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건설을 통해 살펴본 흑자도산 이야기(feat. 모뉴엘의 추억)
지난 2019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 2022년 딱 한 해 미미한 당기 순손실을 낸 것을 제외하고 작년까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자본잠식도 아닙니다. 그런데 돌연 신동아건설이 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합니다. 전형적인 흑자 도산 사례입니다. 어떤 회사를 볼 때 단순히 재무제표상 자기자본과 손익계산서상 당기 순이익만 봐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난 2012년 모뉴엘 사태로 부터 배웠습니다. 모뉴엘은 숫자상으로는 매우 우량한 회사였습니다. 이에 다양한 금융기관으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았죠. 결과는 흑자 부도로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손익계산서 상의 실적은 회사의 현금흐름 실질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현금흐름표를 같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의 99.9%는 '어딜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봐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어요' 입니다. 별 것도 아닌 걸 별 것인양 어렵게 설명해 강의를 파는 사람들 혹은 숨기는 사람들, 변죽 울리는 부류를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속지 않을 수 있는, 초기에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한 회사의 숫자를 시계열로 쭉 늘어놓고, 당기순이익과 영업현금흐름을 빨간 점선으로 박스 처리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당기순이익은 숫자상 어떤 회사가 벌어들인 돈이고 영업현금흐름은 말 그대로 영업활동을 통해 오고간 현금의 결과를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시죠. 위의 표에는 제가 신동아건설의 워크아웃 졸업한 이후인 2019년부터 5개년의 숫자를 끌어 왔는데요. 5년치 당기순이익을 합치면 그래도 수중에 쥐는 영업현금흐름은 좀 있어야겠죠? 현금은 안들어 오는데 나 혼자 돈벌었다고 기장 하면서 행복해 할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5개년치 영업현금흐름의 합도 합리적인 수준에 들어와야 합니다. 합리적인 수준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할 수 없어요. 업종별로 다르니까요.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것 하나는 있습니다. "저렇게나 많이 벌었는데 현금 자체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어떤 업종을 불문하고 쉽게 눈에 띄죠. 이럴 때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는 겁니다. "응? 뭐지?" 하면서 실체 파악을 위해 들여다보면 됩니다.
신동아건설의 5년치 당기순이익의 합을 더해 보겠습니다. 5년동안 손익계산서는 신동아건설이 약 975억을 손에 쥐었다고 하네요. 자, 그렇다면 채권 회수 안된 것도 있을테고 운전자본 투자도 해야하니 5년 동안 현금이 얼마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볼까요?
한 400억원의 현금을 만졌으려나요? 500억원? 아님 200억원? 혼자 마구잡이로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선에서 상상해보며 신동아건설의 5개년치 영업현금흐름의 합을 구해보겠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엑셀로 영역 선택을 하면 우측 하단에 합계값이 자동으로 뜹니다. 함수 걸고 할 것도 없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는 400억원, 500억원 상상했는데요. 5년 동안 975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낸 회사의 5년치 영업현금흐름 합계가 가설과 달리 -2270억원입니다. 5년 동안 수중에 영업활동 통해서 만져 본 현금이 없는 걸 떠나 어디선가 가져와 메워야 하는 돈이 5년 동안 -2270억원이라는 얘기입니다.
이건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하던 일 멈추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이게 뭐지'라고 의구심을 제기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975억의 누적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회사가 2270억원의 부의 현금흐름을 기록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이유는 975억원 정도의 5개년 누적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을 정도면요, 대부분 손익계산서만 보고도 대충 눈치 채거든요. "안.좋.구.나." 문제는 외형상 손익계산서가 너무 정상적이라는 거죠. 심지어 자기자본도 1890억원이나 있는 회사인걸요. 자기자본은 현금이 아닙니다.
흑자부도는 이렇게 생깁니다. 손익계산서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사실상 회사에 현금이 돌지 않아 백기를 들어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이유가 궁금해지죠. 이유는 언론에서 갖가지 종류를 언급해 주는데요. 흑자 부도라는 건 비단 어떤 하나의 이유만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되는 원리죠. 그렇다고 이유를 살펴보는 게 의미가 없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유를 나열하고 흑자부도를 유발했던 가장 비중 큰 "트리거"를 찾는거죠. 제가 트리거를 찾아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의사결정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고 반면교사 지점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신동아건설의 흑자부도 트리거는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2022년의 영업현금흐름을 한번 보시죠. -2100억원의 영업현금흐름을 기록합니다. 이례적입니다. 이런 큰 숫자가 나올 때는 반드시 이벤트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영업현금흐름을 구성하는 전체 계정을 쭉 살펴보면 2022년의 마이너스 현금흐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계정이 딱 하나 있습니다. 무려 -1300억원입니다.
