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으로서의 '디벨로퍼·부동산 금융인'이 된다는 것
링에, 어서 오십시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청년들을 만나는 자리는 참으로 귀합니다.
얼마 전 8개 대학 소재 부동산 학회 연합의 초청으로 백여명의 청년들 앞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하고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습니다만, 몇몇 지점에서 내심 놀랐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대학들에 이렇게나 많은 부동산학회, 부동산 금융학회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만 해도 부동산 관련 동아리나 학회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당시는 "경영 학회"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을 떠나 부동산 관련 전문학과를 보유한 대학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학과가 없는 대학에서도 부동산 학회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부동산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모여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대학 재학 시절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던 것 같습니다.
한 학회장님께 여쭈어보니, 지난 5년 사이에 대학별로 부동산학회가 많이 생겼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유례 없이 오래도록 이어진 부동산 및 부동산 개발, 금융의 호황기와 맞물려 학생들의 관심이 많이 커진 것 같았습니다. 2022년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관심이 많이 꺾일만도 한데,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후학들이 이 영역에 열정을 불태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 업계의 미래는 매우 밝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가끔 강연을 나가게 될 때면 저는 딜레마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제가, "집체 교육은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늘 주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저는 숱한 세미나와 강연을 다녀보았지만 그 안에서 어떠한 지식도, 감동도, 성장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강연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어떠한 지식도, 감동도, 성장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자괴감이 찾아 오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하게 되는 강연이라면 최대한 겉도는 이야기나 돌아서면 잊어버릴 이야기가 아닌,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 주면 좋을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오래 생각한 결과, 부동산학회 회원이면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입장에서는, 미래의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은, 넓게는 부동산 업계, 좁게는 부동산 개발 업계와 부동산 금융 업계의 커리어와 직업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실질적으로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강연에서 제가 구상했던 것만큼 내용들이 잘 전달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들려 드렸던 내용들과 부족했다고 판단되는 내용들을 덧붙여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부동산개발 생태계를 구성하는 플레이어를 대별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산업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상이한 전문성을 갖춘 여러 직업군들이 서로 긴밀하게 협업하는 부동산 개발업의 특징을, 저는 "종합 예술"이라고 표현했었습니다. 그 안에는 - 디벨로퍼, 금융 전문가, 건축사, 건설사, 감정평가사, 분양 전문가, 홍보 전문가, 변호사, 회계사, 공인중개사, 애널리스트 등 많은 직업군이 존재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합니다.
이 글에서 저 다양한 직업군의 특징과 역할을 기술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비유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부동산 개발업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히 디벨로퍼입니다.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의 시작이자 끝이요,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그가 바로 "개발하는 자", 디벨로퍼(developer)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직업들은 디벨로퍼를 돕고, 지원하고, 협업하는 역할을 합니다. 디벨로퍼가 없으면 어떠한 개발 사업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디벨로퍼를 인체로 따졌을 때 머리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주체들은 지체나 장기에 비유합니다. 디벨로퍼의 기획과 지휘 하에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디벨로퍼에 비해 다른 직업이 열등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도 머리만으로 존재하거나, 머리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발 사업을 훌륭히 시작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주체들과의 협업과 시너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업계의 다른 직업군과는 조금은 다른 성격의 일을 수행하는 주체가 있습니다. 금융과 브로커입니다. 부동산 업계를 넘어선 광의의 개념에서도 금융은, 머물러 있지 않고 언제나 흘러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주체들이 개발 사업에 있어, 마치 손과 발처럼 특정 기능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한다면, 금융은 개발 사업의 전체 주기를 시계열적으로 늘어 뜨려 놓았을 때 주요 지점을 돌파하게 하는 흐름을 담당하는 인상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의 금융을 혈류에 비유합니다.
