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고속도로’, 재생에너지 대동맥이 될 수 있을까

에너지고속도로의 개념: 단순한 송전망을 넘어서
에너지고속도로는 단순한 송전선로를 넘어 고장 회피, 계통 안정화, 에너지저장장치(ESS), AI 기반 스마트그리드, RE100 산업단지와의 직접 연결 등을 아우르는 차세대 전력 인프라 개념입니다. 민주연구원이 발간한 『에너지고속도로 10문 10답』 보고서는 이를 국가 전략 인프라로 규정하며, 송전망의 ‘고속도로화’를 통해 전력 흐름을 최적화하고 산업과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핵심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구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재생에너지의 특성과 한반도의 지리적 현실 때문입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남서부(전남, 신안, 해남, 서남해 해상풍력 등)와 대규모 수요처가 밀집한 수도권·동남권(반도체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제조업 중심지)이 공간적으로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송전 인프라는 이 둘을 효율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어, 남서부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해법으로 ‘U자형 해상 HVDC(초고압직류송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해-남해-동해를 따라 전력을 효율적으로 이동시키고, 중간중간 산업단지 및 지역 계통에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수요지로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구상입니다.

풀어야 할 숙제들: 인프라, 제도, 수용성
에너지고속도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속도, 비용, 신뢰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인프라 구축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주요 송전망 건설은 평균 6~10년 이상 지연되고 있으며, 동해-신가평 HVDC망, 당진-송산 송전선 등은 이미 계획보다 수년 이상 뒤처져 있습니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예타 면제, 계통허가 원스톱 절차, 민관 공동 개발 모델 도입 등 강력한 행정 지원이 필요합니다. 해저 HVDC는 육상망보다 주민 수용성 부담이 적고, 공사 기간 단축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해법으로 기대됩니다.
둘째, 제도 개선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계통 혼잡 지역에 대한 투자 인센티브, 지역별 전기요금제, RE100 산업단지에 대한 세제·PPA·입지 우대 등 제도적 기반 정비가 요구됩니다. 특히 에너지의 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는 송전망에는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수용성과 이익 공유가 관건입니다. 과거에는 발전시설 중심의 지역 주민 지원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송전망 경과 지역 주민들에게도 공정한 이익을 제공해야 합니다. 일부 지자체는 이미 조례를 바꾸고 지원 요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발전소뿐만 아니라 송전망과 배전망까지 포함한 전력 인프라 전반에 이익 공유 원칙이 적용돼야 할 시점입니다.
왜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필요한가
에너지고속도로와 같은 대규모 계통망이 구축되면 전력은 생산지에서 수요지로 흐르지만, 비용과 이익의 배분은 아직 공정하지 못한 구조입니다. 지금의 단일 전기요금제는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대도시나 산업단지, 그리고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 모두에게 동일한 요금을 적용합니다. 이 구조는 환경 부담이나 토지 이용 등 지역의 희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지역별 전기요금제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전력 소비가 많은 지역에는 비용 신호를 강화하고, 전력 생산 지역에는 일정 수준의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전력 소비 효율화와 지역 간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습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시행 중이며, 송전 인프라가 확대될수록 전력 흐름과 비용 책임 재조정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수익 공유 모델: 수용성과 지역회복의 연결고리
송전망과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정한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가 전남 신안군입니다. 신안군은 전국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과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이 실질적으로 수익을 공유할 수 있는 ‘햇빛연금’과 ‘햇빛아동수당’을 도입했습니다.
이 모델은 주민이 발전사업에 간접 투자하거나 마을 단위로 수익 일부를 배당받는 구조입니다. 주민 1인당 연간 수백만 원 규모의 수익이 배분되며, 일부는 마을 기금으로 복지와 기반시설 확충에 재투자되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단순한 보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 생태계 구축 모델로,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신안군은 2023년 기준 전국 유일의 인구 순유입 지자체로 기록되었고, 지역 활력 회복의 상징적 사례로 부각됐습니다. 전라남도는 이를 바탕으로 ‘에너지연금제’ 도입을 공식화하였으며, 발전 수익의 일부를 주민과 공유하고 복지·청년 정착·교육 등에 활용하는 제도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마무리
에너지고속도로는 재생에너지 수용 능력을 높이고, 출력제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입니다. 단기적 계통 대응책인 BESS(에너지저장장치)와 함께, 장기적 송전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하며, 민간 투자 유도와 제도 정비도 필수적입니다.
특히 지역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전기요금제와 주민 수익 공유 제도의 병행 추진이 요구됩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단순한 전력 인프라를 넘어서, 산업과 지역의 미래를 연결하는 전략적 국가사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