시행사든 시공사든 선급금 증가는 보통 뻔합니다. 용지를 샀습니다. 뭘 샀느냐. 인천도시공사로부터 검단지구 AA32블록을 매입했죠. 이를 계기로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입금 비율과 운전자본 규모가 급증합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벌어서 갚는 방법, 하나는 돌려 막는 방법이죠. 시공사 재무현황 관련 이전 글에서 경험칙상 차입금의존도, 즉 이자발생부채가 40% 수준을 넘어가면 벌어서 차입을 끄는 회사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나머지 하나, 자본주의의 은혜인 신용을 활용해 돌려 막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죠. 개인이든 법인이든 자본주의의 종말은 신용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은행이 나를 못믿고 만기연장 못해주겠다고 하는 그 순간이 종말인거죠. 모든 회사가 차입금의존도 40%를 터치했다고 다같은 속도로 망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살아 있다고 해서 건강하게 사는 게 아니라 돌려막기 혹은 저글링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모니터링이 필요한거구요. 삐끗하다가는 게임 오버가 되니까요.
인천 검단지구 용지를 매입한 다음해인 2023년을 살펴봅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매출채권 회수도 되지 않기 시작하고요(회사의 외형을 상징하는 매출액 대비 채권규모), 재고자산이 매출로 인식되는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시행사, 시공사 입장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땅은 샀는데 인허가가 늦어지니 빠르게 분양할 수 없고, 빠르게 분양할 수 없으니 매출로 안잡히고, 매출로 잡힌게 없으니 매출채권도 안생기고, 현금으로 바꿀 재료가 생기지 않는 거겠죠.
운전자본 투입 절대금액이 커집니다. 이 전에는 200억~300억원 정도의 운전자본을 투자하다가 갑자기 1000억원이 넘어가네요. 회사 입장에서는 운전자본 투입은 정말 필요악입니다.
왜냐하면 돈은 들어가는데 이자를 안줍니다. 무수익자산에 투자하게 되는거죠. 그럼 어디서 돈이 나서 운전자본 투자를 하냐? 어디겠습니까. 빌려서지요. 이것도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이자부채인 "매입채무"의 규모를 키우는 방법과 은행에서 이자 주고 돈을 빌려 이자 안주는 곳에 투입하는 방법이요.
두번째는 역마진 게임을 하는 거죠. 기업 입장에서는요. 그래서 보통 의사결정자는 "매입채무" 규모를 먼저 최대한 키웁니다. 즉, 줄 돈을 최대한 늦게 주는거죠. 신동아건설도 2023년에 들어서 전체 외형대비 매입채무의 비중이 크게 증가합니다. 그렇다고 은행 돈을 안쓴 건 아니고요. 2가지 방법을 동시에 가용한거죠. 일단 직원들이 빚을 진 것도 아닌데 직원들이 각종 거래처로부터 독촉을 받게 됩니다. 온갖 용역사들이 돈달라고 난리를 치게 되죠. 어떻게든 매입처를 잘 무마시시키는 게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됩니다.
어디에서 매출채권을 회수 못했네 하는 식의 주장은 신동아건설의 지금 시점에는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그렇게 치면 인천 검단지구를 매입 안했으면 될 일이거든요. 매출채권 회수가 잘 안되는 게 신동아건설만의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인천 검단지구가 트리거가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 분도 있을텐데요. 검증 방법은 간단합니다.
위에 당기순이익 누계액과 영업현금흐름 누계액을 인천 검단지구 토지를 매입하기 전까지만 합산해 보는겁니다. 3개년치가 되겠네요. 신동아건설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980억원의 누적 당기순이익을 냈습니다. 영업현금흐름 누적은 520억원입니다.
이 정도는 정규분포를 따르는 기업 표본 누구를 데려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제 기준으로 오히려 훌륭한 중소기업에 속합니다. 즉, 인천 토지를 매입하기 전까지 현금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