여다 볼 때는 경기 호황기와 불황기에 따라 포인트를 다르게 들여다 봐야 한다. 매년 나오는 재무제표지만, 어떻게 해석을 할지의 문제는 내가 결정하는게 아니라 사실상 경기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건설사의 숫자가 더욱 그렇다. 건설사 회계는 회계학을 한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발 빠른 포기를 유도하는 분야 중 하나다. B2B업의 영역인지라 일반인에게 와 닿지도 않고, 진행률에 따라 수익과 원가를 인식하는 방식이 꽤나 낯설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1)총 예정원가를 산정하고, 2)투입된 원가를 예정원가로 나눠 진행률을 산정하고 3)진행률에 따라 매출액과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계상해 건설사의 손익계산서를 만드는 구조다.
원가가 투입되는 과정에 중첩적으로 분양 활동이 진행된다. 대부분의 상품이 선분양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일단 공사를 진행하면 건설사의 매출이 발생(인식)하게 되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실질 분양률과 실적 사이에는 선형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같은 불황으로 미분양 사업장이 속출하는 상황에선 손익계산서를 뜯어보는 것이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부분 부실이 인식되는 시점은 공사 진행 중이 아니라 준공을 기점으로 이뤄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재무제표를 구성하는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지금으로선 각 사의 1)현금흐름표, 2)재무상태표, 3)손익계산서 순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게 맞지만 어디까지나 이 재무제표 또한 공시가 되는데 래깅(lagging, 시간 차이)이 존재하므로 부실 징후를 발견하기에는 적시성이 떨어진다. 차라리 지금은 각 사의 사업장 목록을 가지고 진행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의미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다.
대부분의 건설사 부실 문제는 은행 돈을 갚지 못해 발생하지 않았다. 특정 사업장 하나에서 꼬이기 시작한 것이 연쇄적으로 영업활동에 지장을 주기 시작해 궁극적으로 지급어음을 막지 못하거나 PF대위 변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부딪혀 발생한다. 남광토건은 남양주 별내신도시 아파트 사업장이, 두산은 일산 위브더제니스 사업장이, 태영건설은 성수동 오피스 사업장이 그랬다.
기업 외형이 커질수록 브랜드파워를 앞세워 수주 능력을 높이며 여러 사업장을 동시에 돌릴 여력이 커진다. 한 사업장이 힘들어도 다른 사업장에서 돈이 돌면 그만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건설사들은 잘 나가다가 하나의 사업장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실제 분양대금이 들어오는 시점까지 채무 단기화가 반복된다. 현금 흐름(캐시 플로우)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단기 차입금을 계속 리파이낸싱해서 버티게 된다.
그러는 사이 추가적인 차입 여력은 점점 사라진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중되는 운전자본을 방어하기 위해선 하도급업체에 줄 돈을 늦게 주는 방법도 존재한다. 기존의 결제 조건을 변경하는 것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라 하도급업체에는 6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갈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하는 이자를 부담하면 그만이다.
매입채무 회전기간을 약식 계산해보면 되는데, 그 기간이 60/365일을 초과하는 경우 이미 줄 돈을 늦게 줘서 운전자본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임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매입채무 일정부분을 유동성 확보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니까.
기업에 유동성이란 생존을 위한 핵심적인 개념이다. 2014년 3조가 넘는 피해를 낳은 수출사기 사건인인 모뉴엘 사태처럼 손익계산서상 흑자라도 부도가 날 수도 있다. 쿠팡처럼 손익계산서상 적자가 계속 돼도 버틸 수 있는 배경에는 이 운전자본의 운용능력이 핵심이다. 줄 돈을 되도록 늦게 주고 받을 돈은 빨리 받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금 얘기한 건 "재무제표상" 숫자로 기록되는 이슈에 관한 내용이다. 기업들이 왜 상기의 전략을 구사하는지 이유를 찾다 보면 숫자상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게 바로 건설사의 우발부채다.
