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바꾸고 시공사 교체...사업 재구조의 시간
시행사 유니온홀딩스는 지난 26일 대구 신천동 오피스(업무시설) 개발사업을 위해 220억원 한도 PF대출을 실행받았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당초 이 사업지는 원 시행사가 숙박시설(동대구역 도요코인호텔)로 짓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던 것을 유니온홀딩스가 지난해 8월 양수한 것이다. 유니온홀딩스는 건축물 용도를 호텔에서 업무시설로 바꿔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대주단으로부터 준공까지의 잔여 사업비 대출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시장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대출만기 연장에 집중했던 부동산 개발업계가 상품 설계를 바꾸거나 시공사를 교체하는 등 재구조화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최근 강남 청담동 고급주로 PF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이는 등 PF시장 우려가 재부각되자 재구조화를 통한 사업성 보강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사업 안전성이 높다고 생각한 서울 강남 PF가 만기연장에 실패하자 시장에서 부동산PF 우려가 재부각되고 있고, 고금리 장기화에 더해 부동산금융의 투심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결국 사업성이 낮은 PF는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로만 이어갈 수 없으며 재구조화를 통한 정상화 노력을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사업 재구조화는 상품이나 시공사 교체 등에 더해 금융구조 조정을 병행해야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업성 나오는 상품으로 변경 활발
주거 분양시장의 침체가 심각하다고 보고 당초 분양해 회수하는 전략을 바꿔 임대주택으로 돌리거나 아예 다른 상품으로 바꾸는 사업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엠디엠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호텔 부지를 당초 소형평형 위주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하이엔드 아파트로 변경하고 연내 분양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강호텔 사업장은 한강 영구조망이 가능해 고급 주거의 분양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자체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할 방침이다
대구 대명동의 한 주상복합 개발사업장은 브릿지론의 만기를 내년 8월로 2차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2023년 1차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모를 노크했다. 7월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8월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고, 현재 HUG의 사전 검토를 받는 등 임대사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주거시설을 오피스나 지식산업센터로 변경하는 것도 최근의 트렌드다. 케이스퀘어그랜드강서PFV는 이마트 가양점부지 개발 상품을 오피스텔에서 지식산업센터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업성이나 인허가 요건 등 여러 제반 사항을 고려해 상품 변경을 추진하는 것이다. 케이스퀘어그랜드강서PFV는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연대보증을 받아 현재 브릿지론 기간에 있다.
D시행사도 서울 역삼동 부지를 인수해 하이엔드급 오피스텔로 개발하려 했으나 지난 5월 건축 허가를 변경해 오피스로 상품을 바꿨다. 강남권 오피스 수요가 높다보니 금융권이 현재 브릿지론의 본PF전환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 앞서 시행사 아스터개발도 상반기 역삼동 3개 필지에 대한 설계를 오피스텔에서 오피스로 변경한 바 있다.
대형 건설사로의 시공 변경도 사업 안정화에 도움
울산 학성동 지역주택조합은 지난 26일 한국투자증권을 대표 주간사로 전일 대주단과 1950억원 한도의 PF대출약정을 체결했다. 이 사업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가 책임준공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대출약정 체결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당초 이 사업지는 중견 건설사와 시공을 추진했으나 대형 건설사인 포스코이앤씨로 변경했다.
서해종합건설은 이달 초 자체사업장인 벌터·마벨지구 B-1블록 공동주택 신축사업과 관련, 대우건설과 2904억원 규모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시공능력평가순위 85위인 서해종합건설이 자체 사업으로 추진하던 군포 벌터마벨지구의 시공사로 대우건설을 유치하면서 대우건설의 연대보증을 받아 지난 24일 3개월 만기 220억원의 PF유동화증권을 조달했다. 대우건설은 비교적 우량한 사업지의 공사 도급을 수주하고, 서해종합건설은 사업비 조달 등의 자금 부담을 덜면서 윈윈했다는 평가다.
금융 재구조화 병행해야 사업성 확보
개발업계가 분양가 인하, 시공사·상품 교체 등을 포함해 사업 재구조화에 공들 들이고 있지만 금융구조 재구조화에는 아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데다 금융권이 원금 이하의 손해를 보기 싫어하고 시행사 역시 사업을 손절하기 꺼려해서다.
금융당국은 캠코의 PF정상화지원펀드와 캐피탈·저축은행 등 금융업권별 PF정상화펀드를 조성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할 금융재구조화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업성을 확보하려면 다른 방안보다 금융원가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하다고 지적한다.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부동산PF 연착륙대책이 대주단 협약을 통한 만기연장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앞으로는 문제사업장의 금융 재구조화가 병행돼야 한다"면서 "다만 이 과정에서 외부로 노출되는 잡음이 커질 수 있는 시기이기에, 금융당국의 세심한 관리 또한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