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경영난의 원인과 처방

3월 이후 건설·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러 지표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제 “어렵다, 힘들다”는 말조차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업계 현실은 다소간의 시차를 두고 표면화되곤 하는데, 현재 건설·부동산 업황 침체는 당면한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필자가 만난 한 건설사 대표는 공사 미수금 문제로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미수금을 포기하고 폐업을 결정하자니 20여 년 업력이 회한으로 남고, 업을 계속 유지하자니 이익은 고사하고 경비 충당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고민을 토로한다.
이 같은 현실은 현 건설업황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사 미수금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업체의 유동성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영업을 지속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를 만든다. 결국 일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폐업을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중소 건설사 경영난의 세 가지 원인
- 원가-이익 구조의 왜곡
- 협력사 부실의 전이
- 유동성 위험 증대
‘영업을 할수록 손실이 커진다’는 현실을 이익 구조, 유동성 회전, 금융 지원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원가와 마진의 불균형, 나아가 이익 구조의 왜곡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재비와 노무비 등 단기 비용은 인상된 물가를 반영해 꾸준히 상승하는 반면, 협력사에 대한 중장기 미수금과 공사 대금은 인플레이션 기간 동안 가격 조정이 경직적이어서, 시간이 지나도 원가와 이익 간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
선급금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금 숨통을 틔우는 경우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는 장기적으로 건설업계에 만성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네트워크 산업 특성상 원·하청사의 부실로 인해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새로운 협력사를 찾는 과정에서 비용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수급사의 부실로 인해 지분 조정이 발생하면, 이미 낮아진 원가 구조 속에서 추가적인 단기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정상 업체들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셋째, 수익 감소와 비용 증가가 맞물리면서 유동성 위험이 커지고 있다. 자체적으로 유보금을 보유한 기업은 자금 미스매칭 문제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지만, 공사 미수금, 재고 자산, 미지급 비용 등에 자금이 묶여 있는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로 쉽게 무너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의도적 흑자 도산’과 ‘억울한 폐업’ 최소화를 위한 대안
정부는 최근 관급공사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기조를 유지하며, 선급금 지급을 확대하고 있다. 일부 군부대 공사에서는 착공 이후 공사 대금 100%를 선금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중소 건설사들에게 이러한 선급금은 연명주사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업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잔여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 흑자 도산’이나 ‘확대되는 손실을 차단하기 위한 억울한 폐업’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상적인 업체들의 시장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할 대책이 필요하다.
핵심은 ‘보유 자산의 유동화’에 있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으로는 외담대 확대와 자산 유동화 전담 배드뱅크(Bad Bank) 개설을 고려해볼 만하다.
첫째, 공사 미수금과 관련하여 채무자 또는 채권자가 보유한 별도 자산(채권 등)으로 상환 가능성이 어느 정도 확보될 경우, 한시적으로 외상 담보 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회수가 어려운 채권을 담보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금융권에도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 원리에도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둘째, 건설사 보유 자산이 이미 다수의 금융기관 담보로 제공된 상태에서 추가적인 유동화가 어려운 사례가 많다. 담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 어느 한쪽에서 양보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자산 유동화는 불가능해지고, 결국 건설사는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채 폐업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드뱅크(Bad Bank) 운영을 통해 부실 자산을 신속하게 유동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부와 금융권이 조정·중재 역할을 수행하여 질서 있고 시장 원리에 부합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계는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무질서하게 진행될 경우, 정상적인 업체들까지 도산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세심한 정책적 대안이 요구된다. 유동성 공급과 자산 유동화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마련된다면, 중소 건설사들의 연쇄 도산을 막고, 업계가 보다 안정적으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