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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계포의 시대

낭만디벨로퍼 김영철
낭만디벨로퍼 김영철
- 17분 걸림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업계는 다른 업계에서 잘 쓰지 않는 은어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은어들을 잘 알아 듣지 못해 곤욕을 치렀습니다. "멕이다", "꺾다", "감다"는 일종의 3종 세트 같은 용어입니다.

"먹이다"의 방언인 "멕이다"는 (다소 순화해서 말하자면) 좋지 않은 것임을 알면서도 권하다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해당 필지를 특정 가격에 매입해서는 사업성이 없거나 의도한 인허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마치 특정 인허가를 받아 탁월한 수익성을 거두는 시행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속여 땅을 파는 경우, 그 땅을 그에게 "멕인" 것이 됩니다.

"꺾다"는 어떤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한 물건에 대해 처음에는 투자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마음을 돌려내게 되면 그 사람을 "꺾은" 것이 됩니다.

물론,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이 프로로서 책임감과 확신을 가지고 설득을 해 낸 것이라면 꺾은 것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므로, "꺾다"라는 말에는 "해당 물건이 실제로는 말 만큼 뛰어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감언이설로 회유한다는 부정적인 맥락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다"는 누군가를 꾀어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꺾다"가 특정 사안에 대한 어떤 사람의 관점을 바꾸어 내는 것이라면, "감는" 것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어떤 사람이 전반적으로 나의 의견에 동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감에서 아실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 그 사람을 만드는 것과 달리, "멕이거나" "꺾어서" 본인의 이익을 얻기 위한 구린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을 꾈 때 "감는다"고 표현하기 때문에 역시나 앞선 두 은어와 유사한 맥락을 가진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례 없이 길게 이어진 10여년에 걸친 호황 동안, 우리 업계에선 '감은 후, 꺾어서 멕이는 행위'가 도처에서 횡행했습니다.

하지만 공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멕이는 사람도 멕임 당하는 사람도, 그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자각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해당 투자가 나중에 큰 화근거리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우상향으로 날아갔기 때문입니다.

워런 버핏이 갈파한 바와 같이 강세장은 마치 섹스와 같아, 끝나기 직전이 제일 짜릿하게 마련입니다. 호황의 끝자락은 "불장"이라 불리며 미친 듯이 가격이 뛰었습니다.

땅, 집, 상업용 부동산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양 현장이든 문을 여는 순간 완판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초우량 주거에만 국한 되었던 "초치기"가 수익형 부동산에까지도 확장되었고, 수분양자들은 서로 분양 받을 물건을 구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어 신규 분양 물건은 품귀 현상마저 빚을 정도였습니다. 분양 받은 즉시 "피(프리미엄)"가 붙어 곧바로 되팔아도 이익을 보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개별 수분양자를 향한 대출 시장도 문을 활짝 열어 젖혔습니다. DSR, DTI 등의 규제로 인해 분양가/감정가 대비 대출 한도에 상한이 있었던 주거 상품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주거 상품으로 진입하지 못한 돈들이 소위 "풍선 효과"로 인해 그러한 규제가 없거나 덜한 상품 - 즉 수익형 부동산으로 몰리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일례로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호황의 정점 때는 분양가를 넘어서는 금액까지도 대출이 가능했던 시기도 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지식산업센터는 계속해서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되어 왔다.
심지어 착공 때 분양 받은 물건은 준공 때가 되면 몇 배까지도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준공 시점 때 잔금 대출을 실행할 때, a) 분양가보다 높은 감정가를 모수로 하여 LTV를 적용하면, b) 분양가 대비 90~100%의 대출을 내 주는 것도 결코 무리한 대출은 아니다.

그리하여 분양가의 100%를 잔금 대출로 받으면, 중도금을 상환한 후 잔금을 치르고도, 심지어 취등록세와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하고도 오히려 돈이 남기도 하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남의 돈으로 공짜로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꼭 이 지점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익형 부동산, 특히 지식산업센터는 잔금 대출이 분양가의 80~90%는 어렵지 않게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불황은 도적처럼 찾아 왔습니다. 미분양 담보대출 문의 창구는 불야성을 이루게 되었고,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은 수많은 PF들이 상환되지 못하고 채무불이행 상황으로 흘러 갔습니다. 이에 따라 이미 분양을 받은 수분양자들에게도 고통이 전가됐습니다.

