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철도사업 '탈출 러시'...GTX·도시철도사업 차질 우려

공사비 상승과 공기 지연으로 인해 건설사들이 민자 철도사업에서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과 서울 서부선 등 주요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민자 철도 시장의 근본적인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GTX-B·C, 서울 서부선까지...건설사 이탈 본격화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GTX-B 사업에서 4.6% 지분을 보유한 건설투자자(CI)로 참여했으나 최근 대우건설에 사업 철수 공문을 전달했다. 이는 DL이앤씨가 GTX-A 구간(파주 운정~서울역) 준공 정산 과정에서 공사비 상승 부담을 떠안은 후, 추가적인 손실을 피하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대우건설은 새로운 시공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GTX-C 노선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건설이 대표 주간사로 이끄는 GTX-C 컨소시엄에서는 한화 건설부문, 동부건설, 쌍용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태영건설, 진흥기업, 신동아건설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사업 참여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탈퇴가 발생하면 현대건설은 잔여 지분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시공 파트너를 물색해야 한다.
서울 서부선 도시철도 사업에서도 사업 탈퇴 현상이 나타났다. 두산건설 컨소시엄의 주요 참여사인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금광기업 등이 지난해 말 사업 철수를 선언하면서, 두산건설이 대체 파트너를 찾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해당 컨소시엄 내 탈퇴를 선언한 시공사들의 지분은 5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례신사선 도시철도 역시 민자사업에서 재정사업으로 전환된 대표 사례다. GS건설이 지난해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 서울시는 재정사업으로 전환을 결정했으나, 절차 재추진과 예산 확보로 인해 착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민자 철도에서 쓴맛을 보면서 줄줄이 사업 철수를 선언하고 있다"면서 "대형 건설사 중 민자 철도 가능한 건설사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등 2곳만 남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미 진행 중인 민자 철도사업도 난항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민자 철도사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주도하는 서울 동북선 도시철도는 2021년 7월 착공했지만, 2023년 말 기준 공정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해 2026년 7월 개통이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다. 공사비 상승과 공기 지연이 주 원인이며, 주무관청과 민간사업자 모두 공기 연장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이앤씨가 주관하는 신안산선 역시 개통 일정이 20개월 연기됐다. 당초 올해 4월 개통 예정이었으나, 내년 12월로 미뤄졌으며, 추가 연기 가능성도 거론된다. 2019년 착공 이후 현재 공정률은 51%로, 6년 동안 진행된 공사 속도를 고려하면 내년 말 개통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철도사업은 인허가, 토지보상, 지장물 이전 등의 변수가 많아 기본 공기 내 준공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정부에 공사비 보전 요구
건설사들이 잇따라 민자 철도사업에서 발을 빼는 이유는 공사비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는 정부에 ‘민자사업 공사비 상승 부담 완화 특례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건설 자재비 상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민자사업에 대해 총사업비의 최대 4.4%까지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물가 특례는 불변가격 기준 시점이 2020년 12월31일 이전이면서, 지난해 10월3일 이전 실시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BTO 사업에 적용된다. 이 조건을 적용받는 민자사업은 총사업비의 최대 4.4% 이내 금액을 총사업비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GTX-B,C의 경우 대책 발표 이전에 실시협약 체결을 완료해 물가 특례 반영 대상이 아니다. 2021∼2022년 공사비 급등을 경험하고도 물가 특례를 적용받지 못하는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GTX 사업비 보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적자 공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건설사들이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며 "총사업비 조정 범위를 확대해야 민자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