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 약정'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책임준공 약정은 부동산PF 계약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행사는 물론,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기관(대주) 입장에서 가장 큰 위험은 공사가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공사 중단으로 담보목적물인 건물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PF대출은 통상 토지비와 사업비(공사비와 기타 사업비)를 포함한 금액으로 이뤄지는 탓에 건물이 완성되지 않으면 대주가 대출채권을 온전히 회수할 수 없다. 따라서 대주는 공사를 담당하는 시공사가 차질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시공능력과 자금능력을 갖췄는지 세심하게 확인한다.
PF대출에서 시행사-시공사(건설사)-대주는 대출약정서에 함께 날안하는데, 동시에 시공사는 PF대주에게 정해진 날(책임준공 약정일)까지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겠다는 내용으로 책임준공 확약서를 제출한다. 약정일을 지키지 못하면 시공사는 PF대주단이 시행사에 대출한 원리금을 대신 갚거나(채무인수), 책임준공을 하지 못해 PF대주단에 발생한 손해를 배상(손해배상)한다.
시공사의 신용도가 금융권이 신뢰할 정도로 높지 않으면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이라는 상품을 통해, 신탁사가 시공사와 함께 책임준공 의무를 연대 부담한다.
예전에는 책임준공확약서에 손해배상으로 기재하더라도 이를 채무인수에 준하는 개념으로 여겼다. 법정에서 PF대주의 손해금액를 확정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금융권과 계속 PF를 진행할 시공사가 PF대출 상환을 상당부분 책임져 줄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PF시장이 경색되고 준공 지연의 손해 범위를 법정에서 다투려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책임준공 약정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시공사 또는 신탁사가 부담할 '손해배상'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하는지가 책임준공 시장의 큰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중인데 올해 나올 재판 결과에 따라 책임준공을 둘러싼 시공사·신탁사의 책임 범위가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부동산PF 구조개선의 일환으로 책임준공 제도를 크게 손질하고 있다. 책임준공 기한을 연장할수 있는 사유를 넓히고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했을 때 배상범위를 구체화하도록 제도를 바꿀 계획이다. 세부 내용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큰 틀에서는 시공사·신탁사의 책임을 완화하는 쪽으로 제도가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금융투자협회에서 발표한 '책임준공확약 토지신탁 업무처리 모범규준'에서도 신탁사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부담하는 손해배상 범위를 공사 지연에 따른 실제 손해액으로 한정하고, 대출원리금 상환 약정 등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내년 1분기 책임준공 개선방안 마련...신탁사 토지신탁도 수술(딜북뉴스, 2024.11.14)
내년부터 신탁사 책임준공확약, 실손 배상으로 바뀐다(딜북뉴스, 2024.12.11)
개발업계 관행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일부 개발 사업장에서는 책임준공 미이행 시 시공사의 손해배상 범위를 기존 대비 크게 줄였다. 대출원리금 채무를 인수하거나 이에 준하는 손해배상 없이 건설사가 시행사(발주자)에 지급해야 하는 '지체 상금'을 PF 대주단에게 먼저 지급하도록 약정한 것이다.
준공 지연으로 금융기관에 지급해야 할 추가 이자를 미리 확보하는 효과가 있는데, 지체상금은 공사계약금액에 요율과 지체일수를 곱해 계산하고 공사계약금액의 5~10%를 상한으로 한다. 책임준공과 관련한 시공사의 채무부담을 줄이고 책임준공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을 지체상금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기존 관행 대비 진화했다. 반면 대주 입장에서는 과거 PF계약 대비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크게 늘어,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시공사의 역량을 더욱 까다롭게 살펴볼 수 밖에 없다.
지체상금 활용한 책임준공 PF성사, DL이앤씨와 하나증권 합작품(딜북뉴스, 2024.10.14)
실무상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지체상금으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법정에서 손해액을 확정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준공 기한이 넘어가면, 시공사는 지체상금 지급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시공사가 지체상금 감액 소송을 제기한다면 공사 지연의 책임이 시공사에 얼마나 있고 얼마의 지체상금을 부담해야 하는지 소송을 통해 확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체상금 확보가 늦어지면, 준공 지연으로 대출기간이 늘어나고 PF 이자가 추가로 발생했을 때, 대주에게 이자를 바로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
유보공사비 등을 통해 지체상급 지원을 미리 확보해 둘 수는 있다. 분양이 잘 되었거나, 공사비를 PF대출로 미리 확보한 경우에는 유보 공사비(통상 총 공사비의 10%)를 시공사에 지급하지 않고, 대주에게 공사 지연 기간 동안의 이자로 우선 지급한 후 나중에 지체상금과 상계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분양 부진 등으로 공사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유보 공사비가 없는 경우)이다. 책임준공 기간을 한참 넘기면서 PF 대출기간까지 늘어나면 시공사에서 지체상금을 지급받아야 하는데, 소송이 길어지면 지체상금을 제 때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추가이자 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또는 신규 대주단(리파이낸싱)이 대출금을 증액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있다. 시공사의 신용도가 우수하고, 분양불 공사 등으로 사업 책임을 상당 부분 부담하는 구조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PF 대출을 최초 취급할 때, 대주 쪽에서 공사 지연에 따른 리스크를 미리 헤지하는 방안을 요청할 수도 있는데, 공사이행보증과 유사하게 '지체상금에 대한 지급보증 상품'을 도입하거나, PF대출시 '지체상금 예정액'을 별도의 한도대출 트랜치로 운영하는 방법도 가능해 보인다. 지급보증은 공공금융기관이나 민간 보험사가, 별도 트랜치는 금융사(한도대출 약정) 등이 참여 가능하다.
개발사업 공정과 자금을 관리하는 부동산신탁사가 신탁계정대(차입형 토지신탁)를 통해 지체상금을 선지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시공사는 지체상금을 대주단에 최우선으로 지급하도록 책임준공 약정을 체결하고, 신탁사는 토지신탁으로 공정 및 자금을 관리한다.
시공사가 준공 약정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대출기한이 연장되면 1) 신탁사는 신탁관리 계좌에 남은 유보공사비를 대주단에 이자로 지급하고 공사 완료시점에 지체상금과 지급해야 할 잔존 공사비를 상계처리 하되, 2) 계좌에 유보공사비가 남아 있지 않다면 신탁계정대를 열어 대주단에 이자를 지급하고 공사 완료 후 시공사가 지체상금을 납부하면 해당 금액에서 신탁계정대를 회수한다.
신탁사는 소송을 통해 확정되는 지체상금이 감액될 경우에는 손실을 입을 수 있지만, 손실률을 반영해 공사액의 일정 비울로 수수료를 수취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시나리오는 아직 설익은 아이디어다. 또한 책임준공형 신탁으로 인해 싱당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부동산 신탁사들이 책임준공 시장에 다시 참여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책임준공형 신탁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며 매출 감소의 위기를 맞은 부동산 신탁사 입장에서, 적정한 수준에서 책임준공 시장에서 역할을 다시 확보하도록 모색해보는 게 어떨까 한다.
공공기관의 책임준공보증 범위가 아직 제한적인 상황에서, 신탁사의 참여는 중견·중소 건설사의 시공 참여를 늘리는 채널이 될 수 있고 건설사 경쟁으로 공사비를 낮추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