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대주단 협약'과 'PF정상화 지원펀드'의 효과
부동산 개발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정부는 채권안정펀드 등 시장 안정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이들 정책 실효성은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만, "정부가 들여다보고 있고, 관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하는 듯합니다.
이러한 큰 맥락 속에서 주요 PF대주들의 협약으로 이어진 'PF 대주단 협의회 운영 협약(PF대주단 협약)'은 주목해 들여다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협약에 참여하는 기관은, 우리가 이는 거의 대부분의 대주라고 보면 됩니다. 은행, 상호금융, 저축은행, 심지어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신용보증기금 등이 협약 기관으로 망라돼 있습니다.
협약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3개 이상의 채권금융기관이 총채권액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단위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정상화가 가능해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절차가 개시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채권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에 대해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원금 감면, 발생이자 감면, 이자율 인하, 채무인수, 출자전환 등의 조정을 한다.
다른 내용들이 많이 협약에 담겼지만 사실 위의 짧은 내용이 핵심입니다.
협약이 요식 행위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주단에 제시할 "당근"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은 다음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시했습니다.
- 여신전문금융회사의 경우, 부동산 PF 익스포저를 여신성 자산의 30% 이내에서 취급 가능한데, 이를 한시적으로 완화(6개월).
- 상호금융의 경우, 부동산업, 건설업 공동대출을 공동대출 잔액의 각 1/3, 합산 1/2 이내에서 취급 가능한데 이를 일시적으로 완화(6개월).
다들 알다시피 PF대주단 협약은 브릿지론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PF대주단 협약과 관련해 몇 가지를 점검하고 수소문을 해 보았습니다. 확인한 주요 내용은 (1) 대주단과 시행사가 보기에 PF대주단 협약이 실효성이 있는지, 즉 제대로 작동하는지와 (2)협약의 주요 골자를 활용해 대주단이 만기 연장 등을 해 줄 만큼 금감원의 인센티브가 매력적인지였습니다.
우선, 대부분의 대주들의 의견은 금감원이 제시한 인센티브는 사실상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제 사견으로는, 인센티브가 개별 딜을 다루는 프론트에 있는 분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회사에 부여되는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행사에는 확실히 가뭄의 단비인 듯합니다. 왜냐하면, 투입한 자기자본을 모두 날릴 뿐 아니라, 수백억원대의 빚더미에 앉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협약 초기에는 만기연장 위주의 지원이었는데, 최근에는 이자 후취를 적용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자를 감면해 주는 것이 아님에도, 브릿지론 이자의 규모를 고려할 때 소형 시행사나 개인의 입장에서 그 큰 금액을 매월 조달해 납부하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납부(후불)해야 할 금원이기는 하나, 고통을 이연하는 효과는 실로 막대합니다.
만기 연장이나 이자 후취 뿐 아니라 원금 감면, 이자 감면 등의 지원이 있지만 이게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 아마도 금융감독원 담당자조차도 -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는 처음부터 브릿지론의 만기 연장과 이자 후취를 염두에 둔 조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본 협약은 요식 행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지점을 함께 생각해 보시죠. 세상의 많은 일은 명분 싸움입니다. 특히 보수적인 금융계에서 기존의 지침과 관행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브릿지론 연장이 어차피 PF기표와 분양이 안 될 것을 알면서 잠시 생명을 연장하는 정도 의미 이상은 아닐지 모른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당장의 디폴트(EOD)를 피하기 위해 만기 연장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국이 나서 협약을 독려하고, 협약 내용에 따라 만기 연장을 지원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대주단은 만기연장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당국의 명분을 제공받은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주단 협약은 실질적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많은 현장에서, 이 협약이 아니더라도 만기 연장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릿지론이 실행된 사업장 중 상당수가 지금의 경락률을 적용한 회수 가능금액을 초과하는 대출이 실행됐기 때문입니다. 대출 연장이 아닌 EOD, 그에 따른 공매를 진행해도 원금을 회수하기 녹록치 않은 현실입니다. 즉, 협약이 없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입니다.
