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이 바꿔 놓은 지붕형 태양광 사업의 판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다양한 정책 변화가 있었고, 재생에너지 산업 역시 그 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전남부터 경기 남부까지 이어지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 그리고 ‘RE100 산업단지 활성화’까지—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단연 ‘RE100’입니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진 RE100은, 이번 대선에서도 데이터센터 RE100 이행 가능 여부를 놓고 주요 후보 간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정치권에서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RE100은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2014년 뉴욕에서 민간 캠페인으로 시작된 RE100은 이제 글로벌 공급망 관리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았고, 수출 중심의 한국 기업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붕형 태양광 사업도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붕형 태양광은 대부분 ‘유휴부지 임대형’ 모델이었습니다. 발전사업자가 기업 사업장의 지붕이나 주차장 등의 유휴부지를 임대 받아,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 발전소를 운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모델에서는 사업자 간 차별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누가 더 높은 임대료를 제시하느냐가 사업권 확보의 핵심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투자비를 절감하거나 조달 금리를 낮추는 등의 전략이 주를 이뤘습니다.
결국 지붕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과열되었고, 2020년 MW당 약 2500만 원 수준이던 임대료는 2024년 4000만 원을 넘어섰으며, 2025년에는 5000만 ~6000만 원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사업자는 5 ~10년치 임대료를 일시불로 지불하거나, 설비 일부를 무상으로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형태의 공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하반기부터 ‘지붕형 태양광 = 유휴부지 임대형 태양광’이라는 등식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공급처 또는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RE100을 이행하라는 요구를 받기 시작하면서, 제3자에게 유휴부지를 임대해 주기보다 직접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글로벌 RE100에서 인정하는 6가지 재생에너지 발전원(풍력, 태양광, 수력, 바이오매스, 지열, 조력) 중에서 국내에서 가용한 자원은 현실적으로 풍력과 태양광뿐입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대부분의 물량은 기존 RPS(Renewables Portfolio Standard)로 이미 계약됐거나, RPS 현물시장을 선호하기에 RE100을 이행해야 하는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외부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기업들이 눈을 돌린 곳은 자기 사업장입니다. 그나마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스스로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업장 내 유휴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쓰겠다는 생각을 기업들이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 지붕형 태양광 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요가 있는 것이 바로 ‘자가소비 운용리스’ 형태의 사업 모델입니다. ‘자가소비 운용리스’는 기업이 자기 지붕 위에 자체적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다는 점에서 자가소비 태양광 발전소와 그 구조가 유사합니다. 다만, 기업(임대인)이 직접 태양광 발전소 설치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투자사가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하는 형태입니다.

이때 기존 지붕형 태양광 발전소처럼 전기를 판매하여 돈을 벌었다면, 자가소비 운용리스를 하는 회사는 전기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설비 임대료를 받게 됩니다. 특이한 점은 임대료가 고정(ex 월 1000만 원)이 아니라, 전기 생산량(kWh) x 임대 단가(ex 145원/kWh) 형태로 되어 있어 사실상 전기를 판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기존 지붕형 태양광 발전소에서 전기를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구조와 비교할 때, 두 사업 모델 모두 매출의 주요 인자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자가발전 운용리스를 하는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고객사가 원하는 RE100 달성률 제고뿐 아니라 전기요금 절감도 할 수 있습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이 60~80% 정도 인상됐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높아진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지 않은 이상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가소비 운용리스 모델은 현재 140원 ~150원/kWh 사이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산업용 전기요금 평균가격(160 ~170원/kWh)보다 10% 정도 저렴한 것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RE100 달성과 함께 전기요금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자체적으로 투자하려면 기업이 투자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외부 투자사가 태양광 투자비를 지불하니 투자 재원을 아껴 본업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한편, 태양광에 투자하는 투자사 입장에서도 자가소비 운용리스는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자가소비 운용리스의 경우, 제도적으로는 기업이 스스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것이기에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즉 사업 진행 속도가 다른 사업 모델보다 더 빠릅니다.
뿐만 아니라 계통이 없는 지역에서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는 전기를 외부에 판매하지 않기만 하면, 한국전력과 계통 연계 협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덕분에 계통 포화로 태양광 사업 추진이 어려운 지역에서도 자가소비 운용리스 모델은 추진 가능하여, 대상 사업 범위가 넓어진다는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자가소비 운용리스라고 해서 만능은 아닙니다. 기존 모델에서는 최종 구매자(Off-Taker)가 RPS 의무이행사인 경우가 많아 최종 구매자에 대한 신용 리스크가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자가소비 운용리스는 최종 구매자가 임대 기업이기 때문에, 해당 리스크를 좀 더 면밀히 확인하고 이를 회피하거나 보증보험 등을 통해 완화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난 7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RE100 산업단지 특별법 제정 및 RE100 산업단지 활성화 추진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RE100 산업단지에는 전기요금 인하 등 보다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제공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기업들의 관심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단지가 RE100 중심으로 재편되고, 기업의 RE100 이행 필요성이 확대될수록 임대형 태양광 모델의 수요는 감소하고, 자가소비 운용리스 태양광 모델의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시장의 흐름은 이미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임대형 태양광 모델에서 자가소비 운용리스 태양광 모델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