쉽게 말하면 우발부채란 미래의 확정되지 않은 의무이긴 한데, 장부상 기입할 요건이 되지 않아 보통 재무제표의 주석상에 기재한다. (혹자는 우발부채와 부채비율간의 상관관계를 부정하지만, 필자는 우발부채와 부채비율간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드러나지 않는 한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매입채무 일부를 운전자본에 활용하므로 결국 부채비율은 오르기 때문이다.)
지인이 공유해준 기사가 지적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이거였다. 중소형 건설사의 우발부채가 문제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다수가 지적하지 않는 대형 건설사들의 우발부채 규모와 전국 PF 사업장에 대한 집중도가 문제라는 지적 말이다.
어쨌든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고, 또 누군가는 해당 이슈의 이면을 조금이라도 살펴보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상장 메이저건설사의 우발채무 규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ㅣ주요 건설사 신용보강 PF 대출 잔액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상장 건설사 위주로 살펴보자.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손익계산서를 보는 활동이 지금 국면에서 큰 의미가 없기에 손익은 생략하고 올해 1분기 기준, 각 사 분기 연결검토보고서에 기재된 PF 채무보증 규모를 취합 정리했다. 컨소시엄 사업장은 규모가 크지 않아 제외하고, 단독 사업장 기준, 100% 보증 규모 사업장만 취합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자기자본 10조원에 달하는 현대건설이 신용보강한 부동산 PF대출은 1분기 기준 약 9.6조원 수준, 자기자본 대비 PF 우발 채무 비율은 90.6% 수준이다. 이중 정비사업을 제외한 기타사업 브릿지론은 4.6조원 규모로 약 50% 수준을 차지한다. 브릿지론이니 전액 1년 내 만기 도래하는 우발채무다.
GS건설은 3.2조원, 이 중 브릿지론의 규모는 1.8조원으로 비중은 56%다. 자기자본 대비 PF 관련 우발부채 비율은 63.7%이며, 브릿지론의 77%가 1년 내 만기가 돌아온다. 대우건설의 경우, 1.7조원의 PF 우발채무 중 브릿지론 규모는 35% 수준으로, 이 또한 원활한 리파이낸싱 혹은 본PF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DL이앤씨는 상대적으로(?) 양호한데, 1.4조원의 우발 채무 중 브릿지론의 비중은 23% 수준이며 자기자본 대비 총 PF우발채무 비중은 30.7% 수준이다.
이들 대형 건설사 4곳의 PF 우발채무 합산 금액은 16조원 수준이며, 정비사업장을 제외한 사업장(기타사업장)만 놓고 보면 약 9.3조원에 달한다. 메이저 건설사 4곳의 규모를 합산했는데도, 전체 PF 대출잔액 230조원 중 4% 남짓의 금액을 차지한다.
신용보강 PF대출 규모가 가장 큰 현대건설의 세부내용을 집중해서 살펴보자.
현대건설이 신용보강을 한 기타사업장은 12개로 공시돼 있으며, 5.4조원의 PF규모 중 브릿지 사업장 규모는 약 3.3조원 (61%) 규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방 사업장 3개인 인천(힐스테이트 송도 더원), 대전, 천안(힐스테이트 불당 더원)은 본PF 전환을 한 상태이고, 나머지 브릿지론은 전부 서울 사업장에 해당한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장은 그동안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인창개발의 가양동 CJ공장 부지다. 전체 보증 금액은 1.5조원의 규모다. 그 다음으로 규모가 큰 사업장은 케이스퀘어그랜드강서피에프브이가 시행하는 가양동 이마트부지인데, 분기 연결검토보고서에는 오피스텔로 기재되어 있으나, 일조권 문제로 사실상 오피스텔의 계획에서 오피스 개발로 선회를 하게 된 사업장이다.