최근 브릿지론 대환은 거의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시장에서 기존 대주가 이탈하려고 하는 것은 본 PF와 분양성 불투명 등 분명한 이유가 있을텐데, 남의 엑시트(탈출)를 도와주면서 자신이 들어갈 대주는 없기 때문입니다.
상반기에 브릿지론 대환 의뢰를 상당히 받았는데, 한 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로 공포가 지배하는 시장이라, 별다른 문제가 없이 본 PF 가능성이 상당해 보이는 현장에도 대주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대환에 실패한 채 대출 만기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들은 한 두 곳을 제외하고 결국에는 대출 만기가 이뤄지더군요(대환을 했더라면 되레 금융 비용만 더 올라갔을 것이다, 라는 결과론을 남겼습니다).
"터뜨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공멸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명 연장의 꿈"을 꾸면서 브릿지론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시행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한 논리이지만,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당연시 되는 시행사업에서는, "모든 것을 잃는다"의 반의어이기 때문입니다.
대주단 입장에서도 시간을 법니다. 조금쯤 잔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대주 입장에서는 경락가율이 올라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공매로 넘겨서 안전하게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시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소위 말하는 "천수답" 식 기다림입니다. 천수답은 관개 수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하늘(天)에서 내리는 물(水)만을 고대하고 있는 논(畓)을 의미합니다. 즉,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돌파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대주단 협의회 협약과 그에 따른 브릿지론 연장은 어쩔 수 없는 뚜렷한 한계를 가집니다.
근본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분양가의 반등밖에 없습니다. 재무제표의 최상단인 소위 탑라인(Top-line)이 개선되지 않으면, 누적된 금융 비용 증가 때문에 본 PF와 분양 완료는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누구도 예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장에 퍼지고 있는 소문은 총선 전까지 정부가 일부러 브릿지론을 터뜨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음모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부터 반전이 있습니다.
S회계법인은 이번 위기 이후 상당히 발빠르게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움직여 왔습니다. 많은 분이 알고 계실 것 같은데, S회계법인은 브릿지론 단계에서 본 PF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는 시행자를 대상으로 출구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었는데, a) 일반 분양 모델로 검토했던 사업장의 협동조합형 민임대주택으로의 사업 전환, b) 부실화 우려가 있거나 NPL이 된 브릿지론 채권 인수 펀드 조성, c) 기존 여신의 검토 및 손실 발생 가능성 최소화 전략 제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회계법인 특성상 위 세 가지 줄기를 모두 소화할 수 없기에, 지주택 및 임대주택에 강한 전문성이 있는 S기업과 브릿지론 채권 매입 펀드를 설정할 수 있는 K자산운용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응했습니다.
위 컨소시엄이 실제로 얼마나 성과를 거뒀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S회계법인이 정책 의사결정권자의 눈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S회계법인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캠코)가 추진하는 "사업성 우려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사업"의 재무자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캠코와 함께 내 놓은 안은 상당히 실질적이었습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총액 5000억원을 투입합니다.
자산운용사 다섯 곳을 공모를 통해 선정해 1000억원씩을 펀드 설정의 마중물로 출자하고, 같은 금액을 자산운용사가 모집해 2000억원 규모 펀드를 설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2000억원 규모의 펀드 다섯개가 생깁니다.
이 펀드는 브릿지론이 실행된, 본 PF를 목표로 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운용되며, 투자 유형은 a) 브릿지론 채권 인수와 결집을 통한 재구조화, b) 필수사업비 등 신규 자금의 대여, c) 에쿼티 우선주 출자의 세 가지 군집으로 나눠집니다.
