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가 타이밍? 금융조달 서두르는 이유
캐나다계 브룩필드자산운용은 2조7000억원에 이르는 서울국제금융센터(IFC)의 리파이낸싱금융을 마무리짓고 4월 말 5년 만기 새 대출을 실행받을 예정이다. 기존 담보대출(2조2800어원)의 5년 만기가 오는 11월 19일로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7개월 서둘러 리파이낸싱을 끝내는 것이다.
브룩필드운용은 IFC의 리파이낸싱 클로징에 이어 인천 서구 원창동 물류센터의 리파이낸싱도 상반기 내 완료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11월 준공된 국내 최대 규모의 원창동 물류창고의 경우 브룩필드가 지난해 2월 5670억원의 담보대출을 일으켜 매입을 완료했다.
대출 만기보다 조기에 리파이낸싱하거나 신규 금융조달을 서두르는 사업주가 늘고 있다. 하반기 금융시장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것 보다는 상대적으로 유동성 확보가 용이하고 금리가 하향 안정된 상반기에 금융조달을 조기 매듭짓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다 국내 부동산 관련 대주 풀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금융기관의 대출심사가 강화돼 금융 조달을 시작해서 종결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리는 점도 파이낸싱을 서두르는 이유다.
글로벌 사모펀드 '액티스'는 경기 안양 호계동 데이터센터(40MW, 에포크 안양센터)의 최대 3500억원 규모의 담보대출 모집을 조만간 시작한다. 호계동 데이터센터는 연초 준공됐지만 PF자금을 고정금리로 쓰고 있어 4분기 PF만기까지 여유가 있다. 다만 데이터센터 임대차를 풀로 마친 상황이어서 4분기 PF만기까지 기다리는 것 보다는 조기에 담보대출 전환을 완료하기로 했다.
개발자금이나 실물자금의 모집 규모가 클수록 파이낸싱을 일찍 시작하고 있다. 경기 안산 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80MW급 데이터센터를 개발하는 캄스퀘어안산데이터센터PFV는 자금 모집 규모가 1조원으로 워낙 커 최대 2000억원의 우선주 투자자 모집을 조기에 시작했다.
캄스퀘어데이터센터 사업주와 금융주관사인 유진투자증권은 우선주 투자자를 모집한 데 이어 6월 이후 7000억원 이상의 본PF 조달에 시동을 걸 계획이다. 80M급 초대형 데이터센터여서 총 사업비는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3월 15일 서울 메트로&서울로타워개발사업과 관련, 7170억원의 신규 브릿지론(토자담보대출)을 클로징하자 마자 인근 밀레니엄힐튼호텔 부지(와이디427PFV)의 브릿지론 리파이낸싱 작업에 착수했다. 메트로&서울로타워와 통합 개발할 예정인 힐튼호텔 부지의 브릿지론(1조2930억원) 만기가 5월 말로 다가오면서 현대건설 보증부 후순위 트랜치(2000억원)부터 협의에 들어갔다. 이밖에 용산 이태원동 몬드리안호텔도 2350억원의 담보대출 리파이낸싱을 진행하고 있다.
부동산금융시장에서 상반기 중 자금모집이 부쩍 늘어난 배경으로는 우선, 하반기 금융시장 불확실성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점이 꼽힌다.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유동성 부족으로 금융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4월 총선을 기점으로 PF 위기가 본격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 4월, 5월, 9월 위기설' 등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국민은행을 비롯해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판매한 주요 은행이 모두 자율배상 추진키로 하면서 충당부채(영업 외 손실)를 쌓아야 하는 점도 대주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상황이다.
CBRE가 '2024 한국 투자자의 의향'을 설문 조사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는 자금 조달시 금리 상승 및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주요 어려움으로 지목했다.
금리동결 기조가 장기화됨에 따라 국내 투자자는 금리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 응답자의 과반수(58%)는 금리 불확실성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답하면서 자금조달 환경이 예상과 달리 급변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통상 주요 기관들의 유동성이 하반기보다는 상반기에 좋아 상반기가 자금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고 평가한 것도 파이낸싱을 서두르는 이유다. 올해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기관들이 상반기에 좀 더 여유롭게 자금을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용사 관계자는 "기관의 자금 배정 여유가 있을 때 자금을 선확보하기 위해 운용사와 시행사들이 서둘러 기관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금리가 하향 안정 추세인 점도 사업주들의 리파이낸싱 심리를 북돋우고 있다. 물가 상승률 하향 안정화 흐름에 따라 금리 인하 기대감이 형성되며 시장 금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하는 추세다. 현재 선순위 담보대출 금리는 약 5% 초반 수준에 형성돼 있다.
국내 대주 풀(POOL)이 시중은행 중심으로 한정적인 상황이어서 딜 클로징이 오래 걸리는 점도 금융모집을 서두르는 이유다. 저축은행 중 절반 이상이 지난해 순손실을 내면서 대출 집행 여력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큰손인 새마을금고는 높은 대출연체율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복합건물 '안녕 인사동'을 운영중인 액티스는 지난해 2310억원의 리파이낸싱을 클로징하는데 꼬박 7개월을 소요했다. 이 같은 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상황이 허락할 때 자금을 마련하자'는 심리가 사업주나 건물주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가 가시화되는 하반기가 오히려 자금 조달이 용이해질 것으로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PF위기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실물부동산 시장의 담보대출 금리 하락이 뚜렷하다"면서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시점이 가까워지며 올인(All-in) 기준으로 안정자산의 담보대출금리가 4%대 중반에 안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