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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 건설산업의 풍경

김갑진
- 9분 걸림 -
건설현장(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산업혁명기 조선의 건설경영

지금으로부터 229년 전인 1796년, 한반도는 정조대왕이 통치하는 왕국이었습니다. 유럽 영국에서는 석탄을 활용한 외연기관이 등장했고, 그 동력으로 방적기와 제적기를 돌려 면직물을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 한반도의 조선은 근세 최초의 계획도시라 할 수 있는 수원 화성(華城)을 건설하였습니다.

1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동력 기술에 비해 당시 조선의 건축술은 보잘것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화성은 조선 건국 이래 14세기 한양성 축조술을 18세기 기술로 최신화하여 화려하게 부활시킨, 동아시아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화성의 우수성은 건축물 용도에 충실한 설계, 재원과 재료 조달의 투명성, 그리고 동아시아 성곽축조술의 진화 양상을 고루 반영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대문(동문: 창룡문, 남문: 팔달문, 북문: 장안문(정문), 서문: 화서문)을 잇는 5.7km 성곽에는 각 방향별로 노대(弩臺: 화살 쏘는 곳), 치(雉: 적 정탐을 위해 돌출된 성곽), 포루(砲樓: 포를 쏘는 전각), 공심돈(空心墩: 망루와 휴게소) 등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성곽 방어와 공격의 효율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4대문에 조선조 성곽 중 유일하게 옹성(甕城)을 쌓아 전체 성곽의 견고함을 더했습니다.

화성 축조는 다산 정약용이 설계와 시행(총감독)을 맡아 거중기, 녹로(현대의 크레인에 해당) 등 최신 건설 장비를 동원한 32개월간의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설계서와 시행서를 결합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르면, 87만 냥의 재원, 화강암·적송 등 주요 재료 조달 내역, 목수·석수 등의 작업량과 인건비 지급 내역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세기 말 조선의 건설경영은 이렇게 치밀하게 이루어졌고, 오늘날에도 이 의궤를 토대로 한 원형 복원만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선조들은 건설기술뿐 아니라 그 수행 방식까지 문명국의 위용에 걸맞은 모범을 남겼습니다.

현대의 건설경영

이제 자본주의 80년을 지나온 오늘날의 건설산업을 돌아보겠습니다. 건설회사가 10만 개에 육박하고, 한 해 건설투자가 300조 원에 이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건설산업이 침체하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집니다. 건설과 관련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매년 발간되는 건설경영 통계를 보면 시기별 차이는 있으나, 종합건설사의 경우 약 25%가 적자를 보고, 5억 원 미만의 이익을 내는 업체가 전체 건설사의 약 85%를 차지합니다. 이는 대부분 중소건설사에 해당합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보니 창업 후 3년 내 폐업하는 회사가 열 곳 중 여섯 곳을 넘습니다.

평균 업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왜 건설업을 계속하는 것일까요? 혹시 진입장벽이 낮고, 동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는 완전경쟁 시장을 건설업에서 구현하려는 것일까요? 정부가 진입장벽을 낮춰온 과정을 보면, 가성비(Value for money) 경쟁을 강화하자는 정책 취지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건설업은 전통적으로 지역산업(local industry)이며, 한국의 경우 산업 성장기에 원·하도급, 공동도급 등 네트워크 산업의 특성이 유달리 강화되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지역성과 관계성’이라는 산업 특성을 고려할 때, 경쟁만으로 비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업황이 저조한데도 지속적으로 건설사가 퇴출·진입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관계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확실한 입·낙찰을 통과해 수주한 이후, 하도급을 중심에 둔 산업생산 구조에서 ‘관계성’은 경영 성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관계성은 거래선과의 관계적 계약(relational contract; Williamson, 1985)을 통해 일감(수익)과 비용 모두에 관여합니다. 다소 불편한 사실일 수 있으나, 건설산업의 기술·인력·품질 문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나 해당할 뿐, 대부분의 중소기업에는 당면한 문제가 아닙니다.

건설근로자의 약 15%(22만 5천 명)가 외국인이고, 한국인 기능 인력의 고령화가 진행되는 현실은 기술 전수 없이도 수십 년째 인력과 품질에 큰 변화 없이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대재해와 부조리

건설산업은 때때로 대대적인 이미지 혁신을 시도해 왔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비자금 조달 창구, 산업재해로 인한 단일 산업 최다 사망 통계 등은 오래전부터 건설산업에 드리워진 낙인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다시 회자됩니다. 산재사고가 잦아지면서 중대재해법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과 매출액의 3% 과징금 부과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업주들은 이에 불만이 많습니다. 한 사장은 “아파트 담보대출로 회사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있는데, 사망사고 손배로 15억 원을 요구받으면 그 즉시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죽음을 부르는 노동 현실을 개선해야 함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만 순이익 5억 원 미만의 업체가 85%에 달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당위만 강조하는 접근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기업 규모나 현장 규모에 따른 차등 적용을 열린 자세로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의 건설산업이 가야 할 길은?

건설산업의 미래 방향을 이 인터넷 지면에서 몇 단락으로 논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이 공간의 진화를 이끌어왔듯이, AI 시대 우리는 또다시 18세기 화성 신도시와 같은 혁신 공간을 창조하며 진화할 것입니다.

미래 세대의 삶터를 장기적 안목에서 설계해야 한다면, 한국 건설산업에 필요한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지역과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규제와 지원으로 중소건설사의 생존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공급 과잉에 따른 구조조정 여지가 있더라도 산업 생태계는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재건축 위주의 순환에서 벗어나 장수명 주택과 리모델링 산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아야 합니다. 인구와 자산가격 등 미래 주거 수요를 결정하는 요인이 급변하고, 이미 소멸지역의 공동화와 빈집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아파트는 예외라는 인식은 안일합니다. 공동주택의 안정적 관리로 장수명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습니다.

셋째, AI·스마트건설·모듈러 등 혁신 기술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확산시켜 생산성과 안전의 새로운 표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종을 울릴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자체가 사고 발생과 직접 연계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고는 현장에서 발생하며, 따라서 사고를 줄이는 방법 역시 현장에 있습니다.

넷째,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를 줄이는 균형개발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합니다. 그간 ‘불균형 성장’의 효능을 계속 연장하려는 것은 아닌지, 국토의 효율적 활용이 경쟁 완화와 인간성 회복의 길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3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거중기와 화성성역의궤로 시대를 뛰어넘는 성곽을 완성했듯이, 오늘의 우리는 기술과 제도, 그리고 공공성을 결합하여 지속가능한 건설의 풍경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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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진

보증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경제의 어제와 오늘(우리가 사는 집과 도시)' 저자입니다. 아주대 겸임 교수를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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