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루머에 채권시장 혼란 지속...금융위,은행 LCR규제 유예
중소형 증권사와 건설사들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루머가 나돌면서 채권시장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단기 자금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하고 있다며 은행 통합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비율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금리는 전일에 이어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이날 12시 30분 기준 서울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은 4.344%로 전일 대비 1.3bp 상승했다. 5년물은 4.428%로 1.2bp 뛰었다.
전날 국고채 3년물 기준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8.9bp(1bp=0.01%p) 오른 연 4.331%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금리는 연 4.396%로 11.9bp 상승해 연고점을 기록했다. 이는 2011년 5월 11일(연 4.41%) 이후 최고 수준이다.
5년물과 2년물은 각각 11.3bp와 9.0bp 상승한 연 4.406%, 연 4.316%에 마감했다. 20년물은 11.7bp 오른 연 4.257%로 2011년 8월 2일(연 4.26%)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연고점을 새로 썼다. 30년물과 50년물은 각각 8.8bp와 9.6bp 상승으로 연 4.143%, 연 4.100%를 기록했다. 각각 첫 발행일인 2012년 9월 11일, 2016년 10월 11 일 이후 가장 높다.
이처럼 국고채 금리가 최고치 수준으로 치솟는 이유는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에 더해 강원도 레고랜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 등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자금 불안이 채권 시장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 심리는 급격히 위축되는 분위기다.
중소형 증권사와 건설사의 부도 가능성에 대한 루머에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루머에는 L캐피탈이 연 15%대 고금리로 기업어음(CP) 발행에 나섰지만, 실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열 건설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L캐피탈마저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었다는 내용의 지라시다.
이로 인해 증권사와 건설사가 줄줄이 자금난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포함됐다. 회사채 인수 실적 상위 대형 증권사들은 수천억원대 여전채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형 증권사들은 평균 2000억원어치 이상 여전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카드사 및 캐피탈사들이 발행한 여전채의 신용위기가 커질 경우 대형 증권사들마저 재무 안전성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L캐피탈은 연 5~6%대로도 순조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유동성도 충분하다는 점과 지난 6월말 기준 현금성자산과 예치금이 총 1조6822억원에 달한다는 점 등 안정적 자금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시장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사태가 갓 터진 지난 2020년 3월 증권사들의 ELS 마진콜 위기와 이로 인한 CP 시장의 패닉을 연상시킨다는 시각도 나온다. 세계 증시 하락으로 인한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이 발생하면서 CP 시장을 흔들며 일부 증권사들의 부도설이 나돌았던 2020년 초와 차이는 지금은 부동산 금융이 채권 시장 뇌관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다만, 증권사 채권발행시장(DCM) 관계자들은 중소형 증권사 및 건설사의 부도 위기설은 단순 지라시며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루머가 시장을 흔들만큼 투자 심리가 위축돼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특히 신용등급 A등급 이상의 우량채마저 참여 미달이 속출하면서 자금경색 우려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우량채마저 고전하는 가운데, 삼척블루파워, SK렌터카, 콘텐트리중앙 등이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가 수요를 채우지 못하는 사례도 연이어 속출했다.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공모회사채 수요예측 실시 현황'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공모 무보증사채 수요예측은 총 65건(5조5000억 원)이 진행돼 지난해 3분기 대비 49건(43%), 3조5000억 원(3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률은 196%로 전년 동기(348%)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신용등급별로 보면 AA등급 이상 우량채는 4조2000억 원 예측에 9조7000억 원(233%) 참여해 견조한 수준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러나 A등급은 예측 규모가 1조1000억 원에 불과해 전년 동기(2조9000억 원) 대비 절반 미만으로 감소했고, 경쟁률도 364%에서 61%로 6분의 1가량 감소했다.
더구나 올해 3분기에는 A등급 회사채의 미매각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올해 3분기에는 16건 9500억 원의 미매각이 발생해 미매각률 14%로 전년 동기 대비 13%p 상승했다. A등급에서 8건, 총 6500억 원의 미매각이 발생해 58%의 높은 미매각률을 기록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던져줬다.
금융위, 자금 점검···'LCR 규제' 6개월유예
최근 단기자금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것과 관련, 금융위원회는 은행 통합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유예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날 신진창 금융산업국장 주재로 금융감독원 및 5개 주요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재무담당 임원과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이같이 결정했다. 회의는 은행권 자금조달·운용 현황 및 단기자금시장 등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LCR는 위기상황에서 은행들이 한 달간 버틸 수 있는 자산비율을 뜻한다. 금융위기 등이 왔을 때 일시적으로 뭉칫돈이 빠져가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규제다. 비율이 높을수록 은행이 자금상황 악화에 대비해 고유동성 자산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금융위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은행 통합LCR을 기존 100%에서 85%로 인하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후 정상화 계획에 따라 오는 12월 말까지 해당 비율을 92.5%까지 올리도록 했으나, 이를 6개월 유예해 내년 6월 말까지 92.5%를 유지하도록 했다.
아울러 금융위는 은행권이 회사채·기업어음(CP)시장 등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필요한 조치를 적기에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자금시장 경색 루머 강력 대응···합동 단속반 운영"
근거 없는 루머가 유포·확산하자, 금융감독원이 이에 대한 강력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은 한국거래소 등과 함께 '합동 루머 단속반'을 운영, 악성 루머 유포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감시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사실로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투자자의 피해 및 자본시장의 신뢰도 저하가 염려되는 상황"이라며 "더 이상의 확산을 막고자 강력 대응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중점적으로 들여다 볼 루머는 특정 기업에 대해 근거 없이 신용 및 유동성 관련 위기설, 루머 등을 유포하거나, 회사채, 유동화 증권(ABCP) 채권 시장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루머 등을 생성·유포하는 행위다.
금감원은 위기감에 편승해 사익 추구를 위한 목적으로 루머 등을 고의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다. 또, 악성루머를 이용한 시장교란 행위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적발 시 신속히 수사기관에 이첩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