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도 뜨는 부동산상품 4선: 시니어하우스·셀프스토리지·청년임대주택·생명과학빌딩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등 복합위기가 겹쳐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암흑기를 맞고 있다. 기존의 주력 부동산투자 대상인 아파트와 오피스빌딩, 물류센터, 지식산업센터 등이 거래 절벽에 놓이는 등 죽을 쓰고 있다.
내년에도 경기둔화, 통화긴축에 따른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부동산 투자자들은 투자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기존 부동산 상품들이 불황기를 보내고 있지만 뜨는 틈새시장도 있다.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개발자금과 투자자들이 모이는 상품들이다.
국내외 시장에서 시니어하우스와 셀프스토리지, 임대주택, 생명과학빌딩 등이 유망 시장으로서 잠재성을 보여주며 투자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 4대 부동산상품의 현황을 알아봤다.
(1)시니어하우스
시니어하우스(노인복지주택)가 불황기에도 유망한 부동산개발상품인 것은 고령화로 관련 주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여전히 부족해서다.
노인복지주택 수요가 증가하면서 다수의 개발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롯데건설 컨소시엄이 서울 마곡 마이스(MICE) 복합단지에 오는 2024년까지 조성할 예정인 VL르웨스트는 810세대 규모의 고급 노인복지주택이다. 병원과 연계된 의료서비스, 컨시어지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변에는 컨벤션센터 및 문화·판매·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한 부산 오시리아 체류형 관광문화의료 복합단지에는 노인을 위한 임대용 주거시설인 VL라우어가 공급될 예정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시니어 복합단지로 단지 내 병원과 헬스타운, 문화·커뮤니티시설이 함께 들어선다. 하이투자증권 등이 출자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썬시티가 시행을 맡았으며, 한화건설이 시공하고 롯데호텔이 운영할 예정이다.
서울아산병원과 KT&G, 하나은행 컨소시엄은 오는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인천 청라의료복합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청라 의료복합타운은 청라국제도시 해안가 26만㎡ 규모의 부지에 500병상 이상 되는 종합병원과 의료바이오 관련 산·학·연 및 업무·상업 등의 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2조4000억원에 이르는 대형 사업이다.
이처럼 부동산시장 침체 조짐에도 다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여전히 부족해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향후 10년간 매년 50만명 이상이 노인 인구로 편입되고, 특히 경제력이 탄탄한 노년층의 고급 실버주택 수요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2022년 7월 현재 총인구의 17.6%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20%를 돌파하며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10년 후인 2035년에는 30%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일부 대형 단지 공급이 예정됐으나 노인인구 증가 속도에 비해 시니어하우스는 여전히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면서 노인시설에 입소를 원하는 노인 인구 또한 증가하고 있다.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노인들의 시설 거주 희망 비율은 지난 2017년 0.2%에서 2020년 4.9%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시설 및 서비 스에 주목하고 있으며 건설업계도 실버타운 공급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직접적인 의료 서비스 및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노인복지주택과 병원에 가깝고 다양한 문화·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심형 노인복지주택의 수요가 높아 앞으로 해당 시설의 공급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셀프스토리지
셀프스토리지(개인창고) 부동산은 외풍에 상관없이 수요가 느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고 있다. 부족한 업무 및 주거 공간 확보를 위해 셀프스토리지를 이용하는 기업과 개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다.
JLL에 따르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성숙됐지만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부동산섹터인 셀프스토리지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추가적인 수납공간을 원하는 개인과 쾌적한 업무환경을 위해 기업서류, 사무용품 등의 보관 공간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셀프스토리지를 찾고 있어서다.
이유는 뭘까. 우선 인구의 서울 수도권 집중화로 주거 공간은 좁아지는 데 반해 집값과 임대료는 많이 올라서다. 아울러 근무 형태 다양화와 취미 활동 증가, 이커머스의 성장세 등으로 공간 내 보관 품목이 늘고 있는 점도 셀프스토리지를 원하는 배경이다.
셀프스토리지는 경기 불황이나 금리시장 변동성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경기방어적 섹터로 꼽힌다. 물건 보관에 대한 수요가 계속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주상 복합의 지하층, 도심의 노후된 오피스 빌딩 또는 상권 저층부, 신도시 인근 외곽지역의 오피스 근생 빌딩 저층부 등 공실로 인한 수익률 저하로 고민하는 건물주에는 셀프스토리지가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안정적인 임대료와 장기간의 임대 기간,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관리가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편의 시설로서의 만족도 등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JLL에 따르면 지난 5월을 기준으로 국내에는 200여개의 셀프스토리지 지점이 있다.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52.0%, 31.9%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과 인천이 각각 8.8%와 4.9%로 집계됐다. 셀프스토리지 업체들의 주요 보관 품목으로는 개인 물품뿐 아니라 기업 문서, 캠핑·낚시·스키·서핑 등의 취미 용품, 전시 및 무대 장비, 미술품, 와인 등이 있다.
셀프스토리지는 사용자의 접근 편리성이 좋아야 하므로 대부분 도심 내 위치한다. 도심 대로변이나 지하철 역사 내 있다. 위치에 따라 셀프스토리지의 형태도 다양하다. 컨테이너나 팰릿 (Pallet)을 이용하는 셀프스토리지의 경우에는 경기도의 IC 혹은 JC에 주로 위치한 반면에 개인이 주로 이용하는 소규모 창고를 제공하는 지점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용이한 도심에 있다.
