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책준신탁 불공정 개선을"...신탁사와 갈등조짐
부동산신탁사가 지난 2015년 책임준공신탁(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책준신탁)을 선보이자 시공사들은 크게 반겼다. 개발사업에서 책준신탁은 중소 시공사의 신용도와 PF사업성을 보강하는 탁월한 수단으로 대접받았다. 시공능력순위 100위권 밖의 중소 시공사들은 신용도가 낮아도 책준신탁의 힘을 빌려 개발사업 공사 기회를 얻었다. 책준신탁 조건으로 주거시설 외 물류 등 다양한 개발 사업 추진이 가능해지면서 책준신탁은 PF대출시장 판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그랬던 책준신탁이 이제는 신탁사와 시공사간 갈등을 키우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전국 개발사업장 곳곳에서 공사 지연이나 중단이 속출하자 건설업계가 신탁계약상 불공정 시비를 제기하고 나섰다.
건설업계는 최근 줄잇는 법정관리행의 배경에는 책준확약 의무이행이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시평 83위) 대창기업(109위) 에이치엔아이엔씨(133위) 신일(113위) 등이 법정관리 또는 법정관리를 신청중인데 모두 책준확약의무로 인한 자금난으로 위기를 견디다 못해 무너졌다는 것이다.
자재값 급등과 수급불안으로 공사 기간을 제때 맞추기 힘든 불가항력적인 상황임에도 책준 의무로 인한 리스크를 시공사에 일방적으로 떠넘기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대한건설협회의 지난 3월 조사에 따르면 시멘트·레미콘 수급불안으로 공사중단 또는 지연된 현장은 조사 대상 154곳 중 98곳(63.6%)에 달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신탁사와 시공사 간의 불공정계약 등 구조적인 문제가 가뜩이나 건설업 침체 영향을 크게 받는 중소 건설사에 집중돼 문제가 더 심각하다"면서 "자칫 PF시장 부실의 뇌관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가 제기한 책준신탁 문제점은?
통상 PF사업에서 시공사가 1차적으로 책준 의무(정해진 기간내 건축물을 책임지고 준공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책준신탁을 하면 시공사 외에 추가적으로 신탁사가 대주단에 대해 책준 의무를 부담한다.
즉, 시행사가 신탁사에 수수료를 내고 책준신탁을 맺으면 시공사의 책준 미이행시 PF대출 원리금 상환을 신탁사가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유로 시공사가 책준 기간 연장시 PF대출금의 패널티 부과와 연장 이자 외 PF채무의 중첩적 채무인수를 부담하는 등 실질적 리스크를 시공사가 떠안고 있다는 게 건설사 주장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 준공 불이행이나 준공의지가 없을 때 중첩적 채무인수는 정당할 수 있으나, 대출기한 내 공기연장 후 목적물을 완성할 경우 물적 담보가 존재함에도 시공사에 중첩적 채무인수를 부담시키는 행위는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책준 조항에 천재지변 및 전쟁을 제외한 다른 사유는 불가항력적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 것도 불공정하다고 건설사들은 항변한다. 공사비 급등, 화물연대노조 파업으로 인한 자재수급 불안 등에 의한 불가피한 공사비 금액조정 및 공사기간 변경 등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리스크를 시공사가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것이다.
신탁계약서는 주계약과 특약으로 구성됐는데 신탁사의 불공정 조항은 대부분 특약에 기재해 '약관규제법' 적용을 회피하고 있는 점도 건설사들은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신탁사의 하자담보책임 면책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으로 인해 신탁기간 종료 이후에 하도급자나 수분양자 등으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소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시공사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금융위에 신탁사 불공정 개선 건의
대한건설협회는 12일 금융위원회를 만나 신탁사의 불공정약관에 대해 시정명령 조치를 강화해달라고 건의할 예정이다.
우선 책준의무 미이행에 따른 중첩적 채무인수 등 불공정한 책임전가 방지를 위한 모범규준(가이드라인)을 제정해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책준의무 미이행에 따른 PF 대출 원리금 전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채무인수 등 과도한 리스크 전가행위를 막겠다는 것이다.
책준 의무를 면할 수 있는 불가항력 사유에 예측할 수 없는 물가변동 등도 명시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이밖에 신탁사업 관련 표준약관 제정을 촉구하는 한편 신탁사와 시공사 간의 토지신탁계약 서류 전반에 '약관규제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