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하이엔드주거 PF조달 '기대반 우려반'
대개 경기가 불황일 때는 소비자들은 저렴한 분양 주택이나 임대 주택을 선호한다. 주머니가 가벼워진데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비해 큰 돈 지출을 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울 용산과 강남 일대에서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분양할 하이엔드 주거시설 개발사업이 본PF 전환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는 시행업계의 분양 전략과 주택 소비자의 변화가 어느 정도 맞물렸기 때문이다. 하이엔드의 타깃인 초고액 자산가의 경우 경기 영향을 덜받는데다 주거 환경에 대한 눈높이가 여전히 높다. 하이엔드 개발 디벨로퍼들은 값비싼 지역의 부지를 확보하고 인플레와 고금리를 겪으면서 럭셔리 주택을 팔아야 이익을 낼 수 있는 환경에 처했다.
당장 9월부터 본PF 조달을 준비하는 사업이 한두개가 아니다. 서울 반포동 쉐라톤강남 호텔 부지에 지어지는 초호화 주택 '더팰리스73'이 브릿지론 단계에서 본PF 전환에 시동을 건다. 앞서 시행사 더랜드는 국내 최상급 부유층(VVIP)을 상대로 사전 태핑을 진행한 결과 청약 수요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채당 100억원대 이상의 초고가 주택이어서 시행사 측은 사업 안정성을 위해 사전 청약을 거치고 본PF 대출조달에 들어가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도 본PF 금융 조달을 위해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 4개 증권사를 공동 주선사로 선정했다. 헌인마을 개발 시행법인(SPC)인 어퍼하우스헌인과 자회사 헌인타운개발은 오는 9월 22일 6000억원의 브릿지론 만기에 맞춰 2000억원 증액한 8500억원 규모의 본PF로 전환에 나설 방침이다.
시공사인 롯데건설의 책임준공을 포함해 다양한 채권 보전장치를 검토하고 있다. 본PF를 완료하고 11월께 평당 평균 1억 3000만원의 분양가격 선에서 주택 220여가구를 분양할 방침이다.
청담 주상복합 개발사업인 '루시아 청담 514 더 테라스’도 브릿지론 대출만기인 12월 말까지 본PF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작년 말 브릿지론 기한이익이 상실됐다가 지난 6월 기한이익이 부활됐다. 사업 시행사인 루시아홀딩스는 공동주택 29세대 및 오피스텔 28세대를 하이엔드로 구성할 방침인데 본PF로 수월하게 갈아타기 위해 사전 청약률을 높일 계획이다.
이밖에 아스터개발은 서울 논현동과 잠원동 소재 하이엔드 주거시설 분양과 착공을 위해 본 PF로 넘어가는 시점을 검토하고 있다. 논현동 하이엔드 오피스텔 사업인 카엘로 아스턴 논현은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사전 청약 상담을 받고 있다.
이들 사업장을 포함해 청담동과 삼성동, 한남동 등 부촌 일대에서 크고 작은 하이엔드 사업장이 본PF 전환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하이엔드 주거상품은 작년 초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다 작년 하반기 인플레와 고금리로 인한 자금 경색기를 거치면서 주춤했다. 그러다 용산 유엔사부지 개발사업이 본PF 전환에 성공하고 강남일대 고급 주택이 팔려나가자 본PF전환을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용산 유엔사부지 시행사 일레븐건설과 금융주관사 메리츠증권은 지난 6월 1조3000억원 규모의 본PF전환에 성공해 10월 하이엔드 오피스텔 분양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준비중인 하이엔드 개발사업이 모두 본PF 전환 성공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금융기관들은 예상하지 않는다. 슈퍼 부자들이 한정돼 있어 분양 사업성에 대한 심사 잣대가 엄격해진 탓이다. 때문에 본PF 성공 가능성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서울의 고급 주택지에 대한 수요가 두터워 분양 기대감이 수구러들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PF본부장은 "청담이나 압구정동에서 추진하는 재건축사업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 강남에 고급 주거시설을 공급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위치가 좋은 하이엔드 주거시설의 경우 수요가 꽤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잠재 수요자인 신흥 부자들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캐피탈사 PF담당 임원은 "한류 바람을 타고 연예인이 늘고 있는데다 글로벌 명성을 얻는 젊은 유튜버도 많이 나와 하이엔드 주거시설을 구매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시에 공급이 늘어나면서 분양물량 소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직접 개발을 포기하고 매각에 나선 디벨로퍼도 나온다. 마스턴투자운용은 한남동 한남오거리에 붙은 GS칼텍스 한강주유소를 하이엔드 오피스텔로 개발하기 위해 세운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지분을 매각하고 있다. 청담동 호텔을 하이엔드로 개발하는 사업은 증액 브릿지론 리파이낸싱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