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 134조원 vs 경부고속도로 67.2조원
자본주의 경제원리 중 ‘보이지 않는 손’은 마법적 원리임에 분명합니다. 굳이 마법이라 부른 데에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 일상에서 개별 경제주체들은 자신의 경제활동에 갇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하한 이유에 의해 물리적으로든 실체적으로든 자신의 활동영역 너머의 그 이상을 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므로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면 훗날 결과로 맞이하는 자신의 활동성과를 달리 이해하기 힘들게 됩니다.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손’은 부분과 전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은 욕망에 충실한 부분들로 구성되었음에도 우려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없이 오히려 조화롭게 작동합니다.
누군가는 빵을 만들고 누군가는 천을 만들면서 각자의 영역은 서로에게 필요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보이지 않는 손’은 내가 알기 힘든 세상을 이해하도록 하면서 욕망(이익)에 사로잡힌 나를 이끄는 이중적 원리입니다.
경제 이전에 인간에게는 두 가지 근원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 기술로 시공의 제약이 일정부분 극복된 것은 사실이나 인간이 여전히 시공의 제약하에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제 이 시공의 제약과 ‘보이지 않는 손’을 조화시켜 볼까요
무엇보다 시간에 따라 인간의 욕망은 우선순위가 나뉩니다. 필요성, 중요성 같은 개념에 시간을 제외하고 논하기 힘듭니다. 100년 내외에 걸쳐있는 인생이며, 특히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논의는 더욱 제한됩니다. 거기에 같은 공간의 인생이라면 이미 많은 이해관계를 함께 하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인간은 당대를 살면서 당대의 이해와 요구에 따른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당대의 노력이 결합된 장기간의 결과는 과연 최선일까요? 마치 저마다 욕망을 추구하는 부분이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 듯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은 제쳐두고 우린 그저 당대의 이익을 추구할 뿐일까요?
성취와 오류를 동시에 갖는 인간의 양면성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면 정답은 하나로 단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역사가 그러했고 현실이 또한 그러합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알 수 없는 시공의 일이라도 한 번쯤은 전체와 미래를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현실 너머의 비전을 봐야"
늘 현실은 어려운 가운데 당시로선 얼토당토않았던 일이 때론 성장에 결정적인 효과를 내는 일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보는 과거가 단편적이거나 '묻지마 미담'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에 이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비교적 가까운 과거이자 현재에도 경제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경부고속도로’의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1970년 7월 7월 준공된 경부고속도로는 공사기간 2년 5개월, 약 430억원이 소요된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대역사였습니다. 당시 430억원이면 미화로 약 1억3600만 달러입니다.(1970년 원달러 환율 316원). 경부고속도로가 갖는 상징성과 그 공사규모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초기자본을 확보하려던 피의 노력을 떠올립니다.
경부고속도로에 투입한 사업금액은 1966년부터 1976년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약 1만9000여명이 국내에 송금한 1억1530만달러보다 큰 액수이며, 1965년부터 1972년 사이 베트남에 파병된 군장병들이 국내에 송금한 2억100만달러 보다 작은 액수입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실제 공사를 진행한 기간(1968년 2월 ~ 1970년 7월)의 생산요소와 기술이 여러 측면에서 현재와는 비교하기 힘든 여건임을 감안하고, 무엇보다 나라 재정이 넉넉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당시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강력한 현실이 있었습니다. 즉, ‘도로를 만들어 봐야 이용할 차가 없는 데 도로를 왜 만드냐’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라 전체 차량이 10만대가 조금 넘는 시절이었으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반론이었습니다. 이밖에 야당 정치인의 고속도로 무용론이나 시기상조론 등은 이같은 현실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공공인프라의 특성상 직접적인 수익을 계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유발효과 등을 고려한 인프라 가치 평가방법이나 이른바 토빈의 Q와 같은 대체재 구축비용을 추산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만 합니다. 여기서는 여러 경제금융 이론에 의지할 것 없이 당시와 현재의 경제규모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직관적인 경부고속도로의 현재적 가치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970년 GDP 대비 고속도로 건설비용 비중을 현재의 GDP 규모에 적용, 환산하는 방법(미 달러 기준)과 두 번째로 당시의 건설투자 총액에서 차지하는 사업비 비중을 기준으로 현재의 건설투자 규모에 적용, 환산하는 방법을 계상해봤습니다.
대상물 본질가치로부터 추정하지 않고 외부적 여건으로부터 자산의 가치를 추정하여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합니다. 핵심은 대한민국이라는 동일개체의 각기 다른 시점, 동일 자산의 가치가 각기 다른 경제규모로부터 추정되는 외형만을 보자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방법에 의할 경우 경부고속도로의 자산가치는 약 67조2000억원 (=1.36/44*1.673조 환율 1300원)이며 두 번째 방법으로는 약29.2조원(430/4920335조원)으로 계상되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역사를 살피는 이유는 고속도로 건설의 당,부당성을 새삼 떠올려 이 일을 주도한 지도자의 직관을 칭송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여러 현실적 이유로 반대했던 세력들을 폄훼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자산가치의 과다, 정확성에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가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치는 그 건설 이후 역동적으로 작용하게 될 비전이 사전에 있었다는 점이며, 그 비전에 따라 경제육성이 일정기간 진행되어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대개 지도자의 몫이었습니다.
GTX는 어떨까요? 134조원을 투입하여 수도권 교통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이 사업의 필요성은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매우 불편하니까요. 우리가 그 불편을 감수한 덕분에 오늘의 성장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상당부분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도권집중에 따른 여러 폐해가 현실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오늘입니다. 주택가격의 앙등이나, 인구절벽은 적어도 한국에서 수도권집중의 다른 모습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GTX 134조원은 현실적 필요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의 비전을 담고 있는 것일까 질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