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Project Finance)의 비애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스)가 국내에 본격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IMF외환 위기 이후이다. 1998년 4월 신탁업법 제15조의2 제1항과 동법시행령 제11조는 은행이 불특정금전신탁으로 모은 신탁재산으로 부동산 매입이나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이로써 은행이 부동산 신탁상품을 판매해 자금을 모집하고 이를 부동산개발 시행사에 대출하는, 즉 초기 PF의 길이 열렸다. 2000년대 초반 PF 대출시장이 꿈틀거리자 역시 IMF외환 위기 이후 기업의 흑자부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자산유동화 시장에 PF대출채권을 유동화하는 상품이 나타난다. PF대출을 기초자산으로 ABS를 발행하고 이후 기업어음(ABCP; ABSTB)으로 차환하는 구조가 이때부터 서서히 정착된다.
흔히 PF대출은 특정 프로젝트의 사업성, 그러니까 그 사업에서 발생할 미래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하는 대출이라고 알려져 있다. 해당 사업에 대한 대출이므로 차주의 신용도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이 부실화되더라도 담보를 초과하여 대출액을 소구하지 않는(non-recourse) 선진금융이라고 교과서는 말한다.
그러나 한국형 부동산 PF의 실상은 이와 다르다는 점을 미리 일러두자. 대주들은 대출 실행에 시행사나 시공사의 지급보증은 물론 시공사의 책임준공, 책임분양 등 신용보강을 요구한다. PF대출채권 유동화도 투자적격등급(BBB)이상인 시공사의 보증(유동성보충, 매입약정 등)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국내 부동산PF 외형은 사업 자체에 대한 대출이지만 그 실질은 리스크를 보완하는 다양한 신용보강 장치와 함께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신용보강(credit enhencement)이란 말 그대로 채무당사자의 부족한 신용을 주로 이해관계자가 보완해주는 것인데 본질은 보증(contingent claim)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자가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신용을 공여한 보증인이 최종 책임을 지게 된다. 사업성에 기한 PF대출이 여러 가지 신용보강으로 그 리스크를 헤지하면서 역으로 사업성이 아무리 좋아도 신용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PF를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PF의 첫 번째 위기는 잘 알려진 대로 지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촉발된 부동산침체와 그에 따른 저축은행 사태였다. 당시 금융권 PF대출잔액 약76.5조원 중 저축은행 잔액이 약11.5조원이었다. 위기를 겪으면서 도급순위 100위권 이내 중견 건설사 약 20여 곳이 부도 났고 부실 저축은행 30개를 정리하는 데 약 2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됐다.
2008년 위기로 부동산 경기침체가 2014년까지 이어지는 동안 PF 시장은 잠잠했다. 이후 부동산 경기가 풀리면서 민간개발시장은 새로운 플레이어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증권회사다.
증권사는 저축은행 사태 이후 PF시장에 참여해 사업(자금)구조 설계, PF채권유동화(보증), 미분양담보대출 등 PF사업 진행에 필요한 다양한 사안을 조율하는 본격적인 플레이어로 활약하게 된다. 이들의 참여로 우리나라 PF개발은 본연의 취지를 완전히 탈색하고 돈 있는 자들의 쩐의 전쟁으로 변질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우리나라 PF대출잔액이 약122조원이고 이중 PF유동화 증권발행잔액이 약 40조원 정도였다. 이중 증권사의 PF유동화 보증잔액이 약 25조원이다. 지난 2008년 위기 때 저축은행에 집중된 PF 익스포져가 이번에는 증권사로 옮겨온 모양새다.
사실 특정 금융업권에 PF익스포져가 집중되는 것에 대해 그간의 점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미 저축은행 파산 홍역을 치러본 금융당국은 그간 수시로 PF상황을 점검했고 지난 2019년에는 PF 집중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PF우발채무에 대해 대손충당금 설정 강화, PF 보증채무에 대한 순자본비율 계산방식 변경 등 대응 조치를 강구해 왔었다.
그런데도 올 들어 금리, 물가상승에 따른 경기침체가 가시화되자 PF는 여지없이 그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레고랜드 사업’과같이 일부 비상식적 결정으로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위기가 가중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건설부동산 시장이 민간 중심의 금융, 사업성, 수익성을 중심으로 변한 지 20여 년이다. 경제위기 때마다 PF로 인한 특정 금융업권의 부실과 타 금융시스템의 전이 등을 우려해야 한다면 이제는 근본적인 해답을 고민할 때이다.
그 해답의 첫 번째 열쇠는 PF 리스크의 분산과 통제에 있다. 현행구조 하에서 이해관계자를 중심으로 신용보강 장치를 완벽하게 갖출 수도 없거니와 갖추더라도 리스크 집중과 시스템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
그런데 크게 보면 저축은행에서 증권사로 이어지는 특정업권의 집중은 자금동원력을 바탕으로 리스크 또는 그 반대로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비롯됐음을 인식해야 한다.
즉 단위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춘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투자되는 관행을 유지한다면 경기침체 때마다 나타나는 PF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민간 중심의 건설부동산 산업이 불가피하다면 그 자금조달을 소액 분절해 다수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에 따라 불경기에 손실이 발생한다면 그 손실도 분산하여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정보채널을 공개적으로 운용하고 국민들이 주식에 투자하듯이 우량한 개발사업에 직접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원 배분의 효과도 발휘될 것이다. 대장동 사건에 분노한 것이 1년 전이다. 개발사업의 수익을 소수의 쩐주가 독식하다 위기 때는 공적자금으로 막아주는 구조가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에게 정보를 개방하고 건전한 투자 여건을 통해 이뤄나갈 때 토지를 근간으로 하는 건설·부동산 산업의 내일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부동산 펀드나 리츠 등 리스크 분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보다 정밀하게 손 볼 필요가 있다. 또 호경기에 `쩐의 전쟁'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어김없이 유동성지원 등 정부대책을 요구하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