두 사업장 모두 결국 업무시설로, 서울 가양동에 몰려 있으며, 합산 비중은 42.9%다. 다행인 점은, 얼마 전 CJ 가양동부지가 브릿지론 약 5400억원 리파이낸싱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사업장부터는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데 간략히 살펴보면, 마스턴투자운용과 진행하는 르메르디앙 호텔부지 개발사업, 넥스플랜과 협업하는 힐스테이트 송도 더스카이, 이지스자산운용과 협업하는 남산 힐튼호텔 부지 개발사업(얼마전 브릿지론 만기연장에 성공), 케이스퀘어용산과 함께 진행하는 이태원 크라운호텔 부지 개발사업, 이지스네오밸류자산운용과 전기공사협회 부지를 매입해 진행하는 등촌역 역세권 청년주택 개발사업 등이 있다.
신용보강 사업장 리스트에 유일하게 koasset D&C라고 영문으로 적혀 있는 시행사가 있는데, 인창개발의 최대주주 김영철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2023년말 기준)다. 이 또한 가산동 부지다. 결국 현대건설 기타사업장 전체 5.4조 중 김영철 회장과 관련 된 익스포저는 30.4% 수준으로 계산된다.
이제 주요 건설사들의 책임준공 PF 대출 잔액을 살펴보도록 하자.
ㅣ책임준공 PF 대출잔액 및 공사 건수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가 책임준공을 확약한 PF사업장은 총 410개이며, 그 규모는 약 47조원에 달한다. 그 중 현대건설이 금액기준 46.8%, 건수 기준 40%를 차지한다. 현대건설은 주택사업인 정비사업과 비주택이 다수인 기타사업장의 비율은 11대 89다.
정비사업이야 의미있는 사업장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으나 다른 건설사 대비 비주택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건설 단 한곳만 책임준공 PF익스포저가 22조원의 규모이니 국내 PF 전체 잔액 규모인 230조원의 10% 수준이다. 그 중 20조원이 기타사업 부문인데, 아무리 자기자본 10조원의 대감집이라도 한 수 한 수 신중하게 둬야 하는 국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참고로 지난 1년간 발생한 책임준공 관련 국내 건설사의 채무인수 사례는 약 7500억원 수준으로 파악 되며, 전체 PF규모의 0.3% 수준에 불과하긴 하다. 필자가 약식으로 계산한 금액이니 궁금한 분들은 아래의 경로를 따라 계산해 보면 좋을 듯 하다.
<검색루트> 다트(Dart)→고급검색→보고서명 : 채무인수→본문내용 : 책임준공 미이행→기간 설정 : 최근 1년
나가며
메이저 건설사 4개사만 살펴봐도 전체 PF익스포저의 20% 수준이 책임준공(책준)을 확약한 금액이고, 신용보강 금액은 4% 수준이다. 물론 책준을 했다고 모두를 대위변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남 사업장도 브릿지론 연장이 되지 않아 공매로 나오는 시국인지라 쉽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태영건설을 시작으로 잊을만 하면 나오는 누군가의 부도설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기를 반복하는 국면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자금난에 휩싸였던 신세계건설도 계열인 이마트를 대상으로 65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며 겨우 자금수혈을 했다. 신세계건설은 계열사 지원에 힘입어 연신내 사업장이나 신촌 사업장, 목동, 남양주, 대구 사업장 등의 분양성과 미진, 포항 랜드마크 주상복합 건설사업 미착공 이슈로 인한 유동성 위기설을 벗어났다.
신세계건설 입장에서는 일단 급한 불을 끄긴 했으나, 지원사격을 한 이마트 조차 사실 마음이 편한 상황은 아니다. 창사 이래 첫 적자를 시현했음에도, 정용진 회장의 직진 스탠스에 스타필드 청라와 창원 등의 신규 출점 전략과 화성 국제 테마파크, 서울 동서울터미널 개발사업에 이어 미래인의 르피에드 청담 사업장까지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된 상황이다.
주관적인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불황이 지속될 경우 국내 건설사의 우발채무, 그중에서도 책임준공 관련 채무 인수 이행 사례 등은 눈여겨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