현재의 규모는 1조원이지만, 브릿지론 채권을 목표로 하는 만큼, 실제로는 5~10배 규모의 총사업비를 가진 사업을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PF대주단 운영 협약에서 자율협의회의 업무 범위를 정하는 제9조의 제1항 제10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당해 사업장에 대한 채권금융기관 보유채권 또는 보유사업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정책금융기관 등에 공동으로 매각하는 결정"
그리고 S 회계법인이 작성한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플랫폼 소개 자료에도 주요 딜 파이프라인으로 대주단 협의회 협약에 근거한 자율협의회에서 공동 매각으로 의결된 딜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5일, 심사과정을 거쳐 신한, 이지스, 캡스톤, KB, 코람코자산운용 등 다섯 곳의 운용사가 선정되었고, 이어서 딜들을 접수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펀드들이 채권 매입, 신규자금 대여, 우선주 출자를 통해, "진행이 안 되던 사업장을 어떻게 진행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내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최근 가진 한 모임에서 이와 관련한 토론이 있었는데, 대주 측에서 볼 때 캠코PF지원펀드가 브릿지론 채권을 인수한 딜은 대주가 등을 돌릴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이미 "부실 사업장"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만약 캠코의 PF펀드가 대출 채권을 인수해, 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전형적인 방법으로 PF를 일으키려고 한다면 저 주장이 맞습니다. 이는 사실상 브릿지론 채권의 보유 주체가 바뀐 것일 뿐, 딜의 금융 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간 진행이 안 된 사업장이라면 a)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거나, b) 금융 비용 등 제반 비용이 높은 등 c) PF가 일어나지 못한 이유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캠코PF펀드는 모든 투자 유형에서 "재구조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브릿지론 채권 인수 유형의 경우, a) 채권의 전부가 아닌, 최대한 선순위 채권부터 일부를 인수한 후, b) 후순위 채권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이를 "채권"이 아닌 "사업 정상화 이후 발생한 사업이익을 통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권한"으로 전환합니다(신주인수권부사채의 신주인수권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본 PF를 일으킬 때 기존 대출금액을 모두 상환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즉, 조달금액과 LTV를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시행사는 사업권을 양도하기는 하지만, 역시 최종 시행이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이번 공모에서 선정된 5개사 중 한 곳의 자료에 따르면, 펀드가 인수한 채권을 우선주로 전환하는 사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a) 기존 채권이 자기자본이 되기 때문에 본 PF 때 상환을 위해 조달해야 하는 금액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b) 동시에 자기자본은 오히려 확충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 이것은 자료에 제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 조달 금액과 비용들을 낮추어내면, 탑라인(Top-line), 즉 매출을 어느 정도 감소시켜도 PF가 가능해지는 조건이 충족될 수 있습니다. 즉, 분양가를 낮춰 현재 시장에서 통용될만한 가격으로 재구조화 하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재구조화의 핵심 뼈대입니다.
가장 많은 비중의 자금이 위와 같이 브릿지론 채권 인수와 그 이후의 재구조화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나머지 두 유형도 주목해서 볼 만합니다.
특히 제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공동사업참여, 즉 우선주 출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해 주는 것입니다.
이 유형은, 신주인수권을 닮은 "권리" 정도만 시행사에게 부여해 주는 첫 번째 유형과 달리, 시행사의 권리가 온전히 보전됩니다.
즉, 시행사의 자기자본은 온전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펀드가 우선주 출자로 들어오면 역시, 필수사업비의 일부를 펀드가 충당하기 때문에 a) 자기자본 비율이 증가하고 b) PF 대출 총액이 줄어들어 LTV가 낮아집니다. PF가 가능한 구조를 도출하기가 쉬워지는 효과는 동일한데, 시행사의 권리는 온전하게 보전되는 것입니다.
다들 예상하는 것처럼, 시행사는 당연히 이 구조를 가장 선호할 것입니다. 때문에 이 유형으로 투자를 받기 위한 경쟁은 극도로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정당하게 이 유형으로 선정되더라도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여지며,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만) 상당한 수준의 로비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구조를 파악해야 『PF 대주단 협의회 운영 협약』의 전체 그림을 이해한 것이 됩니다. 정책 의사결정권자가 처음부터 여기까지 내다보고 이 모든 것을 디자인했다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대단한 수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행 고객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시행사 대표들이 아직 이 프로그램을 모르고 있는 분이 많았습니다. 부디 여러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