브로커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또 실제로 "나까마"라 불리는 단순 거간꾼 역할로 제한된 역할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실은 우리 업계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브로커는 각 기능들을 연결해 내는 역할을 합니다. 흩어져 존재하는 많은 주체들을 서로 연결하여, 유기적인 결합이 일어나도록 하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사실 순기능적 의미의 브로커는 "브로커"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전술한 많은 직업군에 속한 전문가들이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브로커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 분야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는다고 해서 개발 사업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정한 바로 그 사업에 적합한 분들이 적시에 결합되어야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진짜 브로커의 재능을 가진 분들은, 켜켜이 쌓인 전문성과 직관에 의해, 해당 프로젝트에 어떤 회사, 어떤 사람들이 결합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이를 적시에, 마침내 연결해 냅니다. 기능과 기능, 프로젝트와 사람을 연결해 낸다는 점에서, 저는 이 역할을 관절에 비유합니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서두에 언급한 이유는, 이 업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을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다음 지점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종합 예술이라고 불리울 만큼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여러 군집의 직군으로 이루어진 업계인 만큼, 본인에게 맞는 직업과 직군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본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직업의 이름이 주는 "이미지"만으로 첫 시작을 선택하게 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지점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첫째, 본인이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에 약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제 첫 스승님께서 저의 첫 출근일에 해 주신 말씀이십니다. 당시 그 분의 말씀을 듣고는 내심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웬걸요. 저는 아직도 저 자신을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본인을 잘 아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를 범위를 조금 더 좁히면 좋겠습니다. 먼저 본인이 가진 재능의 종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듯합니다. 어떤 이는 분석을 잘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에 능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류를 읽는 재능이 있고, 다른 이는 상황을 장악하는 능력(a.k.a. "통치의 유전자")이 있습니다.
특정한 재능이 다른 재능보다 더 우수하고 탁월한 재능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특정 직업과 직군에는 다른 재능보다 더 요긴하게 쓰이고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재능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에 특화된 신체 능력과 운동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농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에 태어났더라면 그의 재능은 별 쓸모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는 이해력, 문해력, 분석력이 다른 종류의 재능보다 더 빛을 발할 것입니다. 분양 전문가가 되려면 상품에 대한 이해력도 중요하지만 내용의 전달력(delivery)과 사람의 신뢰를 사는 능력이 다른 재능에 앞서 필요할 것입니다. 신탁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프로세스형 사고를 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고, 누락과 실수를 방지하는 꼼꼼함을 타고 난 사람이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유리할 것입니다.
디벨로퍼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혹은 재능은 무엇일까요?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 업계의 "머리"인 만큼, 다양한 영역을 아우를 수 있는 종합적인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못하는 것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땅, 즉 입지를 보는 눈이 있으면 좋을테고, 여러 주체들을 아울러야 하니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상황 장악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디벨로퍼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평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행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일정은 항상 늘어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집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시장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매일 매일을 살얼음판 걷듯,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 바로 시행이요, 디벨로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대수롭지 않게 허허로이 여기며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자질이 디벨로퍼에게는 가장 필수적인 덕목인 듯합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둘째, 본인의 성정(nature)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본인이 그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본인의 성격과 맞지 않으면 잘 하기는 어렵고, 더 나아가 지속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저는 스스로 분석력이 꽤 괜찮은 편이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분석하는 일을 즐기지 않습니다. 분석하는 작업은 저에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발을 딛고 난 후 몇 년간, 거의 애널리스트에 준할 정도로 많은 기업 분석, 비즈니스 분석, 상황 분석, 원가 분석 등을 했지만, 책상에서 하는 이런 일은 그저 저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할 뿐이었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 특히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 업계는 직업군을 막론하고 프론트와 미들, 백 오피스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론트를 선택한 이들에게,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과 갈등하고,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살을 부대끼는 것을 어려워 하는 성정을 가진 분들은 프론트를 선택했을 때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분석도 잘 하고 인성도 바른 친구들 중에서도 프론트 일을 힘겨워 하는 경우를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이는 E냐 I냐, T냐 F냐 하는 천박하고 얄팍한 구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내향적인 사람일지라도 차분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사람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일 뿐 그저 시끄럽기만 한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면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기 쉽고, 난관을 돌파해야 할 시점에 천상에서 박수치는 듯한 우아한 소리만 하고 있으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아주 어려운 지점입니다. 사람과 부딪치고 사람과 섞여서 걸어갈 수 있느냐, 때로 만나는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견딜 수 있느냐, 그럴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재능과 성정을 구분하기 어려워 집니다. 특히 탁월한 경지에 이른 재능들은 개인의 성정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위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는 이 지점이 어떻게 보면 가장 잘 숙고해야 할 사항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개인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사회 생활을 안 해 본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위험 성향(risk profile)은 크게 위험 수용적(risk-taking)인 성향과 위험 회피적(risk-averse)인 성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 누가 가장 큰 돈을 벌까요?
