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의 진실 마주하기
지난 기고(책임준공의 진화)에 이어 책임준공에 관한 이슈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한국의 부동산PF 활용 30년간 책임준공이라는 제도가 PF 사업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PF의 본질적 특성과 떨어진 이른바 ‘한국형 PF’ 형성에 책임준공이 중요한 역할을 해서 입니다.
나아가 경기 침체기에 PF위험과 기타 실물·금융위험이 상호 연관되는 매개체로서 책임준공이라는 신용보강이 작동하는 현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금융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위험에 부합하는 수익’입니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이라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합니다. 합리적 경제인은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대전제 위에 금융행위에서 위험-수익의 원칙하에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미래 경기에 의존하는 PF사업의 위험은 일반적인 도급사업에 비해 꽤 높습니다. 공사대금의 확보, 결제 등이 계약 당시에는 불확실성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시공사 입장에서 위험이 높은 PF사업을 수행하며 더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수익이라는 원칙에 의한 지극히 합리적 행동인 것입니다.
1. 책임준공은 불공정 게임? 이익과 손실의 불균형, 손실 원인의 불합리
문제는 책임준공에 따른 시공사의 손실 가능성(채무범위)이 시공자가 향유할 시공이익을 포함한 공사대금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데 있습니다. 책임준공의 실체는 최대 손실가능액으로 자신의 행위로 인한 대가를 넘어,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채무를 감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손실의 원인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유에 의한 것이라도 손실을 책임지겠다고 약정합니다. PF사업의 이같은 현실을 감안하면 시공사의 PF사업 참여는 사실상 사업에 참여했다는 그 사실 하나로부터 자신의 귀책사유에 의하지 않는 원인에 의해 원본손실을 넘어 PF사업 실패 위험을 부담하는 비대칭적 투자행위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이는 시공자로서 시공참여를 통한 시공이익을 얻기 위한 자발적 약속입니다. 계약 자유의 원칙 아래 당사자가 약정한 것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동산 PF사업에 ‘개별적 당사자로서는 저항하기 힘든 이같은 사업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었는가’에 대해선 살펴 볼 여지가 있습니다.
2. PF금융의 비소구성과 책임준공
그렇다면 위 같은 책임준공 손익(Payoff)구조상 1)이익과 손실의 불균형, 2) 행위자의 통제불가능 사유에 대한 위험부담 등 외견상 불공정한 관행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PF금융에서 비소구성(non-recourse)은 잘 아시는 대로 대주가 자신의 채권을 상환받지 못할 경우 프로젝트 자체의 담보가치(프로젝트에서 연유한 계약, 권리, 자산 등)를 초과해 소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로젝트사업주의 신용이나 자산과 분리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PF금융의 비소구성은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즉 차주가 상환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대주들이 프로젝트 자체의 담보가치에 대해서는 다른 채권자에 비해 우선하여 자신의 채권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현실에서 때때로 이 점이 배제된 채 책임준공이 논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선분양 제도가 일반적인 한국에서 차주의 상환불이행이 발생하면 대주는 분양보증기관에 비해 향후 프로젝트 담보가치에 대한 우선권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대주의 입장에서 자신의 채권이 프로젝트 담보가치 아래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대주가 직면하는 이같은 불합리를 대체할 소구수단으로 책임준공을 찾은 것이라면 이는 PF 특성의 대전제인 대주의 PF 담보가치에 대한 우선권리가 애시당초 불안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3.지급보증 Vs 손해담보계약
책임준공의 출현 배경, 손익구조와 손실 부담사유 등 내용상의 불공정 문제 등을 논의하다 보면 다시 문제는 책임준공의 실체와 그것을 확립하기 위한 실무상, 법상 그 적용에 관한 논의로 모아집니다.
책임준공을 둘러싼 학설, 판례, 실무상의 입장 등을 살펴볼 때 아직 이렇다할 일치된 견해로 수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책임준공의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이것이 과연 시공사의 책임준공 범위내 있는 문제인가를 고민하곤 합니다.
현재까지 판례 및 시장에서 확립된 책임준공의 실체는 ‘➀(시공자가 책임준공 부담주체라도) 시공자의 건축주에 대한 시공완성 의무와 책임준공 의무는 구별된다. ➁‘불가항력적 사유’을 제외하고 준공의무가 미이행될 경우 책임준공 의무자는 그 의무를 부담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➀로부터 책임준공의 법률적 실체에 대한 논의가 가능합니다. 즉, 대법원의 판례.(2014다 75349판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책임준공이 외관상 ‘하는 채무’이나 실질은 ‘보증과 같은 신용공여’라고 한다면 책임준공이라는 보증채무의 대상인 주채무가 존재해야 합니다. (부종성) 책임준공의 의미상 주채무는 당연히 ‘약정한 기한까지 공사가 완공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보전될 대주의 이익’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준공을 보증이라고 볼 경우 보증채무자(책준의무자)인 시공사는 법리상 주채무의 정당한 불이행 사유로 보증채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항변권을 갖게 됩니다. 이 경우 항변권 인정의 범위는 ➁와 같은 불가항력적 사유의 범위가 책임준공의 실체를 규정하는 실질적 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만약 책임준공 의무를 보증이 아닌 서구의 유래와 같이 ‘손해담보계약’으로 볼 경우 보증의 부종성이나 보충성이 없어 책준의무자의 채무이행이 보증에 비해 강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손해를 발생시킨 불가항력적 사유의 범위가 문제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 경우 통상 약정서상 예시된 전쟁, 천재지변과 같은 수준에 준하는 불가항력적 사유만으로 그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주장과 책준의무자의 통제범위를 넘어선 사유 –이를테면 인허가 미획득, 공사기성 미지급 등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장은 생물처럼 꾸준이 진화합니다. PF의 본질적 특성이 어떠했든 한국적 현실에서 어떻게 원용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에서 책임준공은 여전히 미완성된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2016년 이후 부동산신탁사에 의해 주도된 ‘책임준공부 관리형토지신탁’ 사례를 보면 시공사의 책임준공이 실패한 뒤 신탁사의 책임준공의무 이행이 즉각적으로 이뤄졌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이어 책임준공 실체를 규명하는 소송으로 이어졌다는 항간의 소식은 한편으로 책임준공의 실체가 여전히 우리 시장에서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이해관계의 유,불리에 의한 전략여부를 따지지 말고 가보지 않은 곳에 가기 위해 시장 참여자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