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 확대로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어떤 재화의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릅니다. 이 간단한 명제는 경제에서 수요-공급의 균형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상식이지요. 그런데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오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따릅니다. 공급 감소에도 수요가 일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 원리가 주택시장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먼저 <그림1>을 보시지요. <그림1>은 1기신도시 건설을 통한 주택공급이 장기적으로 주택가격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줍니다.
80년대 후반 가파르게 오르던 집값은 1기 신도시 건설로 수도권에 약 30만호 주택이 공급되자 오름세가 꺽입니다. 이후 90년대 내내 주택가격을 안정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값이 상승하면 늘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합니다. 주택가격 상승을 제어할 수단으로 공급 확대만 한 것이 없다는 믿음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검증된 것이었습니다.
많은 재화들이 저마다의 속성에 의해 수급상 특징을 갖게 마련입니다. 주택의 경우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필수재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한 채의 평균가격이 10.6억원(부동산원 2024.6월 통계)인데 이런 고가의 필수재가 가당치 않게 느껴지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가격과 별개로 서울시민에게 주택이 필수재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가격 등을 기준으로 주택은 ‘방대한 종류’로 나눠지고 그에 따라 특정 수준의 주택에 대한 유효수요, 즉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에 의해 가격은 변동됩니다.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주택가격이 오른다고 할 때 우리는 주로 아파트 가격을 얘기합니다. 원룸 월세나 고시원 비용이 올랐다고 주택가격이 오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택가격의 상승이란 대개 일정한 물리적 구조를 갖춘 주거상품의 가격(매매가격) 상승을 의미하며 이는 곧 주거비용(임대료)의 상승을 포괄합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특히 수도권 주택으로 아파트가 차지하는 물리적, 구조적, 역사적 지위는 주택가격 변동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택공급과 가격’ 관련 얘기를 본격 진행하기 앞서 신규주택과 기존주택의 공급 탄력성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신규주택이 비탄력적인 것은 건설 기간 때문입니다. 제한된 토지에 주택생산이 연계되는 점도 탄력성을 낮추는 원인이 됩니다. 반면 기존주택의 공급은 가격에 매우 민감하게(탄력적으로) 반응합니다. 주택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부정책 등 요인에 따라 매물을 내놓거나 걷어 들이는 일은 일상이 됐습니다.
신규주택 공급량과 가격추이
최근 주택공급이 위축돼 이대로 가면 몇년 후 주택가격 상승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폭등세가 전망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 주장은 주택공급 총량 중 신규주택의 비탄력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주택공급과 가격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신규주택 및 기존주택의 공급과 가격 변화 추이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표1> 최근 7년간 신규주택 공급량을 집계한 것입니다. 7년간 평균적으로 우리나라에는 한해 약 56.9만호의 새 집이 지어졌고 멸실되는 주택을 포함하면 한해 약 39.8 만 호가 순증가 되었습니다. 새로 지어지는 집의 권역별 비율은 수도권과 지방에 각 49.8%와 50.2% 정도입니다. 이중 약 12.9%가 서울에 지어집니다. 그러니까 서울에는 한 해 평균 약 7.3만호 정도의 새 집이 들어서는 셈입니다.
<그림2~4>는 지난 2011년 이래 서울, 수도권, 지방에 지어진 월별 주택 준공실적과 주택 가격지수를 대비시킨 것입니다.
어떠신가요? 주택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거나 그 반대 명제가 위 <그림2~4>에서 명확하게 잡히시나요? 각 권역별로 신규주택이 기간 평균 이상으로 공급된 기간과 반대로 평균 이하로 공급된 기간을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각각 붉은색과 파란색 타원으로 표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기간 신규주택 공급과 가격의 관계를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파악해보면 이 둘의 상관계수는 서울(-0.13), 수도권(0.11), 지방(-0.18)로 측정됩니다. 한마디로 공급량이 늘면(줄면) 가격이 떨어지는(오르는) 관계를 기본적인 통계로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림2~4>에서 보시면 가격지수가 하락 전환하는 2022년을 전후해 신규주택 공급량도 평균이하로 급감하는 양상을 3개 권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공급이 줄어 이후 가격이 급상승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이는 그 이전 공급량 증가에도 가격이 지속 상승하는 현상을 같은 논리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서울의 경우 2013년9월 ~ 2014년10월, 2015년7월 ~ 2016년12월 사이 대체로 신규주택공급이 많았던 시기입니다. 당시 서울의 주택가격은 2014년 2분기가 되면서 상승반전하여 대세상승의 초입국면이었습니다. 대세상승이 시작되기 직전 해에 공급량이 늘었음에도 주택가격은 올랐습니다.
역시 2015년 ~ 2016년 사이 공급량 증가에 불구하고 2017년 이후 서울의 주택가격은 2019년 1월 정부대책 이전까지 강한 상승세를 유지했음을 <그림2>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3>과 <그림4>의 경우는 공급증가와 가격하락의 관계에 배치되는 예를 보여준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림3> 수도권의 경우 신규주택 공급이 가장 많았던 2017년5월 ~ 2019년7월 이후 주택가격은 지속 상승하였고 그와 같은 평균 이상의 공급에도 이후 1년 여 동안 주택가격은 폭발적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2022년 전후한 공급량 감소는 2014년 이후 시작된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피로가 누적된 가운데 2021년 초부터 금리가 오르고 PF부실 등으로 건설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면서 신규주택 건설을 조절한 시장의 자율적 대응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택준공(공급) 실적에 따른 가격 조절을 능가하는 시장 여건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기존 주택 공급과 가격변화, 스토리가 있는 시장
서울과 수도권의 최근 주택가격 추세는 지난 2014년 하반기 이후 2021년 하반기까지 폭발적인 상승세(2014년 명목금액 기준 약 2배 이상)를 이어가다 2022~2023년 고점대비 25% 하락 횡보하더니 최근 다시 전 고점을 향해 반등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같은 가격 변화가 전적으로 수요대비 모자란 공급량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더욱이 절대 주택량이 적었던 성장시대 1970~1990년대의 논리를 지금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그간의 여건 변화에 의한 차이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사기 쉽습니다.
<그림5>는 지난 2021년 7월 이래 서울지역 아파트 매도물량, 즉 기존주택의 공급량과 가격지수를 비교한 것입니다.
<그림5>를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난 2021년 4분기 이후 하락 전환 후 횡보하다 2022년 7월 이후에 급락하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이 매도물량은 급증하다 가격 급락세와 함께 2022년 연말까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a,b영역)
지난해 1월 이후 가격이 다시 상승세로 전환하면서 매도량도 급증하여 현재 8만 건 이상 매도량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c영역) <그림5>에서 매도량은 a, c 영역에서 증가했고 b영역에서 감소 했습니다. 해당시기 가격은 하향횡보, 하락, 상승이었습니다. 공급증가에 가격이 하락한 국면은 a영역입니다. 종합하면 신규주택 공급량과 가격의 관계에서 본 것처럼 기존주택 공급량과 가격의 관계도 일관되지 않습니다.
나가며
결론적으로 주택공급 증가에도 가격이 상승하거나 주택공급 감소에도 가격이 내리는 일은 우리 주택시장에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2010년대 이후 주택시장은 주택공급을 통한 가격 조절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현실에서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신규주택 공급을 늘리자는 주장은 복잡한 현실과 단순한 이론 중 단순한 이론에 기대어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가격은 왜 오르는 것일까요? 주택 공급 정책으로 조절되지 않는 가격은 집값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인 유효수요의 증감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유효 수요에는 가수요를 비롯한 투기적 수요가 포함된 것은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