호황 때와는 정반대의 논리가 전개 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가격"은 거품이었고, 실제 가치는 가격보다 훨씬 낮다고 봐야 한다.
당분간 -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는 당분간 - 감정가는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에 따라 분양가 대비 잔금 대출의 LTV 또한 보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전까지 적용되던 분양가 대비 80% 이상의 잔금 대출 실행은 난망하다.

2년여에 걸친 이번 불황 동안, 가장 큰 고통을 겪은 분들은 바로 호황의 끝자락에 수익형 부동산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 이전에 분양을 받은 분들은 이미 호황기에 걸맞는 잔금 대출을 받고 임차인을 구해 놓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고, 때를 기다리가 호황이 끝나버린 분들은 투자를 안 했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겠지요.

반면 호황의 끝 무렵 분양을 받고, 불황의 한 가운데에서 준공과 잔금 지급 시기를 맞은 분들의 경우, a) 낮은 잔금 대출 비율, b) 고금리로 인한 높은 이자 비용, c) 임차 시장 경색의 삼중고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잔금 대출 비율이 낮아지니, 분양 받을 당시 계산했던 것보다 목돈이 더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잔금 대출을 받고 등기를 치게 되면 이후 납입해야 하는 이자 비용은 막대하며, 임차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없던 걸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으나,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계약금만 지불한 상태라면 계약금 몰취와 배액배상을 전제로 쌍방 중 일방의 의사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지만, 중도금이 지불된 상태라면 완전한 계약이 성립된 상황이라,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계약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진짜 고통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여기까지 몰린 수분양자는 선택의 폭이 많지 않습니다. a) 목돈을 구해, 모자라나마 잔금 대출을 받아 등기를 치고, 공실의 고통을 감수하며 이자 비용을 지불하면서 버텨 나가거나 b) 누군가 내 물건을 가져갈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b)도 생각만큼 만만치 않습니다. "시장"은 이미 수직낙하한 가격에 적응한 상태이고, 가격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가격을 얼마로 부르든 지금의 상황에서 공실이 있는 수익형 부동산을 매수해 갈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프리미엄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요, 원가, 즉 분양가로 매각하는 것도 난망합니다. 그래서 할인 매도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일차로 수분양자가 기 지불한 계약금만큼을 차감해서 넘기는 "계약금 포기" 매도를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계약금 포기 정도로는 물건을 받아갈 사람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얼마 전부터 "더블 계포"라는 말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업계에 또 다른 은어가 그새 생겼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더블 계포"가 '더블 계약금 포기'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는 몇 가지를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존 수분양자는 이미 지불한 계약금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요, 계약금만큼에 해당하는 금원을 매수자에게 지불합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물건이고, 계약금을 10% 지불했었다면, 이미 지불한 1천만원은 포기하고, 추가로 1천만원 만큼을 매수자에게 지불하면서 매수자가 전매로 해당 물건을 받아 등기를 치르도록 합니다.

만약 해당 물건의 잔금 대출이 분양가의 80%까지 가능하다고 한다면, 매수자는 취등록세만 부담하는 정도로 해당 물건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 더블 계포의 개념을 들었을 때는 "이 무슨 해괴망측한 관행인가" 싶었고, 극도로 위축된 수분양자의 심리를 악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균형을 찾아 가게 마련이고, "거래"는 항상 상대방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거래의 본질은 서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분명 기존 수분양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거래가 성립하는 것이고, 그 거래가 시장에 관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매도자가 이 거래를 통해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면, 더블 계포로 매수하고자 하는 매수자가 있다 한들 거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도자, 즉 기존 수분양자의 입장에서는, 단 한 번의 고통 - 즉 계약금 만큼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뚜렷한 장점이 존재합니다.