순수한 금전적 이익으로 따지자면 단연 디벨로퍼일 것입니다. 디벨로퍼는 부동산개발 사업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가장 큰 위험을 부담합니다. 그 반대급부로 시행 사업이 성공할 경우 막대한 이익을 벌어 들입니다.
그렇지만 직업인인 우리는 "회사"로서의 디벨로퍼와 우리 "개인"을 구분해야 합니다. 디벨로퍼 회사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사람은 회사가 천문학적인 돈을 벌더라도 그 이익을 크게 분배받지 않습니다. 개인이 위험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태계 직군 중, 회사라는 조직에 몸 담은 "직장인"으로서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군은 아마도 부동산 IB, 그 중에서도 금융주관을 하는 증권사의 프론트일 것입니다. 이 직군의 에이스 플레이어들은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수입을 거둡니다. 이 분들은 본인이 수주(sourcing)한 딜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킬 경우,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수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인센티브로 받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나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장이 한창 좋을 때는 증권사의 프론트에서 부동산 금융을 다루는 분들은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불황이 닥친 지금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시장과 관계 없이 초과 수익을 달성해 내는 수퍼 에이스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지점은 신분의 불안정성입니다. 우리 업계에는 "책상 주고, 명함 주고, 6개월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증권사 프론트의 상당 수는 계약직입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책상을 빼야 합니다. 그리고 증권사라는 회사의 특성상, 업계 시황의 변동과 회사 실적의 부침에 따라 다른 업계, 더 좁게는 부동산 개발 업계의 다른 직군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는 합니다.
본인의 위험 성향이 위험 회피적이라면 - 아마도 스스로 잘 모르시겠지만, 그래도 깊이 숙고했을 때 만약 그러하다면 - 경제적 반대급부의 기회는 다소 적더라도 보다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군을 선택하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실로 불안은 욕망의 하녀입니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더 힘차게 나아가려면 그만큼 많은 것을 걸어야만 합니다. 직업 안정성을 한껏 누리면서도 엄청난 수입을 거둘 수 있는 직업, 직군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세상에 그런 엘도라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에도 관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M증권이 한 임원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근로 계약은 매년 잊을 만하면 사인하라고 연락이 오는 요식 행위일 뿐, 성과를 낼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종신 계약이나 다름 없다". 위험 수용적인 성향의 분들, 실력에 자신이 있는 분들께는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종신 계약으로도 여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커리어는 아주 깁니다.
지금은 대략 30년 정도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게 되는 듯한데,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는 개인의 커리어가 이보다 더 짧을 수도 있고, 더 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커리어를 길에 비유할 수도 있겠고, 커리어의 끝까지 행군하는 것을 순례라고 칭할 수도 있겠습니다. 순례자에 해당하는 우리는 우리가 마침내 어디에 도달하고자 하는지, 즉 최종 종착지를 염두에 두고 첫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이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우리 중 상당 수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무지와 잘못된 진로 지도에 의해 지금의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지사이며,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좌충우돌 하는 커리어를 걸어 오며 지금 이곳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 자신을 진실로 모르겠습니다.
"영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들 가운데 중요하다 할 것이 무엇인가." 글의 서두에 인용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쓰인 문장입니다.
저에게 있어 중요하다 할 것이 무엇일까요?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생계를 이어가는 것, 중요합니다.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가 저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영원에 비추어 중요하다고 할 만한 것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5년차 프로 직업인으로 일하고 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중심을 잃지 않고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커리어라는 순례길을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걸아가야겠다는 다짐 정도를 해 봅니다.
링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만, 업계의 빛과 그림자를 어느 정도 알아버린 사람으로서, 환영 인사를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