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설사의 몰락
편의점보다 많은 건설사
한국에서 건설사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평일 낮 인적이 드문 농어촌에서조차 거리를 걷다가 ‘00토건’, ‘00종합건설’ 등의 간판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 브랜드로 익숙한 대형 건설사가 아니어도 간이역처럼 시골 구석구석에도 건설사들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 건설사가 편의점보다 많다는 믿기 어려운 통계로 증명됩니다. 국내 편의점이 약 5만5000여곳(한국편의점협회)인데 비해 건설사는 약 10만곳(KISCON)에 이릅니다.
‘건설사가 왜 이리 많은지, 나아가 수요에 비해 과한지’를 따져봐야겠으나 이는 오늘 논점이 아닙니다. 다만 편의점보다 건설사가 많은 데는 건설업 나름의 산업특성, 영업특성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하시지요.
지금은 편의점보다 많다지만 과거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신규 건설사가 단 하나도 창업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면허제를 통해 건설사 설립을 통제하면서 전국의 종합건설사는 500여개에 불과했습니다. 건설사가 대폭 늘어난 데에는 지난 1999년 시행된 건설업 등록제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2만개에 이르는 종합건설업체는 1999년 등록제 전환 이후 2~3년 만에 약 1만2000개까지 늘었다가 이후 20여년의 시간에 걸쳐 2만개 수준으로 점증한 것입니다.
경쟁의 부작용
건설 면허가 귀할 때에도 건설사 간 담합이나 윤찰제 등의 폐해가 없었던 것 아니었습니다만, 등록제 시행으로 기업수가 폭증하면서 건설업계는 영업과정에서 지난날 보기 힘들었던 이러저러한 폐해를 낳았습니다. 전자정부 구현 이후 수주 절차의 투명성이 대폭 개선되면서 늘어난 건설사들은 생존을 위해 ‘페이퍼컴퍼니’, ‘불법하도급’ 등의 관행을 양산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건설하지 않는 건설사’가 늘어갔고, ‘등록-수주를 하지 않은 채 건설하는 회사’도 늘어갔던 것입니다.
건설사의 생존경쟁이 심각한 것은 ‘다른 업종에 비해 창업 이후 조기에 소멸하고 장기간 업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일러주는 다음의 표로도 확인됩니다.
<표1>은 제조업과 건설업 내 새롭게 창업한 회사들의 업력유지 기간별로 소멸-생존하는 비중을 보여줍니다. 창업 이후 기업의 존속분포를 확인할 수 있는데, 건설업의 경우 창업 후 3년내 소멸 비중이 제조업이나 전산업 평균에 비해 높은 반면, 10년 이상 생존하는 비중은 제조업에 비해 약 5%P 내외로 낮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건설업의 생존경쟁이 제조업이나 전산업 평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열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K건설의 성장
이제부터 K건설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K건설은 IMF 외환위기 이후 등록제로 전환된 건설업 설립의 붐을 타고 지방에서 창업한 종합건설사입니다. 설립 이후 지역내 소형 공공공사를 수주해 사업을 이어가며 창업 5년차에 매출 40억원, 자산규모 20억원 안팎의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소규모이나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하면서 학교, 군부대, 수리시설, 교량 등으로 사업범위를 확장해가다, 창업 8년차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파트 브랜드를 런칭하며 주택사업에도 진출했습니다. K건설은 건설업체 폭증으로 수주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성실한 시공능력을 바탕으로 새내기 건설사여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회자됐습니다.
이후 K건설은 창업 17년차에 매출 1000억원과 누적 수주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LH로부터 우수시공업체로 선정되는가 하면, 지역실적 1위를 수차례 달성하면서 지역 대표업체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K건설의 규모는 자산 1200억원, 매출 3000억원, 당기순익 100억원 내외를 기록하며 중견기업으로 도약을 꿈꾸었습니다.
K건설의 몰락
K건설이 성장 궤도에서 이탈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PF현장에서 결국 책임준공과 관련한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2022년 금리 인상 행진 이후 이어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손댔던 PF사업 중 몇 군데에서 파열음이 났습니다. K건설은 S신탁사가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으로 시행중인 지식산업센터를 수주하여 시공에 들어갔습니다. 현장은 수도권과 지방에 있었고 공사규모는 총1300억원 정도였습니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PF부실이 개선될 여지가 없자 정부는 PF현장 ‘옥석가리기’를 이행 중입니다. K건설이 시공 중인 현장에서 신탁사와 갈등이 빚어진 것은 바로 이 옥석가리기가 선언된 직후였습니다.
시공 중 지하차수가 원활하지 않아 공정이 지연됐고, 폭염으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공기가 촉박한 가운데 K건설의 하도급사로부터 공사대금에 대한 가압류가 들어왔습니다. 이에 신탁사는 K건설이 책임준공을 이행하기 어렵다고 판단, K건설과 체결한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대체시공사를 구하는 절차에 돌입합니다.
K건설 입장에서 하도급사 대금 문제는 일시적 자금난 탓으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사안이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준공기한까지 반드시 책임준공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신탁사에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신탁사는 이를 받아주지 않은 채 계약을 해지한 것입니다.
물론 신탁사의 해지 행위는 사업약정서 상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K건설은 신탁사가 도급계약해지 후 신탁사 책임준공에 소요되는 기간을 감안하면 사업실질 관점에서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이익임을 수차례 주장했으나 결국 시공권을 박탈당한 채 그간의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채무인수 등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K건설은 신탁사의 책준의무 미이행(판정)에 따라 계약을 해지당하고 이후 책임준공(채무인수)의무 위반에 따라 대주단에 대한 신탁사 손해배상금 등의 채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대체시공사를 구해야하는 신탁사에서는 과거 K건설과 공동도급을 했던 구성원 수급사를 대체시공사로 선정해 공사기간을 연장하는 등 대체시공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준공기한은 애초 K건설과 약정한 기한에다 신탁사 책임준공 기한(+6개월)을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PF현장에서 계약해지와 채무인수는 K건설에 한꺼번에 자금 소요를 촉진시키며 자금난으로 몰기에 충분했습니다. 보증금 청구, 하도급업체에 미지급한 공사대 청구가 이어지며 자금이 일시에 필요했고 다른 현장에 정상적으로 원가를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K건설이 가진 다른 공사 현장의 부실마저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PF현장 사고가 정상적인 타현장의 공사수행, 대금지급 등에까지 전이되어 K건설은 보유중인 자산, 공사미수금 등의 유동화가 되지 않는 한 부도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금융과 건설의 조화
개발사업은 사업재원의 조달(Finance)로부터 이뤄집니다. 건설이 금융의 영향력 내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은 결과적으로 수익률로 조달여부를 결정하는 금융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건설은 돈으로 돈을 창출하는 결론에 의해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돌발상황을 행위로서 극복해야 하고, 공간이라는 가시적 결과물을 이루는데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이 디지털이라면 그 수익을 만들기 위해 토지를 기반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건설은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과 건설의 조화는 이 같은 제 특성을 상호 이해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필자는 건설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을 용인하거나, 개발사업 내 대주단·신탁사가 건설사에 대해 갖는 우월적 지위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이번 기고를 쓴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이 존속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함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사회가 만들어 낸 경영환경, 정책 등의 변수로 성장하는 기업이 일거에 도산할 수도 있는 현실적 상황에 대해서는 두루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발사업에서 금융과 건설의 결합 이후 우리는 경기변동이라는 외생변수를 건설과 금융의 내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불균형으로 핑계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기업의 성장과 몰락이 자신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외부 변수에 의존할 경우 그 경제가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