보다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a) 잔금을 치를 때 어차피 계약금 만큼의 돈을 마련해야 하고, b) 잔금 대출을 떠 안아야 하며, c) 이후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는 공실 기간 동안 잔금 대출에 따른 이자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고, d) 임차가 구해지더라도 이자 비용보다 임대료 수익이 낮아 현금흐름이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등의 불확실성에서 해방되어, 손실을 확정하고 고통을 마무리할 수 있는 특장점이 있는 것입니다.

단점이라면, 손실이 확정되고, 회복될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미 들어간 돈에 더해 그만큼의 돈이 더 들어가고, 그 돈은 영영 잃어버린 돈이 된다는 것은, 투자자가 서민이나 중산층일 경우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부동산을 넘겨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수자도 그것을 거저 얻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많은 불확실성 - a) 잔금을 치른 후 잔금 대출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며, b) 공실 기간을 수인해야 하고, c) 이자 비용보다 낮은 임대료로 임차가 맞추어질 가능성 또한 감수해야만 합니다.

역시 거저 얻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용을 덜 들여 부동산을 취득한다는 장점을 높이 사고, 불황의 기간 동안 이자 비용을 지불할 "체력"에 자신이 있는 투자자라면 해 봄 직한 거래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 "트리플 계포"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네, 이미 투입한 계약금의 두 배를 매수자에게 추가로 지불하면서 매도하는 것입니다.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이 또한 거래 쌍방 간의 의사의 합치와 이해 관계의 일치에 따라 거래 성사 여부가 결론이 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정말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사족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기는 합니다.

첫째, 가격과 가치를 비교해서 판단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호황의 끝에 형성된 "거품"의 문제는, 가격이 명확하게 가치를 훌쩍 초월해, 가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었다는 그 자체일 것입니다. 불황이 닥치면 거품이 꺼지고, 가격이 폭락합니다. 그렇지만 "가치"는 거의 변동이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가격이 가치를 상회한다고 생각하면 손실을 인식하더라도 과감히 물건을 매각하고 고통을 끝내는 것도 현명한 결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도 현재의 가격보다 부동산에 내재한 가치가 높은 것이 명확하다고 한다면, 시장 가격은 결국은 가치에 수렴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나쁜 결정은 아닐 것입니다.

둘째, 투자한 부동산의 "가치"를 이루는 요소에 주목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처음 어떠한 부동산에 투자를 결심했을 때, 해당 부동산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만을 감안해 투자를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즉 풍부한 임차인 수요, 우량한 입지, 안정화 되었을 때의 금리 및 그에 따른 이자 수준, 취등록세 감면 등 부수적 장점 등 모든 것을 고려해 투자를 최종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기본적인 가치 요소들 - 소위 "펀더멘털(fundamental)"이 불황에 의해서 변동된 것인지, 그래서 가치 자체가 감소한 것인지를 잘 판단해 보신다면 역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호황 때의 디벨로퍼나 분양 영업 사원들이 누군가를 '멕이고, 꺽고, 감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경우는 많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디벨로퍼나 업계에 몸담고 있는 동료들은 정직하고 전문적으로 본인의 업에 임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본인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물건을, 본인 일신의 영달을 위해 고객을 감고 꺾어서, 결국 멕이는 분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호황 때의 낙관과 그에 따른 거품, 이어지는 불황에 따른 추락이 무섭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저 또한 이번 불황의 고통을 잘 새겨 두었다가, 다음 호황과 불황 때에는 보다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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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디벨로퍼 김영철

포어모스트자산운용 대표이사. 낭만 디벨로퍼이자 다정한 금융가, 명랑한 스타트업 경영자로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블로그 게시 내용 중 부동산 개발 관련 글을 모아 딜북뉴스 독자분들과 공유합니다. 메신저 서비스인 슬랙(Slack)을 기반으로 부동산 커뮤니티 '레인(Rei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eric.youngcheol.kim@gmail.com 커뮤니타: https://join.slack.com/t/reinetwork-hq/shared_invite/zt-285z4g8px-ks6NYuyycyAN14ySN3m0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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