김명식 JLL 투자자문 본부장은 “지난해부터 부쩍 셀프스토리지 브랜드들로부터 공간 임대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3)청년임대주택
정부의 임대주택 인센티브 지원책이 탄탄한데다, 미분양 우려가 있는 분양형 부동산에 비해 사업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청년임대주택이 뜨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0월 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소재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사업 브릿지론이 파이낸싱을 마치고 기표(인출)에 성공했다. 이 사업은 코리빙 브랜드 맹그로브를 운영하는 임팩트 디벨로퍼 MGRV와 이지스네오밸류자산운용이 손잡고 시행하는 프로젝트다.
하나캐피탈 KB캐피탈 신한캐피탈 등 금융지주 계열 `빅3 캐피탈사'가 연합해 단일 트랜치인 선순위 대주단으로 참여했다. 브지지론 대출 규모는 400억원이며 금융 조건은 8%초반의 금리에 15개월 고정금리다. 이 기간 이자비용까지 합친 금액으로 대출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사업시행자는 브릿지론 기간 내 인허가와 토지 작업을 마치고 본PF로 전환하면 된다. 대주단 관계자는 "토지작업 및 인허가가 상당부분 진척된 상태인데다, 본 PF전환시 보증기관의 보증PF가 가능하는 등 금융 조건이 합리적이어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부지는 광흥창역, 서강대역, 신촌역과 인접한 트리플 역세권이다. 전철역에서 350m 거리 내의 대로변에 있다. 주변에 연세대 홍익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이 있어 청년 임대주택의 인기 지역으로 꼽힌다. 더욱이 임대료가 주변 시세 대비 85% 이하 수준으로 저렴해 공실 우려가 낮다.
청년 임대주택발 PF훈풍은 민간 임대주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KT그룹의 부동산 자산운용회사인 KT AMC는 동대문구 신설동역 인근 역세권 민간임대주택의 본PF 자금조달에 들어갔다. 이 사업은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 등 총 400가구로 구성되며 의무 임대기간이 10년이다.
KT는 도심의 옛 전화국 부지를 활용해 임대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평균 공실률이 3% 이하로 크게 낮을 정도로 임차인이 잘 채워지고 있다.
이밖에 디벨로퍼 SK D&D도 자체개발 임대주택PF의 금융조달을 검토하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D&D는 수요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공간 솔루션 제공에 특화한다는 비전 아래 개발 후 임대 운영단계에서 주거 만족도를 높일만한 다양한 서비스와 커뮤니티를 마련하고 있다.
(4)라이프사이언스 부동산
라이프사이언스(생명과학) 부동산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사용하는 사무실, 실험실, 약품 생산 및 유통·물류 시설 등을 말한다. 아직은 국내에서 생소하지만 미국 유럽 등의 수요 확대를 봤을 때 국내에도 유망 상품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꼽는다.
라이프사이언스는 일반 오피스와는 평면 구성이나 시설 요건에서 차이가 있다. 통상 건물의 50% 내외가 실험실, 나머지가 사무실로 구성된다. 무거운 실험 장비를 지지해야 하므로 바닥이 견고해야 하고, 정밀한 실험이 가능하도록 진동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약품의 변질을 막고, 유해 물질을 효과적으로 배출하기 위한 채광·통풍·환기 시스템이나,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보조 전력원도 필요하다.
라이프사이언스는 원래 활용기업이 자체 보유하던 전문 시설을 제3자인 전문 기업이 공급·운영하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와 유사하다. 임차기업 맞춤형 시설이므로 임차 기업이 장기 계약을 선호하고, 임대료 단가가 높다.
국내에는 충북 오송, 강원 원주 등에서 추진된 바이오클러스터와 유사한 개념이다. 다만, 바이오클러스터는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추진한 반면 라이프사이언스는 민간 업체에서 수익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서울과 인근 지역에 '연구개발(R&D)시설 + 본사 오피스' 집적지(또는 건물)를 개발하는 게 라이프사이언스 부동산업계의 주요 목표이다.
한국에서 라이프사이언스 집적지로 떠오르는 곳은 마곡, 판교, 과천 등이다. 특히 마곡은 20개에 가까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주요 거점 지역으로 꼽힌다. 다만 마곡으로 이전한 기업들은 대부분 R&D 시설을 자체 보유하는 형태로 입주했다. 외부 기관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임대하는 전문 라이프사이언스 시설은 거의 없다. 이는 판교, 과천, 송도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본사·연구소를 자체 보유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도 라이프사이언스 전문시설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제약바이오 업체는 R&D를 위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력이 우수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보유중인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미 일부 기업에서 활용도가 낮은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부동산 전략으로만 접근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 즉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집적의 장점을 누릴 수 있도록, 연구기관, 각종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등을 함께 유치해 밸류 체인을 구성해야 한다.
한 경제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블랙록을 비롯한 해외 대형 투자기관들이 라이프사이언스 섹터에서 부동산과 기업 투자를 패키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은 라이프사이언스를 부동산 섹터가 아닌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도 라이프사이언스에서 투자 기회를 얻으려면, 일본의 미쓰이부동산처럼 제약바이오 업계와의 소통채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